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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맘 Apr 10. 2021

집을 사는 것보다 더 나은 행복이 있을까

차가운 바람을 가르던 아이의 웃음소리

오늘은 남편과 아이와 집을 보러 갔다. 아이를 낳고는 지금 사는 집이 좁게 느껴져서 더 큰 집으로 가보자는 계획이었다. 아이와 산책하기 좋도록 조경이 잘 되어있는 아파트에, 방이 세 개는 있어야 하고, 지하철 역도 가까워야 한다면서 깐깐하게 매물을 골랐다. 부동산 여러 곳에 발품을 팔아서 약속을 잡았다.


아이와 함께 외출하는 것은 역시 보통 일이 아니었다. 가는 내내 울던 아이를 차가 정차할 때마다 들어 달래야 했던 나는 진이 완전히 빠졌다. 집에서 봐도 힘든 아이를 밖에 데려오는 게 아니었다면서 불평을 했다. 설상가상으로 아이는 도착하자마자 악을 쓰며 울기 시작했다.


남편이 주차를 하려고 핸들을 요리조리 꺾는 동안 나는 흔들리는 차에서 젖병 눈금을 확인해 가며 물을 부었다. 얼른 팔을 지지대 삼아 분유를 먹이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약속 시간은 십 분 이상 더 늦어져 버렸다. 우리는 아이가 조금 진정된 틈을 타서 얼른 약속한 곳까지 걸어가 보기로 했다. 정신없이 걷는데, 바람이 너무 많이 불었다. 차가운 봄바람에 아이가 감기라도 걸릴까 싶어 바삐 발을 움직이면서 가방에서 담요를 꺼냈다. 아이에게 덮어 주랴 경사진 언덕을 오르랴 정신이 없었다.


자기야, 벌써 일곱 시야, 말하고 남편과 나는 뛰기 시작했다. 바람 때문에 담요는 거의 덮나 마나 한 지경이었고 바삐 움직이는 남편의 어깨에 찰싹 달라붙은 아이는 위로 아래로 흔들렸다. 나는 남편의 뒤를 따라가며 걱정의 말들을 쏟아 내고 있었다. 그때, 아이가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이제 오 개월이 된 아이는 성대가 발달했는지 까르르 소리를 내면서 웃을 수 있다. 거의 집에만 있는 것이 일상이어서 그랬을까, 밖에 나와 바람을 맞는 것 자체가 아이에게 색다른 경험이 되는 것 같았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차가운 바람에 배냇머리가 사방으로 휘날리고 있고 귀는 빨개진 채로, 1/3을 채 못 먹고 젖병도 뺏겼으면서, 웃기다고 넘어가는 것이었다. 아빠가 코로 '킁킁' 돼지 소리를 낼 때보다 열 배는 더 거세게 웃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뛰는 남편과, 무거운 기저귀 가방을 들고 뒤뚱뒤뚱 뛰어가는 엄마 사이에서 좋다고 뒤집어지는 아기를 보는데, 내가 좀 전까지 왜 짜증을 냈는지도 모르겠고, 약속 시간에 얼마나 늦은지도, 아이가 감기에 걸릴까 봐 걱정되는 마음도 모두 잊고 나도 같이 깔깔깔 웃어버렸다.


집에 도착하고 나서는 기절하듯 잠을 잤다. 아이를 데리고 외출한 날에는 꼭 가벼운 몸살이라도 난다. 거실로 나가니 남편이 뉴스를 검색하고 있었다. 집값에 대한 기사를 보면서, 곧 더 좋은 집으로 이사를 간다고 생각하니까 벌써 기분이 좋아, 말했다. 나도 빨래를 개면서 그런 이야기를 했다. 집값에 대한 이야기, 누가 얼마에 집을 샀다더라, 서울 시장으로는 누가 뽑혔으니 집값에 어떤 영향이 있을 거라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다가 말했다. 오늘 해월이 웃는 거 진짜 웃기지 않았어? 밖에 나가는 걸 그렇게 좋아하는데, 우리가 좀 힘들어도 계속 나가야 할까 봐. 말하면서 나는 웃었다. 남편도 웃었다. 몰랐는데, 그전까지는 우리의 얼굴이 굳어 있었던 것 같다고 느꼈다. 그 바쁜 와중에 아이가 넘어가듯 웃었을 때, 나는 무장해제된 것처럼 따라서 웃어버렸다. 그 순간이, 오늘 유일하게 우리가 깔깔대며 웃었던 순간이었다. 그 상황을 다시 생각해도 실없는 웃음이 나는 것이, 나는 너무 재미있었다.


집을 보고도 우리는 무덤덤했다. 남편이 열심히 번 돈이었고, 나는 어쩌면 내가 그런 것쯤 누리는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도 하고 있었다. 아이에게 차가운 바람을 맞히는 것은 별로 좋은 경험이 아니라는 생각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이 아이가 오늘 하루 중 가장 크게 웃은 순간이었다는 것이, 어쩌면 아이의 행복이 우리의 행복과는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것이, 내가 생각했던 행복을 우습게 만드는 느낌이 들었다.


아이의 웃는 얼굴이 자꾸 생각난다. 오늘 아이를 행복하게 했던 것은 뭘까. 차가운 바람을 가르며 뛰는 것이 시원했을까? 아빠의 헥헥 대는 숨소리가 재밌었을까? 집이 아닌 곳에 엄마랑 아빠랑 나간 것이 그저 좋았을까? 이유를 알 수 없는 웃음이다.


그래서일까, 아이에게 좋은 집을 물려줘야 하고, 가장 나은 학군으로 가야 한다는 믿음 말고, 다른 믿음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거대한 현실에 대항할 힘이라고 말하면 거창할 것이다. 남편의 사업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 따위가 제일 크기도 하다. 그러나, 돈이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믿음에 조금의 균열을 낸 채로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깔깔대며 웃었던 한순간의 기억을, 더 좋은 집을 얻는 일과 비교하겠다는 것은 얼토당토않은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그게 무섭다. 이사를 가면 그런 순간이 더 많아질 거라고 믿게 되는 것이. 아이의 웃음에 이유가 없었던 것처럼, 행복한 일들은 나도 모르게 찾아올지도 모른다. 그런 순간에 주목하는 것으로, 나는 더 행복해질지도 모른다. 그렇게 아이와 사랑하며 살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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