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리맘 Apr 11. 2021

나는 글이 안 써질 때 그냥 눕는다  

몸과 마음의 관계

살다 보면 몸을 움직여야 하는 순간이 있고, 마음을 움직여야 하는 순간이 있는 것 같다. 아까는 글을 쓰다가, 노트북을 덮었다. 첫 문장만 완성하고 나서는 도저히 뭘 써야 할지도 모르겠고, 두 번째 문장부터는 작위적으로 쓰는 느낌이 났다. 무언가가 자꾸 내 마음보다 앞서는 느낌이 들었다. 그것이 글을 ‘완성’하고자 하는 욕구라고 느끼곤 한다. 글을 쓸 때는 내 마음을 직시해야 하고, 급하지 않게 차근차근 마음에 집중해야 하기 때문에, 마치 바느질하듯 눈여겨봐야 하는 것 같다. 완성을 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으면 바늘이 천에 꽂히는 광경을 보지 못하고, 그다음에 바느질할 부분을 미리 보고 있는 느낌이 든다. 그럴 때, 손은 바늘에 찔려 버린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느끼는 것은, 손이 바늘에 찔리는 것을 알아차리듯, 문장이 작위적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다. 바로 눈치챌 때도 있고, 십 분 정도 고양이를 만지다가 다시 노트북을 펴면 영 아니다 싶을 때도 있다. 그럴 때면 조금은 절망스럽기도 하고, 자괴감이 들기도 하는데, 도무지 이제 무얼 해야 하는지를 알 수 없어서, 마치 내가 무엇을 해도 된다는 가능성이 무궁무진하게 열려 있는 느낌이 든다. 그냥 빈 들판 위에 홀로 서 있는 느낌이어서, 사방이 뚫려 있고 표지판도 없는 느낌이다. 아까는 잠깐 밖에 나가서 산책을 할까 하다가, 결국 설거지를 했다.


설거지를 하니 머리카락이 발에 밟히는 느낌이 들어서, 밀대에 물걸레를 붙여 바닥을 밀었다. 아이 방에는 아이가 자고 있고 안방에는 남편이 자고 있었다. 조용히 거실과 주방에만 불을 켜고 청소했다. 거실에는 아이가 뒤집기 연습을 하기 좋도록 푹신한 매트를 깔아 두었는데, 그 이후로는 청소할 때도 웬만하면 매트를 옮기지 않는다. 매트와 소파 사이 공간은 눈에 잘 띄지 않게 거의 딱 붙어 있어서 매트를 조금만 옆으로 치우면 먼지를 청소할 수 있는데도, 굳이 매트를 건드리지 않고 살았다. 그런데 이번 주에는 두 번이나 매트를 살짝 옮기고 매트와 소파 사이를 손으로 만지며 청소했다.


그런 곳이 깨끗해질 때면 환기가 되는 느낌이 든다. 그 일을 끝내고 다시 노트북에 앉아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인데, 나는 이럴 때 몸을 움직였기 때문에 마음이 반응하는 느낌이 든다. 마치 요가 강사 생활을 할 때, 정말 수업을 하기 싫어도 한 시간 동안 열심히 몸을 움직이고 입을 움직이다 보면 끝나고 기분이 아예 달라졌던 것처럼, 몸을 움직여야만 반응하는 어떤 마음이 있다고 느낀다. 걷기 운동이 좌뇌와 우뇌를 골고루 쓰는 행위라는 이야기를 어디서 들은 적이 있는데, 그래서일까, 마음에만 집중하려고 할 때는 도저히 보이지 않던 것이, 몸을 움직이다 보면 보이기도 한다.


반대로 푹 자고 일어난 후에 쓸 수 있는 글도 있다. 어젯밤에는 친구들과 놀이동산 같은 곳에 가서 모험을 하는 꿈을 꿨다. 모험 장소에서 나오니 남편이 오만 원을 주고 핸드폰을 샀다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놀이동산에 같이 갔던 친구 두 명은 내가 인연을 지속할지 거리를 둘지 고민하고 있는 친구들이었고, 내 핸드폰은 귀퉁이에 액정이 깨지기도 했고 곧 약정 기간이 끝나서 바꿀 시기가 되던 참이었다. 나는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사람은 꿈을 꾸기 때문에 일어나고 나서 현실을 살 수 있다고 한다. 꿈에서 그 친구들을 만나서 시간을 보낸 것이, 내가 현실에서 느껴야 할 감정을 미리 느끼게 해 준 것 같았다. 그래서 현실에서는 큰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고, 거리를 두고 우리의 관계를 볼 수 있는 것 같았다. 또 오늘 가족들과 나들이에 나갔다가 핸드폰을 아스팔트에 떨어트렸다. 그래서 액정이 조금 더 깨졌는데, 나는 별로 아쉽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남편이 핸드폰을 사주는 꿈을 꾸고서는 이제 정말 핸드폰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왜 오 만원을 주고 산 핸드폰이었는지는 모르겠다. 남편은 나보다 씀씀이가 커서 큰돈을 쓸 때가 많고, 나는 그럴 때마다 당신은 돈을 너무 많이 쓴다는 이야기를 하곤 했는데, 그래서인지 핸드폰을 사는 데에 적은 돈만 썼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꿈에 드러난 건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이 꿈을 꿔서이고, 그게 좋았다.


청소를 하고 생각난 문장이든, 푹 자고 일어나서 생각난 문장이든, 몸을 움직이거나, 몸을 쉬는 것이 마음으로 가는 길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나는 언젠가부터 글이 잘 안 써진다고 느껴지면, 몸을 더 움직이거나, 아니면 아예 눕는다. 나에게 글이 막힌다는 것은 나의 어떤 감정이 막혀 있다는 의미이다. 내가 경험하고 있는 감정이 너무 섬세해서 둔한 몸으로는 잘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는데, 그럴 때 그것이 아무 감정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지나쳐버리면, 정말 아무 글도 쓰지 못한 채 흩어져버린다. 나는 그것이 싫다. 그래서 아직은 발견하지 못한 감정이 내 안에 가라앉아 있기에, 마음을 휘저어서 발견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오늘은 그 마음으로 가는 길을 몸에서 찾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반대로 생각해 보면, 몸을 움직일 수 있었던 이유는 마음을 움직였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행위로 나는 가라앉아 있는 감정이 있다고 생각했고, 찾을 것이 남았다는 것을 알았다. 몸을 움직이다 보면 몸을 생각하게 된다. 그러니까 걸레를 수평으로 잘 맞춰서 꽂아야 밀대의 집게가 흔들리지 않고, 매트 위에 있는 모빌과 아기 의자가 넘어지지 않게 살살 움직여서 청소를 해야 하고, 그런 상황에 놓이다 보면, 몸을 생각하느라, 마음을 잊어버린다. 몸을 생각하면 마음을 잊어버리고, 마음을 생각하면 몸을 잊어버리는 것이, 어쩌면 숙명인지도 모르겠다. 글을 쓰고 나면 늘 어깨가 아픈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몸과 마음의 관계를 잘 받아들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별로 달라질 것도 없다고 느껴지는 때가 많지만, 그래도 이런 것들을 알게 된 걸 보니, 나에 대해서 참 많이 알게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의 이전글 집을 사는 것보다 더 나은 행복이 있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