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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맘 Apr 22. 2021

과거를 바꾸는 유일한 방법, 1가지

옛날 고양이 지금 고양이

나는 이십 대 초반에 '쿠키'라는 고양이를 키웠다. 쿠키는 그 시절 직장도 변변치 않고 연애에도 미숙해서, 밤이면 울기만 하고 술을 마시느라 집에도 늦게 들어오는 나 때문에 고생을 했다. 일 년에 한 번씩 원룸으로 이사를 다녀야 했고, 돈도 없어서 그 흔한 츄르 하나 못 사주고 똑같은 사료만 몇 년을 먹었다. 그렇게 두 살부터 다섯 살까지 자라는 동안 나는 쿠키에게 해주지 못했던 것들을 미안해하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나중에, 나중에 하면서 미뤄 두고 있었다.


시간이 더 지나면 더 좋은 간식을 사줄 수 있겠지, 좋은 캣타워를 사줄 수 있겠지 생각만 하다가, 쿠키는 다른 집으로 가게 됐다. 쿠키가 아기 고양이일 때부터 기르던 사람에게 다시 돌아간 거였다. 사실상 나는 삼 년간 쿠키를 임시 보호한 셈이었는데, 그렇게 쿠키가 죽거나 아프지 않게 보호를 해낸 나는 어떤 상황이 종결된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쿠키에게 좋은 보호자가 되는 데 실패했던 일은 시간 속으로 사라질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내 역할을 다했으니 이제 다른 시절로 걸어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후, 몇 년 동안이나 쿠키는 꿈에 나왔다. 꿈속에서 나는 쿠키의 하얗고 보드라운 털을 쓰다듬다가 깨어나기도 하고 쿠키와 뒹굴며 놀다가 결국 비어 있는 밥그릇이나 물그릇을 발견하고 화들짝 놀라기도 했다. 곧바로 심장을 붙잡고 호흡을 해야 했던 때도 있었다. 다 꿈일 뿐이라며 그냥 넘길 수 있을 때도 있었지만, 쿠키에 대한 기억은 그렇게 지긋지긋하게도 나를 따라다닌다고 느꼈다.


그 후에는 묘한 일이 일어났다. 시간이 흘러 길에서 ‘명성이’라는 고양이를 구조하게 되었다. 생김새도 쿠키와 비슷한 명성이는 구조 당시부터 구내염에 면역 질환을 앓고 있는 아이였다. 나는 쿠키를 돌볼 때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돈을 명성이를 위해서 쓰며, 정성스레 보호자 노릇을 했다. 병원도 일주일에 한 번씩 데려가고, 좋은 영양제와 약과 간식을 먹이고, 사료도 비싼 걸 가리지 않고 먹였다. 집에 오랫동안 붙어 있으면서 무릎 위에 올려놓고 쓰다듬는 일도 쿠키를 돌볼 때보다 훨씬 많았다.


신기했던 것은, 명성이를 돌보는 것으로 쿠키에 대한 기억이 치유된다고 느꼈던 것이다. 어쩌면 명성이를 구조한 것 자체가 쿠키에 대한 기억 때문일지도 몰랐다. 명성이를 보면 쿠키를 생각하게 됐다. 다른 집에서 안락히 지내고 있을 쿠키였겠지만, 명성이를 돌보는 것으로 쿠키에 대한 딱딱했던 마음이 물렁물렁해지는 것은 신기했다. 아마 나는 쿠키를 대했던 내 모습을 오랫동안 잘 인정하지 못했던 것 같다. 무언가를 바꾸고 싶었던 것 같다.


지나가버린 시간을 바꾸고, 지나가버린 모습을 바꾼다는 게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그런다고 과거의 쿠키가 돌아오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 밖에 나간 동안 심심하게 지낸 과거라든가, 가끔은 배가 고파도 사료를 바로 먹지도 못하고 참아야 했을 모습, 내가 외출하는 내내 울부짖어야 했을 쿠키의 시간이 보상받는 것도 아닐 거였다. 다만 내가 느꼈던 것은, 쿠키에게 좋은 보호자가 되어 주지 못했던 스스로를 원망했던, 그 마음이었다.


그 마음이 물렁물렁해진다고 느꼈다. 과거의 내 모습은 나에게 상처였을지도 몰랐다. 미처 물 흘러가듯 떠나보내 지지 않는 과거의 모습이 있다고 느꼈다. 고체처럼 남아 내 현재 앞에 떡하니 버티고 있는 과거는, 현재에 책임져야 한다고 느낀다. 과거라고 부르기보다, 그냥 그것이 지금의 내게 주어진 숙제인지도 몰랐다. 매일 명성이를 돌보고, 정해진 약을 먹이면서 건강이 악화되지 않는 것에서 기쁨을 찾고, 길에서 발견한 생명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면서, 나는 그렇게 내 과거에 대해 많이 생각했던 것 같다.


흔히 과거는 지나간 시간이라고 한다. 그러나 과거에 하지 못했던 것들을 현재에 해내면서 살아가다 보면, 과거와 현재가 마치 사람의 관계처럼 조금은 나아지는 측면이 있는 것 같다. 나는 그것이 과거의 나를 조금은 더 사랑하게 되고, 인정하게 되고, 후회가 덜어지는 일이라고 느낀다. 그런 태도가 과거의 부족한 모습으로부터 나를 벗어나게 한다고 느꼈다. 더 발전할 수 있는 길을 만드는 거겠다는 생각을 했다. 삶이란 그렇게 만들어지기도 할 것이다.


그러니까, 결국 현재인 것이다. 그렇게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며 살아갈 수 있다면, 상처도 무서운 것이라기보다, 내가 바꾸면 되는 일이거나 다르게 살아볼 수 있는 여지가 있는 일이 될 것이다. 현재에는 그런 힘이 있는 것 같다. 과거의 어떤 모습을 바꿀 수 있고 다르게 살아볼 수 있는 여지는, 현재에 있을 것이다. 그렇게 현재를 살아가다 보면, 내가 내 삶의 치유자가 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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