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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맘 Apr 24. 2021

시든 꽃을 따먹으면 고요한 맛이 나

내가 계절과 엄마를 사랑하는 방법

이상한 꿈을 꾸었다. 누가 나왔는지, 꿈에서 내가 사람이었는지, 토끼였는지 헷갈린다. 꽃밭에 있었고, 싱싱한 노랑, 주황 꽃들이 풀의 초록과 그림처럼 어우러져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나는 그 자연에 비해 매우 작은 몸으로 앉아, 한 손으로 풀을 뜯으며 이렇게 말한 것 같다. “시든 꽃을 따먹으면 고요한 맛이 나.” 꿈에서 깨자마자 남편에게 문자를 보냈다. 나 꿈을 꿨는데 꿈에 저런 대사가 나왔어. 혹시 이런 표현 들어본 적 있어? 처음 듣는다고 했고, 나도 이런 표현은 처음 말해본다고 했다.


꽃이 피면, 꽃이 지고, 꽃이 지면, 꽃이 핀다. 나는 사실 활짝 핀 꽃도, 이미 저물고 땅에 떨어져 흙밑으로 돌아가 거름이 된 꽃도, 좋아한다. 흙을 밟으면 지난 계절 낙엽이 되어 떨어졌던 꽃들의 시간을 밟는 느낌이 든다. 서걱서걱. 내 몸의 무게가 대지의 시간을 밟을 때면 무선 이어폰에서 나오는 기가 막힌 재즈 음악도 방해가 된다. 그저 걸으며, 냄새를 맡고, 주변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소리, 자동차의 클락션 소음, 걸을 때마다 살갗에 스치는 바지의 촉감과 조금 커다란 신발, 엄지손가락 하나가 남을 정도로 커서 신발 안에서 자꾸만 부딪히는 발을 느낀다. 출산 후 발이 부을 것을 대비해 두 치수나 크게 사 뒀던 신발을 신고 걸을 때, 이렇게 오래 걸을 줄 알았으면 꼭 맞는 신발을 신고 올 걸 하다가도, 이제 백 일이 넘은 내 아이가 매일 반짝이는 눈으로 집안의 물건들을 구경하는 것처럼, 삼 월 말이 되어 핀 꽃을 본다. 나는 꽃을 볼 때, 대략적인 색깔만 보면서도, 꽃잎을 아주 자세히 보아야 보이는 어떤 실핏줄까지 잘 관찰하는 편이다. 꽃의 이름도 잘 모르고, 그림으로 그려 보라면 어떤 색깔로 그려야 할지 헷갈리지만, 마음속에서는 뛰어노는 모양을 보면, 분명 각기 다른 색깔이다. 너무나 달라서, 지구 정 반대편에서도 생존할 수 없을 것 같은 꽃들도 있다. 다른 행성에서 온 걸까, 그런 꽃들은.


화성의 존재를 알려준 사람이 있었다. 달의 동남쪽 사십오 도에 떠 있는 주황색 별은 화성이다. 그가 화성을 보며 나에게 말할 때면, 그와 나 사이의 간격이 화성과 지구의 간격처럼 멀어 보이기도 했다. 지구에 나란히 핀 꽃들이 서로 사랑한다면, 서로가 다른 행성에 있다고 믿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마음이 꽃에 깃든 건지, 모든 꽃은 서로 다른 생김새를 가지는 축복을 얻었다. 벚꽃은 암술과 수술 주변으로 둥근 꽃잎이 옹기종기 영근 모양이고, 매화는 꽃잎이 암술과 수술을 받치는 것처럼 새초롬하게 생겼다. 목련이 떨어진 모습을 보면 하얗고 두꺼운 종잇장 같다.


오늘 엄마는 말했다. “꽃잎인지 나비인지 모르겠어.” 그러다가, “꽃잎이 하나하나 나비인 거 아니야?” 나는 남편과 엄마의 뒤에서 흐뭇하게 좋은 날씨와 이 계절을 바라보고 있었다. 육아에 지쳐 주말에도 나들이가 쉽지 않은 우리였는데, 엄마 덕분에 모처럼 밖에 나온 것이다. 엄마는 벚꽃 나무 아래에 서더니, 나무를 발로 좀 차 달라고 말했다. 나는 이 두꺼운 나무를 발로 찼다가는 내 다리가 남아나지 않는다면서, 손으로 가지 하나를 잡고 흔들어 주었다. 엄마는 꽃잎이 눈처럼 내리는 나무 아래에 서서, 계절의 주인공이 된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엄마는 말했다. 지금까지 나는 아이 같다는 말만 들어왔어. 내 이런 성격이 평생 콤플렉스인 줄 알고 살았는데, 상담을 받으면서 괜찮아졌어. 그러니까 너희 덕분이지. 엄마는 일 년 전까지만 해도 나와 연락을 하지 않았다. 결혼식에 아빠를 초대한 게 섭섭했다는 이유였는데, 임신한 나에게 축하한다는 말도 해 주지 않았고, 집에서도 누워만 있었다고 했다.


자연이 예쁘다는 것도 늙어서 알았다고 했다. 나연이 너는 어떻게 그 어린 나이에 나무가 예쁜 걸 알아?  꽃잎인지 나비인지 잡아서 확인해 보겠다며 허공에 팔을 휘젓는 엄마. 나 이제 새아빠가 이상한 소리를 해도 혼자 울지 않아. 그냥, 괜찮아졌어. 유모차를 끄는 엄마의 뒷모습이 자유로워 보였다. 엄마와 아이와 남편과의 산책이라니. 그것도 봄에. 꽃잎은 바람처럼 당연하게 불었다. 나비는 꽃잎보다 조금 더 크고, 꽃잎과 비슷한 여린 빛깔을 가지고 있었다. 바람이 분다고 해서 땅으로 떨어지지는 않았다.


꽃잎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을 죽음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나무는 계절만 바뀌면 금세 잎을 떨구고, 잎은 금방 거름이 될 준비를 한다. 떨어진 꽃잎은 사람이 쓸어 담는 건지, 금방 없어져버린다. 차라리 바람에 날려서 인적이 드문 산길에 도착하는 것이라면 좋겠다. 내가 가본 적 없는 대지를 두고 어떤 계절이라고 상상할 수는 없을 것이다. 꽃잎이 흙밑으로 들어가고 고양이의 발에 밟혀서 더 깊은 곳으로 이동하는 동안 나무는 자신은 알 바 아니라면서 다음 계절을 준비할 것이다. 무수한 죽음의 목격자인 사람들은 떨어지는 꽃잎 아래에서 사진을 찍는다. 계절이 지나가는 것을 기뻐하는 걸까. 엄마는 내가 가지를 다 흔들고 “이제 됐어. 다시 가자” 말하자마자 신나게 유모차를 끌고 앞으로 걸어갔다.


“시든 꽃을 따먹으면 고요한 맛이 나.” 꽃을 먹을 수 있다면 순간적으로 대지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계절을 지나 도착한 꽃잎이 엄마의 위에 있었다.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린 엄마의 몸짓이 크게 벌린 입같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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