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리맘 Apr 29. 2021

내가 나쁜 엄마면 어떡하지

오늘 페이스북에서 아기의 냄새를 달콤하다고 표현하는 분을 봤다. 특별한 표현도 아닌 것 같고, 댓글에도 사람들이 쉽게 동의하는 것 같았는데, 그 아기 냄새가 달콤하다는 표현을 계속 곱씹게 됐던 것과, 내 입에서 괜히 퀘퀘한 냄새가 나는 것 같았던 마음에 대한 이야기다.


나는 오 개월 전에 아기를 낳았다. 작년 11월 16일이었으니까 벌써 오 개월 하고 절반이 지난 일이다. 18시간의 진통 후에 수술로 아이를 낳았던 나는 출산 직후에는 거의 좀비 상태로 누워만 있었다. 그렇게 아픈 산모의 몸에도 젖은 돌았다. 나는 그때, 정말 인류의 번식 과정은 신의 장난 같은 거라고 생각했다. 인류고 뭐고 수천 년의 과학 발전을 무시하고 출산을 했다고 젖부터 도는 내 몸이 굉장히 미개하고 촌스럽게 느껴졌다.


그러나 보통의 산모들은 잠지가 찢어지거나 아랫배가 찢어진 몸에 젖까지 돌아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팅팅 붓고 괄약근이 없는 젖꼭지에서 젖이 줄줄 흘러넘쳐 티셔츠와 이불보가 다 젖어도, 꼼짝없이 누워만 있을 정도로 아픈 그 젖몸살을 상당히 잘 이겨내고 차려진 밥 앞에서는 생각보다 잘 웃는 것처럼 보였다. 조리원 식사 시간에 "저는 사실 매일 밤마다 울어요" 고백했을 때 '갑분싸'가 되는 경험을 했다.


당시에 유행했던 <산후조리원>이라는 드라마에서 보면 그 정도의 파격적인 발언은 조동(조리원 동기들)끼리는 놀랍지도 않아 보였는데. 눈으로만 보고 익힌 드라마 감각이라 현실세계의 감각으로 잘 매칭 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나는 아무에게도 전화번호를 물어보지 않고 조리원을 나왔다. 그 덕에 친구인 엄마도 별로 없고. 암튼.


집에 오고 나서도 아기의 냄새는 별로 달콤하지 않았다. 산후도우미 이모에게 아기에 대한 모든 것을 맡겨 놓고 나는 잠만 잤다. 오전에는 정형외과에 가서 체외충격파를 맞고 오후에는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았다. 그리고 단유했다. 손목이 아파서 정형외과에 갔을 때 의사는 나에게 굉장히 찝찝한 표정으로 항생제를 처방하면서 물었다. 아기가 자기 전에도 젖을 안 물린다고요? 그렇다고, 그러니까 항생제를 달라고 내가 아무리 단호하게 말해도 계속해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사실 내 감정의 가장 낮은 부분을 책임지고 있는 건 아기를 낳은 후로는 거의 틀림없이 내가 나쁜 엄마인 것 같다는 감각이다. 아기와 같이 깔깔거리며 웃고 나서도 밤에 자려고 누우면 아기가 울었을 때 바로 달려가지 않고 밥을 한 숟갈 더 먹었던 내 모습이 아구 안 맞는 주춧돌처럼 덜그럭거린다. 그럴 때면 내 엄마를 생각하게 된다. 엄마는 아픈 젖꼭지에 꿀을 발라 가며 모유를 먹였다. 그러느라 자신에 대해서 생각할 시간 따위는 없었을 것이다. 그런 사랑을 받고 자란 아기 중 하나가 나인 것이다.


내가 어미에게 받은 사랑을 그대로 보존하고 업그레이드까지 하기는커녕 다운그레이드 되는 것이 아닌가 고민될 때면 내가 세상에 살아가는 이유를 도저히 발견하기 힘든 마음이 된다. 내가 엄마에게 받은 사랑보다 더 못한 것을 주는 거라면 더 부실하게 지은 건물, 더 맛없게 만든 요리, 더 못생긴 얼굴이 되는 것 아닌가 싶어 그냥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싶어 진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기도 행복하다는, 그런 결론은 쉽게 나오지만 그래서 왜 그렇게 하는 것이 나에게 행복을 주는지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다. 그건 단순히 내 행복에 대해서 고민하는 일이다. 어려운 일이다. 내가 또렷하게 행복할 수 있는 만큼 내 아이에게 떳떳할 수 있게 되는 걸까.


어떤 신은 말하고 있다. 네깟 게 뭔데 네 행복을 논해. 그냥 네 모든 사랑을 아이에게 줘. 너를 아이에게 줘. 그러나 나는 내 존재가 갈아 없어질 것 같은 기분으로 아주 쉽게 가곤 한다. 이런 존재가 나인 것이다. 세상에는 정말로 이런 엄마도 있는 것이다. 나를 고갈시켜서 아이에게 주는 마음에 대해서는 별로 글로 남기고 싶지도 않다.


사실은 내 아기의 목덜미 냄새를 맡으면 너무 달콤해서 질식할 것 같다. 오늘은 정말 엄마 정체성 말고 다른 정체성은 다 갖다 버리고 싶을 만큼 아이가 예뻤다. 하루하루 해월이는 더 예뻐진다. 아름다울 만큼 사랑스럽다. 진짜 눈물 나게 귀엽다. 그래서 하는 이야기다.

작가의 이전글 시든 꽃을 따먹으면 고요한 맛이 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