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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맘 May 02. 2021

성공과 실패 사이에 존재하는 기회

삶이 징검다리라면

나는 개인적으로, 겸손함이라는 것도 가끔 기회처럼 찾아온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한 달 여 전에 내 글이 카카오톡 메인과 브런치 인기글로 올라가고 하루에 십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게시물로 유입됐을 때, 나는 뛸 듯이 기뻤다. 그때 내게 닥쳤던 것은 내가 무언가를 해냈구나, 내가 해냈구나, 하는 마음이었다.


물론 무언가를 해낸 것은 맞을 것이다. 그런데 SNS에 내가 쓴 글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다는 글을 쓰고자 했을 때, 그냥 내가 해냈다고, 나를 축하해 달라고 덜렁 쓰고 싶지는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그렇게 쓰기가 가장 싫었던 것 같다.


어떤 성과를 이룬 것을 가지고 어떤 성과를 이뤘다는 말만 남겨놓는다면, 나는 아마 자신감에 가득 찬 상태로 다음 기회를 기다리는 사람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감으로 가득 찬 내 모습을 생각하면, 어깨가 떡 벌어져 있고, 고개는 빳빳하게 들고 있는 모습이 떠오른다.


나는 사실 그럴 때, 그러니까 어떤 성공을 했다는 생각으로 휩싸여있을 때, 만약에 다음에 실패하면, 완전히 망하면 어떻게 할까, 같은 것을 같이 생각하는 편이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기는 매우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자신감에 넘쳐 있는 상태에서 언젠가는 망할 수도 있다, 는 상태로 가는 데에는, 그 사이에는 어떤 '다리'가 존재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것이 징검다리라고 하면, 돌에서 다음 돌로 넘어가기 전까지는 발아래에 물이라고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냥 딱딱하고 평평하고 묵직하게 내려앉은 돌 하나가 있을 뿐이다. 그 돌에서 다음 돌로 넘어갈 때, 그러니까 다리를 건널 때, 나는 자신감이 넘치는 영역에서 머무를지, 아니면 그다음 단계로 갈지를, 내 발로 선택하고 뚜벅뚜벅 걸어가는 듯한 느낌이 든다.


나에게는 그다음 돌이라는 것이, '내가 다음에는 망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물론 잘한 것은 잘한 것일지도 모르고, 그냥 다짜고짜 나는 잘했다고 말하는 편이 속 시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다음에 다른 무언가가 존재한다고 믿는 편이, 내가 어떤 성취를 이뤘는지에 대해서 오히려 더 잘 알려주는 것 같기도 하다.


브런치에서 내 글이 어떤 성과를 얻었을 때, 나는 다음 글을 올리기가 어려워지는 경험을 했다. 어쩌면 나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지지는 않았을까, 내 글을 누군가 기다리면 어쩌지, 하면서 전전긍긍하느라 다음 글을 올리기가 두려웠던 기억이 있다. 그때 몇 날 며칠을 문장과 싸움하면서 그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부담감'이라는 것을 느꼈다.


그러고 나서 내가 다음 글을 업로드했던 것은 "에라이 모르겠다" 같은 마음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혹시 이 글에 하트가 하나도 눌리지 않더라도 괜찮을 것 같은 마음을 먹었을 때, 다음 글을 올렸다. 내가 그때 그다음 글을 올리기까지의 시간이 어쩌면 징검다리 사이에 있는 시간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자신감에 가득 차 있는 스스로를 가끔 발견할 때면, 나는 어떤 단계로 넘어가기 전의 과도기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것이 이제는 어느 정도 습관으로 자리 잡은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남들보다 더 겸손한 사람도 아니고 더 고개 숙일 줄 아는 사람인 것도 아니다. 다만 내가 다리 사이에 있다고 믿고 있으면, 기다리게 된다.


마냥 자신감에 차 있는 나의 상태를 기다리면서 지켜볼 수 있게 되고, 그러다 보면 다음 단계의 문이 열리는 느낌이 든다. 그것이 내게는, 다음번에 실패할 수도 있음을 미리 예측하면서 이번의 성공에 대해서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는, 성공으로부터 얻은 내면의 힘이나 보람을 한번 더 상기하는 단계가 되는 것 같다. 그것은 곧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준비가 되는 것 같다.


성공의 단계에서 실패의 단계로 나아간다는 말이 조금 이상할지언정, 내게는 그런 믿음이 일종의 안도감을 주는 것 같다. 다음에는 실패할 수도 있으니 이번 성공 한 번으로 스스로를 판단하지 말라거나, 너무 조급해지지 말라는 메시지를 주는 것 같다. 그것이 내가 챙겨갈 수 있는, 내 인생에서 주어지게 할 수 있는, 어떤 기회라고 느낀다. 어쩌면 성공과 실패 사이에 가장 큰 기회가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물론 실패에서도, 성공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어쩌면 수직의 다리가 아니라 수평의 다리에서 늘 뚜벅뚜벅 걸어갈 준비를 하고 있는 존재니까 말이다. 하나의 돌 위에 서서 다음 돌을 바라보고, 돌 사이로 흘러가는 연약한 물을 바라보면서, 그렇게 여러 다리를 옮겨 다니면서 살고 싶다. 결국 내가 있는 곳은, 내가 아니라, 내가 있는 곳일 것이다. 그런 사실을 상기하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어쩌면, 겸손인지도 모르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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