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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맘 Jun 11. 2021

이혼의 불행을 딛고 결혼의 행복을 찾는 법

불행을 끊고 행복을 받아들이다

결혼 후 아이를 낳고 나서는 내게 너무나 커다란 행복이 찾아왔다. 아주 어린 시절 부모가 이혼하는 일을 겪었던 나에게, 가족의 울타리란 생전 처음 겪어 보는 것처럼 다가왔다. 가족이라는 것이 이렇게 안정감을 주었던 적은 기억나지도 않았기에, 오히려 그 행복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무너질 걱정 없고 위태롭지 않은 가정 속에 내가 있다는 사실을, 아침에 일어나면 사랑하는 사람이 웃으며 내 이름을 부르고 저녁이면 마주 앉아 밥을 먹으면 된다는 것을, 처음에는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남편은 자신을 더 믿어 달라고, 우리는 영원히 함께하는 거라고 말하곤 했지만 나는 왠지 이것도 언젠가 다 끝나버릴 것 같고 남편이 하루아침에 나를 떠날 것 같고 소중한 아이가 바스러져 버릴 것 같다는 생각에 혼자 악몽 속에 빠져 있던 시간이 있었다. 어느 날, 내가 내 행복을 걷어차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이런 마음으로 아이를 키웠다가는 불행을 물려줄 게 뻔했다. 용기를 내어 상담소로 찾아갔다. 이전의 나를 버려서라도 새로운 나를 얻겠다는 결심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누워서 눈을 감고 무의식을 돌아보는 치료를 받았다. 그때 내가 본 것은 검은 터널 속으로 계속 이어지는 검고 가느다란 길이었다. 상담 선생님을 따라 마음속 무언의 이미지를 마주했을 때, 암흑 속에서 발견된 아주 작은 빛이 있었다. 선생님은 그 빛이 점점 커지는 걸 상상해 보라고 했다. 나는 그저 두려워서 아니에요, 안 할래요 말하고 있었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어느새 나에게 찾아온 행복을 받아들이듯, 선생님의 말을 따라 그 하나의 밝은 빛 속으로 내 온몸을 맡기고 있었다.


상담을 마치고 밖으로 나왔을 때, 내가 그 전에는 색안경이라도 끼고 있었나 싶을 정도로 세상이 아주 밝게 보였다. 어두운 실내에서 눈을 오랫동안 감고 있다가 밝은 야외로 나와서 그랬던 건지, 정오의 시간쯤이어서 유난히 햇빛이 강했던 건지, 아니면 정말 내 무의식에 변화가 일어났던 건지는 모르겠다. 영문 모를 빛이 내 내면에 스며든 느낌이 들었다.


그것을 계기로, 나는 행복한 현실을 받아들이자, 하고 다짐했던 것 같다. 그냥 행복해지자, 그렇게 생각했다. 상담 선생님이 하셨던 단 하나의 말이 기억난다. "이제 나연씨는 다음 차원으로 나아가는 거예요. 그래서 여기에 제 발로 걸어온 거고. 나연씨는 이미 알고 있어요."  뭐라고 할까, 선생님이 내게 주신 것은 믿음이었다. 나는 이미 알고 있고 나에게 찾아온 것을 이제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는 믿음. 나를 먼저 믿어준 사람을 나는 배신할 수 없었다.


깊은 신뢰란 아주 많은 시간을 절약하게 해 준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혼자 해쳐가야 할 수많은 길이 믿음 앞에서는 아무 필요가 없어진다. 강인한 누군가가, 나는 너를 믿는다고, 말해 주는 것만으로 나는 뒤돌아보지 않고 싸울 힘을 얻을 수 있었다. 나는 그렇게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지금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내가 가진 것이 그렇게 두툼해 보이지만, 사실 별 것 없다. 내 내면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나를 믿고 사랑했던 사람들이 내게 보내 주었던 지지 몇 개가 떠오른다. 나는 그런 지지를 딛고 한 칸 한 칸 계단을 올라가듯 시기를 견뎌내며 살아갔다.


내가 정말 다음 차원으로 옮겨왔음을 믿는다. 그 말 한마디가 신호탄이 되어준 것이다. 이제 나에게도 꿈이 있다면, 또다시 누군가의 응원에 힘을 얻어 살아가겠지만, 나도 또 다른 누군가에게 힘이 되는 것이다. 그런 것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그런 것이 나를 살게 한다고 느낀다. 나 또한 어떤 어두운 마음에, 튼튼한 동아줄 같은 손 하나가 되어주는 때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왠지, 나도 그런 마음으로 다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도착한 차원, 그리고 이전에 머물렀던 차원이 늘 내 곁에 있는 것처럼, 어떤 어둠은 자꾸 내 옆에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내 눈앞에 찾아온 빛들을 더 자주 보고, 그것이 지금 내게 주어진 길이라고 믿을 뿐이다. 이런 믿음이라는 것도 정말 밑도 끝도 없어서, 믿는 이유랄 것도 없다. 그냥 믿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참 신기하고 이상한 일이다. 그런 아무 이유 없는 믿음이 우리 가족의 행복을 지탱하고 있다는 것은 참 이상하다. 행복이라는 것은 어쩌면 그렇게 이상하고 영문 모르는 일인지 모른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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