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리맘 Aug 01. 2021

아이가 너무 아름다울 때, 나는 글을 쓴다

인스타그램에 텍스트 업로드하는 엄마

아이가 너무 아름다울 때, 다른 엄마들이 사진을 찍고 인스타그램에 올릴 때, 나는 글을 쓴다. 아이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소중한 오늘의 추억에 대해서, 기억하고 싶은 눈빛에 대해서 말이다. 소중한 순간을, 다름 아닌 문장과 맞바꿔온 것이 언제부터였을까 생각한다.


초등학교 때는 시켜서 쓰는 일기가 학교 활동 중에 제일 재미있는 것이었다. 당시에, 몇 년 치 일기장을 통째로 잃어버린 일이 있었다. 그때 나는, 일기장이 아니라 나를 통째로 잃어버린 느낌이 들었다. 그 일기장이 지나간 시간을 대변하는 유일한 목소리인 것처럼 느껴졌다. 애써서 꾸며둔 박물관 한 칸이 통째로 불에 타버린 것 같은 기분이기도 했다.


그 시기의 나는 부모님의 이혼 후 잦은 이사를 겪고 있었다. 안전하게 지낼 곳도, 밤이면 마음을 푹 놓고 몸을 뉘일 수도 없었다. 함께 살고 있던 아빠에게는 일기장을 잃어버린 슬픔에 대해서 말하지 못했다. 가장 가까운 사람도 이해할 수 없는 내 마음을, 친구는 이해할까, 또 다른 누군가는 이해할까 싶었다. 바로 그즈음부터, 아마 나는 무언가를 기록하며 살게 되었다.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게 된 마음이 있었을 때부터, 무언가를 기록하며 살게 되었다.


종이 위에 글을 쓸 때면 혼자였기 때문일까, 그러나 그렇게 쓴 글을 묻어두지 않고 누군가에게 내보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첫 독자는 담임 선생님이었다. 연필로 서툴게 적어 내린 나의 글씨와는 다르게, 단정된 글씨체로, 지워지지도 않는 빨간 펜으로, 일기 아래에다가 나름의 감상평을 달아 주시는 게 좋았다. 감명 깊게 읽었다, 잘 썼다는 칭찬이 쓰여 있을 때면, 마음이 벅차서 집으로 가는 발걸음도 가벼워지곤 했다. 공부에 특출 난 재능은 없었지만 잘 못 친 성적표를 아빠에게 내밀면서도 당당했다. 나의 마음속 깊은 곳 어딘가가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이라는 게 있었다.  


그런 과거는 마치 전생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어느새 일기 하나를 썼다고 페이스북에 천 명 넘는 친구들에게 보여주는 사람이 됐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런 거대한 세상 속에서도 나에게는 기억이 덕지덕지 묻은 나만의 공간이 있다. 가능하면 매일 그 공간으로 들어오려고 애쓰면서, 글을 쓴다. 매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지는 못해도, 나는 내 메모장에, 페이스북 비공개 게시물로, 노트북 에세이 폴더에, 매일 글을 기록하고 있다. 오래된 일이다. 점점 쌓이는 글을 보는 기분이란 통장 잔고가 쌓이는 사람의 기분과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을 만큼 든든하다.


아직도,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는 나만의 글이 나에게는 더 많다. 가끔 그게 외롭다고 느껴질 때면, 글을 쓰는 것은 애초에 나를 위한 일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아마도 나는 사랑이라는 주제에 관해서 몇 천 개의 문장은 써냈을 것이다. 이십 대 시절, 연애를 하면서 터져 나오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써낸 문장도 있을 테고, 구체적으로 내 마음을 표현하지 않으면 마음이 너무 간지럽다고 느껴서 기록한 문장도 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더 잘 고백하기 위해 미리 혼자 연습해본 문장도 있을 것이다.


그런 식으로 써낸 문장이 모두 세상 밖으로 당장 나올 수 있는 것은 아니었으므로, 그저 세상과는 상관없이 우선 써 내려가 보곤 한다. 다만 오늘의 사랑을 기록하는 마음으로 쓰고 있으면, 내가 예전에 썼던 문장들이 문장마다 하나의 눈과 팔을 달고 나를 도와주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어쩌면 하나의 문장은 하나의 시간일 수도 있다. 시간이 그냥 흩어져버리지 않고 문장 하나로 남았다면, 그 문장은 그 시간을 기록한 유일한 존재이면서, 지나간 시간을 대체할 수 있는 유일한 추억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아이가 너무 아름다울 때도, 다른 엄마들이 사진을 찍을 때 나는 글을 쓴다. 문장을 특별하게 만들려는 노력을 사실은 매일 반복하고 있다. 그런 문장들을, 시간들을 토대에 깔고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지금의 나를 보면, 사랑에 대해 더 잘 알게 된 사람이 됐다기보다, 그저 과거의 시간들이 나를 도와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랑에 대해서 말한 내가 사랑에 대해 잘 아는 것처럼 비칠지언정, 사실은 그냥 내 문장들을 모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시간을 문장과 맞바꾸는 일을 계속하고 싶다. 문장은 가끔, 사람 같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를 돕는다고 느낄 때가 있다. 평면에서 멈추지 않고 통통 튀어올라와 내 삶을 감독한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큰 책장에 들어찬 책을 보면서 사는 것이 누군가 삶의 로망이듯, 나는 마음의 창고에서, 문장들에게 둘러싸여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아무리 주변 상황이 변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가도 절대 건드릴 수 없는 마음속 창고에 쌓아가고 싶은 보물이, 바로 문장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그런 마음으로 글을 써나가다 보면, 결국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살아갈 수 있는 게 아닐까 상상한다. 오늘 하루를 잘 써냈다면, 일주일을 잘 써낼 것이고, 일주일은 한 달이, 한 달은 일 년이, 일 년은 십 년이 될 거라고 믿어보곤 한다. 마음을 들여 써낸 문장이 결국 내 삶의 든든한 지원군으로 남는다고 생각하면, 문장마다 눈을 달고 내 삶을 지켜봐 줄 거라고 생각하면, 삶도 나를 배반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글을 쓰는 만큼 든든해진다.

작가의 이전글 아이를 낳으면 죽고 싶지 않을 줄 알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