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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롱할영 Nov 29. 2024

가족과 돌봄의 의미

돌볼 수 있는 마음을 먹는다는 것

결혼에 대해 보수적인 의견 하나를 말해보자면, 나는 결혼을 두고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것으로 '내가 누군가를 돌보고 배려할 수 있는 사람인가'를 돌이켜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서 두 사람이 한 가정을 이룬다는 것은 서로를 '연인'을 넘어 '가족'으로 받아들인다는 뜻과 함께, 양가가 함께 가족으로 어우러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서로 책임지고 돌봐야 할 가족들이 더 많아지니 '나를 위한 것'이 우선시 되어야 하는 사람이라면 결혼이 과연 맞는 선택일까를 고민해야 한다는 소리다. 요즘 결혼 트렌드는 서로 양가에는 터치하지 않고 둘만 잘 지내는 것이라지만, 가족이 된 이상 '둘만 잘 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서로의 가족들이 모두 문제 없이 살고 있어야 둘도 행복한 법이니까.


그래서 나는 가족이 된다는 것은 서로를 돌보면서 산다는 의미이기도 하다고 생각한다. '희생'이라고는 하지 않겠다. '희생'은 나의 무언가를 바치거나 버리면서 위하는 것인데, 가족 간의 돌봄에는 어떤 목적이 있다기보다는 '우리 함께 행복하게 살자'는 기도가 깃들었기에 그 단어를 사용하기에는 부적합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아무리 가족 간이라도 돌봄이 의무가 되어서는 안 된다. 서로 간의 믿음과 사랑이 기반에 깔려 있을 때, 그를 위하는 마음이 절로 동해서 절로 하게 되는 것이어야만 한다. 그런 가족이라면 서로를 돌보는 일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을 것이고, 매번 고맙다는 표현을 하며 그 사랑을 이어나갈 것이다.

살아보니 서로를 돌보아야 하는 때는 정말 시시때때로 생긴다. 누군가가 아프거나 다칠 수도 있고, 어떤 때는 마음이 아픈 때도 생긴다. 또 한 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아이들은 늘 보살핌이 필요하며, 나이가 들면 그 나름대로 다른 가족들의 돌봄이 필요해진다. 가정 안에서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 못하면, 그 결핍이 그의 내부에서든 외부적으로든 문제를 일으킨다. 한 사람이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가족 간에 사랑이 항상 기반이 된다는 것을 점점 더 느끼고 있다. 그러니 가족이 된다는 말에는 '돌봄'이 늘 수반되는 것이다.


문득 가족 간의 돌봄에 대해 생각하게 된 것은 우리 엄마와 시아버지의 병환으로 다음 달에 두 번의 대학병원 방문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작년에 심장에 인공 판막을 넣는 큰 수술을 했던 엄마가, 이번에는 인공 심박동기를 달게 되었다. 그때보다는 작은 '시술'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마음이 무겁기는 매한가지다. 엄마의 심장에는 이제 두 개의 인공 장치가 박혀있는 것이니까. 사람들이 그냥 엄마를 밖에서만 볼 때는 워낙 잘 웃고 놀러도 잘 다니니셔서 아픈 사람인 줄 잘 모른다. 하지만 엄마의 심장에는 늘 문제가 있었고, 엄마는 그게 문제인지 모르고 살다가 진단을 받고 평생 몸을 관리하면서 살게 되었다.


오랫동안 엄마의 병을 알고 있었던 나는 작년 엄마의 수술 때 병원에 함께 들어가서 엄마를 간호했다. 그 전에도 엄마는 꽤 자주 입원했었는데, 회사를 다니던 터라 엄마를 간병하겠다고 휴가를 내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게 늘 마음에 걸렸다.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내게 더 중요한 건 엄마라서 같이 있고 싶었으니까. 그러다 미루고 미루던 엄마의 큰 수술이 잡혔던 작년에는 큰 마음을 먹었다. 이번에는 휴직을 하고서라도 같이 있어보겠노라고. 지금 내가 엄마와 함께 하지 않으면 얼마나 후회할지 생각했다. 회사 일로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쳐있기도 했던 때라, 내가 과연 일을 엄마와 함께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도 생각했다. 단연 엄마가 먼저였다. 어렵지만 휴직을 결심했었고, 그렇게 엄마의 큰 수술에 함께 할 수 있었다. 평소에는 아빠가 엄마를 돌보시지만, 그 때만큼이라도 내가 엄마의 보호자가 될 수 있어서 조금이나마 마음이 편할 수 있었다.


그 때만 해도 시아버지까지 아프시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땐 아버님이 오랫동안 시어머니를 간병하고 계셨을 때여서, 아버님의 몸에도 문제가 생기는 상황은 상상도 하기가 싫었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매번 간병하시는 아버님도 몸 관리를 잘 하셔야 한다고 말은 했지만, 아버님은 늘 당신은 괜찮으니 걱정 마라고만 하셨다. 어머님이 가시고 난 뒤 아버님의 병을 발견했을 때, 그래서 더 마음이 아팠다. 6년 동안 어머님을 보살피시던 아버님인데, 막상 당신의 몸도 간병을 받아야하는 몸이 되어버린 줄을 우리가 몰랐다는 사실에. 남편과 시누는 이제 어머니가 아닌 아버지의 건강도 돌보아야 한다는 현실을 받아들이면서도 허망했을 것이다. 이 돌봄의 끝은 어디일까 하고. 그래도 가족이니까 함께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해하며 서로를 돌보면서 살아가고 있다. 당신의 건강이, 당신의 행복이 우리를 모두 잘 살아가게 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서로의 부모님의 병환으로 다음 달에 두 차례의 대학 병원을 방문하게 된 우리 부부는 서로에게 말했다. 우리가 더 최악의 상황들에 닥치치 않게 되어서 다행이라고. 결혼하고 이제 1년을 넘기는 동안 서로를 보살피는 것과 동시에 각자의 가족들도 돌보게 된 상황을 맞이하게 되면서 우리는 더 강해질 거라고, 더 돈독해질 거라고. 이런 저런 일들을 같이 하다 보면 우리는 더 단단한 가정이 되어 있을 테니 또 잘 버텨보자고 말했다. 가정이란 그렇게 여러 일들을 겪으면서 더 견고해지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가족 간의 사랑도, 믿음도 여러 일들을 함께 겪다 보면 저절로 더 커져갈 거라고.


어떤 일이 우리에게 닥칠지 우리는 감히 예견할 수 없다. 그러니 서로를 돌볼 수 있는 마음을, 나 개인보다 가족의 행복에 조금 더 큰 비중을 둘 수 있는 사람들이 만나 결혼한다면 그 가정은 잘 살아갈 거라는 생각이다. 같이 살아간다는 의미를 매일 더 깨달아가고 있는 우리의 삶을 되새겨보면서 쓰게 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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