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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롱할영 Nov 22. 2024

시아버지에게 드릴 반찬을 했다

내게선 왜 할머니 손맛이 안 날까

남편과 나의 요즘 고민은 '아버님께 어떤 음식을 드리면 맛있어 하실까'다. 아버님은 지금 췌장암을 진단 받으시고 항암 치료 중이신데, 항암치료로 가뜩이나 입맛도 없는 데다 먹을 수 있는 음식도 한정적이어서 아버님께 어떤 음식을 드려야 할지가 가장 걱정인 것이다. 우리가 거제에 살게 되었고, 시누까지 결혼을 하면서 혼자 계신 아버님의 생활이 걱정 될 수밖에. 아버님은 물론 혼자서도 잘 챙겨 드시는 편이지만, 자꾸만 잃어가는 입맛에 조금이라도 더 맛있는 음식을 맛 보실 수 있게 해서 한 번이라도 더 드시게 하고 싶은 마음이다.

아버님은 어머님의 오랜 투병 기간 동안 집에서 가정 간호로 어머님을 돌보셨다. 그 동안 조금이라도 집에 음식 냄새가 풍길 만한 음식들은 일절 드시질 않으셨던 아버님이셨고, 요리를 배운 적도 없으신 탓에 아버님이 해 드실 수 있는 음식들에는 한계가 있었다. 저번에는 췌장암에 나물을 비롯한 채소들이 좋다는 말을 들으시고, 나물을 무치려고 사 오셔서 어떻게 무쳐야 할 지 몰라 된장을 넣고 무치셨다는데 아무 맛이 나질 않아서 대충 먹다가 버렸다고 하셨었다. 다음에 시댁에 가면 어떻게 무치는지 알려드리겠다 했건만, 그러고서 도통 올라가질 못했었다. 그 동안 아버님은 이전에 하셨던 대로 삶은 계란과 고구마, 큰어머님이 해 주신 오리불고기, 고모님이 해 주신 미역국, 시누가 만들어두고 간 반찬들로 밥을 드시고 계셨다.


아버님의 암 선고 이후부터는 아버님께 전화드릴 때마다 식사는 어떠냐고 여쭙게 된다. 기름기가 없는 음식을 먹어야 해서 소고기를 오래 삶았더니 질겨져서 김치랑 그냥 씹어만 먹었다고 하시기도 하고, 고기를 먹으면 미슥거려서 냉동 고등어를 에어프라이기에 돌렸더니 소금 간을 안 해서 밍밍했다고도 하시고, 운동 겸 시장에서 반찬을 사 와서 드신다고도 하셨다. 이 모든 게 다 경험이니까 당신이 배워가는 과정이라고 하시는 말에 속이 많이 상했다. 가까이 살았더라면 이것저것 챙겨 드렸을 텐데, 하는 마음에.

남편은 아버님 식사는 시누랑 자기가 알아서 할 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지만, 집밥의 힘을 오래도록 믿고 살았던 나는 퍽 걱정이 된다. 더군다나 암 투병은 잘 먹는 게 반은 한다고 해서 입맛을 어떻게 하면 잡아드릴 수 있을지가 늘 고민이었다. 그래서 최근에는 '사과 계의 에르메스'라 불리는 감홍사과를 주문해서 드리기도 하고, 회를 좋아하시지만 지금은 드시지 못하시니 강원도 고성 바다에서 잡은 자숙문어를 택배로 보내드리기도 했다. 아버님의 입맛을 되돌리는 데는 '먹는 것' 자체가 문제인 게 아니라 '무엇을 먹느냐'가 더 중요할 것 같아서였다. 제철음식을 찾아먹는 즐거움과 에너지를 느끼게 해 드리고 싶기도 했다.


나까지 신경쓰게 해서 미안하다고 연신 말씀하시는 아버님을 보면서 괜히 찡했다. 아버님에게는 왠지 모를 찡한 감정이 늘 든다. 그렇다고 내가 늘 잘하는 며느리는 못 되지만, 가까이 있었더라면 더 잘 챙겨드릴 수 있는데 하는 아쉬움이 가득하다. 그래서 이번 주말에 혼자 시댁에 다녀오는 남편의 손에 조금이라도 음식을 해서 보내드리겠다고 마음 먹었다.

내가 하기로 한 음식은 제철인 고등어무조림, 칼칼한 음식이 드시고 싶다 하셔서 매콤 두부조림, 다 먹고 나서 간장을 활용하실 수 있도록 만능간장에 담근 계란장, 그리고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는 고추장멸치볶음이었다. 남편과 시장에 가서 재료들을 샀다. 사실 우리도 집에서 밥을 거의 해 먹는 편이기는 해도, 본격적으로 집밥 요리를 한 건 오랜만이었다. 대개 고기를 구워먹거나, 회를 포장해오거나 하는 식으로 밥을 먹었으니까. 무우부터 두부, 꽈리고추 등 재료들을 사는 게 오랜만이라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할머니가 했던 레시피를 참고하고 싶었는데, 할머니가 말씀하시는 레시피란 따라할 수 없을 만큼 '할머니식'으로 설명을 해 주셔서 가장 집밥처럼 보이는 사진을 걸어둔 블로그의 레시피를 따라 만들었다. 고등어와 무를 졸일 양념장을 만들고, 고등어무조림부터 시작했다. 달큰하게 익은 무를 좋아하는 나라서 무를 좀 많이 넣었더니 레시피의 양념장대로 했더니 물이 조금 많아져서 '조림'이 아닌 '찌개'와 같은 비주얼이 되었다. 남편은 그래도 맛있다면서 아버님은 좋아하실 거라 했지만 성에 차진 않았다. 아쉬운 마음을 안고 다음 두부조림을 시작했다.


두부조림은 두부부터 잘 구우면 된다. 두부를 굽는 동안 매콤 양념장을 만들고, 두부가 노릇하게 잘 구워지면 양념장을 부어서 서서히 졸인다. 졸이면서 꽈리고추도 같이 넣어서 졸이고, 중간 즈음에 파와 홍고추, 청양고추를 올려서 식감을 더해줄 부재료들을 넣는다. 매운 게 당긴다고 하신 아버님이라 맵게 한다고 이것저것 넣었는데, 막상 매콤한 맛이 덜해서 또 살짝 아쉬웠지만 두부조림은 그래도 나름 성공적이었다.


두 요리들을 하는 동안 틈틈이 계란스티머로 삶은 계란을 만들어 차가운 물에 담가두면서 계란장을 준비해뒀다. 반찬통에 간장과 멸치육수, 알룰로스, 다진마늘, 다진 파와 고추들을 넣고 만능 간장을 만들었다. 간을 보니 꽤 맛있어서 바로 계란을 넣었다. 뭔가 비주얼이 아쉽다 했더니 깨가 빠졌다. 조금 남은 참깨를 털어넣고, 계란이 잠길 수 있도록 양념을 조금 더 했다. 계란장을 다 먹고 나면 아버님이 계란만 삶으셔서 2~3번 정도는 더 담가드셔도 될 테다.


마지막으로 고추장멸치볶음을 했는데, 이건 사실 처음 해보는 반찬이라 내공이 많이 부족했다. 윤기가 나는 멸치볶음을 하고 싶었는데, 또 달게 하면 아버님 입맛에 안 맞으실 것 같아서 올리고당과 설탕의 양을 조금 줄였더니 윤기는 없고 텁텁한 멸치볶음이 되었다. 남편은 오히려 아버님 건강에는 이게 더 나을거라며, 해 주기만 해도 고맙다 했지만 요리하는 입장에서는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는 법. 친정 엄마가 맛있어서 가끔 사 먹는다며 싸주신 어느 반찬 가게의 멸치볶음을 조금 덜어서 같이 넣어드렸다. 이게 입맛에 맞으시면 이걸 다음엔 사 드리겠노라고.



거제에서 안양까지, 5시간은 족히 걸리는 버스와 지하철을 동반한 시댁으로 가는 길이 꽤 걸려서 그간 생각만 하다 엄두를 못 내던 반찬 조달을 이제야 해 본다. 할머니의 손맛처럼 칼칼하고도 맛깔 나는 반찬들이 되기를 바랐건만, 어쩌다 보니 모두 아쉬움이 가득한 반찬이 된 것 같다. 친정 엄마한테 "나는 왜 할머니가 하는 맛이 안 나지?" 했더니, 엄마는 "당연하지. 할머니 맛을 어떻게 내!"라며 "한 것에 의의를 두는 거지."라고 덧붙였다. 남편은 연신 고맙다고, 아버님이 분명 너무 고마워하실 거라고 했다. 뭐가 됐든 아버님이 조금이라도 맛있는 음식을 드시고 입맛이 돋으시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마음을 쓰게 한 일이 있던 것도 아니었지만 시아버지의 건강이 우리의 행복과도 아주 긴밀하다는 건 잘 알고 있기에 아버님의 식사를 신경쓰게 되는 것 같다. 아버님께서먼저 이것 저것 해 달라고 하시면 더 번거로울 수 있는데, 외려 신경 쓰지 마라고 하시니 더 마음이 쓰이는 건 왜일까. 반찬 가방을 손에 들고 아버님께로 향할 남편에게 마음을 같이 실어 보내는 오늘. 뭐가 됐든 다 드셔만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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