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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롱할영 Jul 15. 2024

책을 찾는 사람, 책이 찾는 사람

스탠바이 북 (1)

이 이야기는 출판 편집자로 시작해 서점 직원이 되었던 나의 이야기다. 지금은 책을 만들거나 파는 사람이 아닌 ‘쓰는 사람’에만 집중하고 있지만, 책과 글을 사랑하는 한 사람의 이야기를 나누고자 글을 시작한다.

편집자부터 시작되었던 나의 직장 생활은, 10년이 조금 안 되는 세월 동안 책을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판매를 독려하는 일까지 뻗쳐있었다. 그렇게 쓰고 읽는 것을 동경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된 나에게는, 일로도 봐야 하는 책들이 넘쳐나 후에는 이것이 축복인지 벗어날 수 없는 굴레인지 스스로도 헷갈릴 때가 많았다.

좋은 책과 잘 팔리는 책

책의 힘을 믿고,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서점 직원이 된다는 것은 어쩌면 슬픈 일이기도 했다. 책을 자유로이 즐기지 못하고, 이 책이 ‘잘 팔릴 책인지’를 우선적으로 골몰하게 되는 서점 직원이 될 테니. ‘좋은 책’과 ‘잘 팔리는 책’은 엄연히 달랐다. 이건 꼭 서점 직원이 아니더라도 서점을 기웃거린 사람이라면 아는 사실일 테다. 하지만 유독 애정이 많이 가는 책의 판매가 그 애정만큼 따라가지 못할 때의 안타까움이란 실로 마음이 아픈 일이었다.


매일 쏟아지는 책들을 모두 다 읽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담당 분야의 책들만 해도 하루에 수십 권이 출간되는데 어찌 다 읽을 수 있을까. 이때 서점 직원이 택할 수 있는 방법은 표지와 보도자료, 그리고 출판사와의 미팅을 통해 책을 가려내는 것이었다. 하루에도 수십 건의 메일들을 통해 여러 출판사의 여러 책들을 살펴보다가, 오후에는 직접 출판 영업자들을 대면하며 책을 살펴본다. 함께 대화하다 보면 사연 없는 책은 없고, 노력이 깃들지 않은 책도 흔치 않다. 그래서 이책 저책 모두에게 마음을 빼앗기다 보면, 책 하나하나의 이야기가 마음을 맴돌아 책장을 들여다볼 때마다 책의 눈치를 보게 되곤 했다.


저마다의 이야기가 모두 있는 책들 사이에서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책을 고른다는 건 신중함이 늘 필요한 일이었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이 서점 직원의 취향과 가치관을 타는 건 사실이지만, ‘좋은 책’이란 진심과 가치를 담은 책이라는 것은 모두에게 해당하는 것이기에 서점 직원들은 저마다의 기준에 따라 독자들에게 선보일 책을 정하고, 소개한다.


책의 흐름과 독자의 흐름

책을 소개하는 방식도 여러 가지다. 온라인 서점에서는 책을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이 책을 사이트에 노출하는 것과 광고 문자, 푸시 메시지 등 독자들에게 가닿을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이 있는데, 독자들의 연령이나 특성을 고려해서 잘 노출해야만 그 책의 타깃 독자들이 반응한다. 노출만 되면 책이 팔리느나, 그것도 아니다. 타이밍이 잘 맞아야 책도 판매 흐름을 탄다. 책이 담은 이야기가 시류에 잘 맞거나, 어떤 행사 혹은 날에 꼭 맞는 주제거나 하는 등 시기가 잘 맞아야만 책이 날개를 단다. 가령 노벨문학상 발표를 앞두고 후보로 거론되던 작가들의 작품들이 줄지어 출간되는 것과 판다 푸바오의 중국 송환을 앞두고 사육사나 푸바오 관련 책들이 줄지어 출간되는 것처럼. 타이밍과 노출, 그리고 독자들의 반응까지 삼합이 맞아야 그나마 팔리는 책이 될 수 있는 요즘이니, 쏟아지는 책더미들 속에서 눈에 띄지 않는다고 해서 그 책이 ‘좋은 책’인지 아닌지를 단번에 알 순 없다. 사실 이 모든 것들이 운이라고 해도 될 만큼, 출판사에서 대비를 잘한 뒤에 출간되어 서점에서 잘 노출한다고 해도 ‘잘 팔리는 책’이 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 그런 책을 만들어내기까지 출판사에서는 매번 책을 만들 수밖에 없다. 이 책은 될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최근에는 작가의 유명세가 ‘잘 팔리는 책’을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책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던 사람들이 저마다의 이야기를 책으로 전하기 시작했고, 그들의 책이 서점가를 휩쓴다. 이 경우가 서점 직원으로서는 딜레마 중 하나였다. 사실 전하는 이야기가 크게 와닿지 않았기에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싶지 않았던 책이라도, 많은 사람들이 저자를 따르고 있다면 판매를 위해서라도 한 번은 독자들에게 책을 소개해야만 했다. 그것은 한 회사의 직원인 ‘서점 직원’으로서 내가 해야 할 도리였다. 회사란 매출을 올려야만 살아남는 곳이었으므로.


책이 흐름을 타듯, 독자들도 흐름을 타기 마련이라 어느 이슈나 주제가 흥행했다 해서 같은 것을 다룬 다음 책에서 똑같이 흥행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독자들에게도 흐름이 있다. 휴대전화만 들여다보아도 볼 것이 넘쳐나고 즐길 것들이 이렇게나 많은 요즘, 굳이 책을 찾는 독자들이 책에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골똘히 생각해도 그들의 흐름을 알기란 쉽지 않다. 책이 나오는 동안에도 그 흐름은 바뀔 수 있으니까. 나의 경우만 해도 어제 관심 있던 어떤 이슈를 오늘은 별로 안 보고 싶어지는 경우도 많고, 요즘에는 내 취향을 나도 잘 모르니 ‘알고리즘’이 선택하는 것이 내 취향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 아니던가. 내게 추천되는 취향이 잠시 나의 것이 되었다가 또 다른 것을 취향으로 삼는 것이 요즘 독자들의 흐름이니, 호시탐탐 독자들의 흐름까지 잘 탈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가 필요하다.


어떤 책은 독자가 직접 읽기 위해 사는 책이 아니라, 선물하기 좋은 책으로 포지셔닝되기도 한다. 읽으려는 책이 아닌 선물을 위한 책이라니, 이젠 책의 기능이 다양해지고 있음을 실로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디자인에 더 신경을 쓰게 되고, 표지와 제목이 쉽게 와닿도록 책들이 변화하고 있다. 누군가는 책이 상업화되는 것에 반대하겠지만, 그렇게나마 책이 팔리길 원하는 사람들이 출판 업계에는 존재한다. 읽히는 건 나중 문제고, 우선은 팔려야 이 출판 업계가 돌아갈 테니까. 제아무리 좋은 책이라 해도 출판사를 운영할 만큼은 역할을 해야 다음 책들이 나올 수 있을 테다. 그러니 ‘팔리기 위한 책’을 너무 미워할 필욘 없다. 그렇게라도 누군가의 손에 들어간다면, 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일 테니.


쓰는 나를 되찾는 일

책으로 먹고 사는 삶을 살아갈수록, 오히려 쓰고 읽는 일이 나를 움직이는 동력이었던 때는 사라져가고 매출과 실시간 판매만이 휩싸는 서점 직원의 삶이 나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때마다 억지로라도 쓰는 사람으로 돌아가서, 텍스트가 주는 쾌감과 설렘을 다시 느끼려 애썼다. 본디 써야 했던 사람인 나를 되찾아야 책에 매몰되지 않을 것이므로. 궁극적인 나의 목표는 책을 판매하는 사람이 아닌 쓰는 사람이었으므로.


쓸 수 있는 기회가 올 때마다 마다하지 않고 어떤 글이든 써내려 했다. 시든 에세이든 인터뷰든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면 가리지 않았다. 일과 원고를 함께 병행하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니었지만, 어떻게든 시간을 내어 쓰는 것을 더 오래 지속할 수 있도록 나를 부여잡았다. 그것이 후에 잘 팔릴 글이 될지 아닐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어디에서라도 나를 찾아주는 것이 고마울 뿐. 쓰는 사람이 이렇게도 많은 와중에 나를 찾는 곳이 있다는 건 계속해도 된다는 뜻일 테니까.


쓰다 보니 더욱 깨닫게 되는 것이 있었다. 독자들의 존재가 책을 만든다는 것. 어떤 책이 ‘좋은 책’으로 인정받든 ‘잘 팔리는 책’이 되든 독자가 그 판단의 주체가 된다. 아무리 저자가 자신의 글이 좋다고 자랑해도, 읽는 사람이 없으면 그 글은 세상에 나왔지만 나온 것이 아닌 게 된다. 잘 읽히는 글이 되기 위해, 독자들을 끌 수 있는 글을 써내기 위해, 알아봐 주기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을 찾아가는 글을 쓰겠다. 찾아가다 보면 찾는 사람이 더 생겨날 것이라는 믿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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