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남주, <서영동 이야기> / 한겨레출판
유독 책이 안 읽혀질 때가 있다. 소설을 읽어도 몇 장 이상 읽지 못하고, 에세이를 읽으면 이입이 안 되어 진도가 안 나간다. 그렇다고 인문 책을 들기는 더 어렵다. 그런 때마다 조남주 작가의 소설들은 나의 '책태기'를 타파해주는 묘한 매력이 있다. 조남주 작가의 이야기들에선 항상 기시감이나 이미 내가 겪은 것만 같은, 주인공 각자의 이야기가 모두 내 얘기 같아 빠져들게 하는 면이 있다.
『서영동 이야기』에는 서영동 주민들의 '집'에 관한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총 7편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끝 없이 오르는 서울의 부동산 가격, 이러한 부동산에 대한 시각 차이, 부모의 소득 수준에 따른 아이들의 교육 차이, 비정규직의 애환 등을 현실 그대로 보여준다. 그래서 누군가에게는 불편할 수도, 괴로울 수도, 부끄러울 수도 있는 '조남주표' 소설로 읽힌다.
광역시지만 비수도권 지역에서 태어나 대학교 진학 이후부터 서울에서 지내며 3평 남짓한 원룸부터 오피스텔까지 다양한 곳에서 거주하면서 내게도 '제대로 된 집'에 대한 욕망이 슬슬 피어올랐다. 결국 서울 내의 아파트는 포기하고, 그나마 내게 익숙한 경기도 남부의 아파트를 부동산 버블이 최고치이던 때에 구매했다. 가격적인 면에서는 그 때의 선택을 가끔 후회할 때도 있지만, 옮겨다니면서 살지 않아도 되는 우리의 집이 있다는 것은 큰 위안이 되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집'을 원했던 처음의 마음은 나의 마음과 다를 바가 없었으리라. 주거의 안정만큼 큰 안정이 한국에서는 없으므로.
투자의 개념으로 구매한 것은 아니면서도, 내게도 소설 속 인물들처럼 '이 집이 올라 우리의 자산을 증식시켜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안 든 적은 없다. 언젠가는 오르리라는 마음이 기저에 있었고, '집' 이상의 의미를 이 집에 부여하며 꿈꾸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재산에 대한 욕망이란 끝이 없으므로. 어쩌면 어릴 때 어른들을 보며 왜 어른들은 저렇게 재산에 목 매는 것일까, 하는 물음을 지금의 아이들은 나를 보며 던지게 될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모두가 내 재산이 걸려 있는 일이라면 이기적으로 변할 거라 생각하니까.
'어렵고 괴롭고 부끄러웠다'는 작가의 말은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모두에게, 더 나아가 이 땅에 발을 딛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해당하는 지도 모른다. 단순히 안정되고 싶어 시작했던 것들이 욕망의 극치를 향해 달려가는 것처럼, 모두가 처음부터 부끄럽지는 않을 테니까. 어려웠던 자신의 처지를 타파해보려 하던 움직임들이 어느새 욕망이 되었을 테고, 그 욕망으로 인해, 혹은 그 욕망이 타인에게 튀어가면서 괴로워졌던 것일 테니까. '집'으로 대표되는 우리들의 욕망은 그래서 더 보편적인 것이다.
현실적이어서 더 날카롭고, 불편함 속에서 나의 용기를 마주하게 만드는 조남주 작가의 이야기들. 『서영동 이야기』에서는 '집'이 우리에게 남긴 슬픈 초상을 들여다보게 한다. 치열하게 오늘을 살아내고 있는 우리에게 더 다가오게 될 '하이퍼리얼리즘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