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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롱할영 Aug 26. 2024

안 읽을 책을 사는 사람들

스탠바이 북 (2)

출판 업계에 있는 사람들끼리 하는 말이 있다. "출판 시장은 출판 업계 사람들끼리, 작가들끼리 서로 팔아주지 않으면 유지가 안 된다"는 말. 책을 보는 사람들은 한정적이라는 말은 오래전부터 해 왔지만, 그럼에도 출판 시장은 어렵다는 말을 등에 업고도 여태 버티고 있다.


올해 서울국제도서전에 지난해보다 2만 명이 증가한 약 15만 명의 관람객이 몰렸다고 한다. 특히 관람객 중 20대가 45%, 30대가 28%를 차지해 2030이 전체의 70% 이상을 차지했다는 것은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글을 쓰고 읽는 사람이라면 더욱 눈여겨봐야 할 수치다. 독서량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데, 출판계는 어렵다고만 하는데, 책을 소비하려는 사람들은 늘어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독서는 힙하고 섹시하다

Y2K(90년대 말~00년대 초반 세기 말의 생활양식)의 붐으로 음악부터 패션, 감성까지 '그때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것들이 힙한 것이 된 요즘은 '독서'마저 Y2K의 문화 중 하나가 된 듯하다. 볼 것들이 넘쳐나니 책을, 더군다나 종이책을 읽는 사람들이 적으니 책을 들고 읽는다는 것이 오히려 멋져 보이는 것이 아닐까.


실제로 젊은 세대들이 책을 즐기는 방식은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던 것과는 많이 다르다. 마음에 드는 구절을 발견하면 사진을 찍거나 필사하는 등으로 SNS에 독서를 인증하고, 여행을 갈 때면 그곳의 동네서점에 들러 여행을 기념할 책을 사서 인증샷을 남기며, 책과 관련된 굿즈나 사은품을 모으기도 한다. 연예인들이 어디에선가 들고 읽는 책들이 팬들에게 포착되면 그 책이 뜬금 없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SNS에는 분위기 좋은 카페에 가서 책과 함께 하는 자신의 사진을 올리기도 한다. 그것이 책이 가진 이미지를 통해 자신을 치장하려는 것이라며 책이 가진 의미를 훼손한다고 할 수도 있겠다. 또 누군가는 독서를 굳이 사진 찍어 인증하며 '책을 읽는 나'에 빠지는 것이 허영이라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게 뭐 어떤가. 어떤 형태가 되었든, 어떤 마음으로 책을 대하든 책을, 텍스트를 소비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것 아닌가.


또 각종 독서모임들은 아직도 성행 중이다. 유료로 운영되는 독서모임 서비스들도 얼마나 가겠냐는 말들을 뒤로한 채 여전히 운영되고 있다. 오히려 새로운 서비스들이 더 생겨나고 있다. 그 모임이 누군가에게는 사람을 만나기 위한 수단이 될지라도, 그 매체가 책이 된다는 것은 가히 반가운 일이다. 사람 간의 연결 속에 책이 있다는 것은 책의 존재 가치가 아직까지 유효하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기도 하니까. 어쩌면 이런 세태는 '독서하는 사람은 매력적이다'는 말이 되는지도 모른다.


최근 ‘텍스트’와 ‘멋있다, 개성 있다’라는 뜻의 ‘힙하다’가 합해진 '텍스트힙(Text Hip)'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많이 놀랐다. 어릴 때부터 책 읽기가 왜 좋은지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세뇌당하듯 책을 읽어왔지, 독서라는 행위가 멋있고 개성 있는 것이 되리라곤 생각 못했으니까. 어느새 힙한 것이 되어버린 독서는, 그래도 책의 힘이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사고 싶은 책이 되어야 하는 이유

책은 이제 더 이상 읽기만을 위한 소비재가 아니다. 책을 사는 이유는 각자 다양할 테니까. 예쁜 책은 인테리어 용으로, 좋아하는 연예인이 읽은 책은 덕질의 수단으로, 혹은 즐겨보던 인플루언서가 쓴 책이 있다면 그를 위한 굿즈로, 또 때로는 '책 읽는 나'를 만드는 이미지 메이킹을 위한 용도까지. 심지어 명품 브랜드의 역사와 사진이 담긴 책들은 일종의 명품 소비의 측면에서 소비되기도 한다. 완독을 하기 위한 책은 이제 찾아보기 쉽지 않다. 물론 쓰고 읽는 것이 업인 사람들이라면 공감하기 힘들겠지만, 대중들이 책을 소비하는 방식은 이렇게나 다양하다.


이번 서울국제도서전 후기들을 살펴보면 트렁크 한가득 책을 산 사람도 있고, 커다란 배낭을 가득 채운 사람들도 적잖이 보인다. 출판 업계에서는 책을 팔기가 이렇게도 어렵다고 하는데, 도서전 판매량은 성황인 것에서 우리는 무엇에 집중해야 할까. 책을 읽는 사람은 줄어들었을지언정, 독자들은 '사고 싶은 책'에는 반응한다는 사실이 아닐까. 그것이 읽히기 위해서든, '안 읽을 책'이지만 책장에는 꽂아두고 싶은 책이어서든 책을 구매한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 지금 독자들의 독서는 '구입하는 것'에서부터 시작이니까.


이제 독서의 영역은 그 책을 어디에서 사는지, 어떤 기분일 때 찾는지, 어디에 노출되어 눈길을 사로잡는지, 누구의 영향으로 그 책을 알게 되었는지 등 책과 관련된 모든 곳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러니 독서의 시작은 책을 읽기 시작한 때부터가 아닌 '책을 사는 시점부터'가 맞는 것이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책을 만드는 사람이라면 이 대목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읽히기 위한 책에 앞서 '사고 싶은 책'이 되도록 먼저 생각해봐야 하는 때가 왔으니.


사고 싶은 책이 되는 요소는 다양하다. 앞서 말한 책을 사는 이유가 다양한 만큼, 어떤 독자가 반응할지는 감히 예측하기 어렵다. 저자의 영향력부터 추천사, 그리고 책의 디자인까지 책에서 보이는 것의 비중이 더 강해지는 것은 우선 이목을 끄는 것이 사고 싶은 책이 되는 데에 반 이상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눈길을 끄는 책은 소장하고 싶다는 욕구를 더 쉽게 불러 일으킬 테니까. 결국에는, 책을 쓰거나 만드는 사람의 입장보다 독자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하는 측면이 더 많아졌다는 말이다. '사고 싶은 책'이 되기 위한 고민을 끊임 없이 해야만 작가로서도, 책을 업으로 삼는 사람으로서도 살아남을 수 있을 테다.


더는 쓰고 싶은 대로만 써서는 독자들의 호응을 받기는 어려울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물론 그것을 좋아해주는 독자들이 나타난다면, 내가 쓰는 글이 지금의 시류에 잘 맞아서 독자들이 생겨난다면 좋은 일이지만 수많은 책이 출간되는 출판 시장에서 나의 책이 누군가에게라도 닿는 일이 그리 흔한 일은 아니다. 그러니 독자가 될 수 있는 사람들을 더 찾아나서야 하는 것이 쓰는 사람으로서의 도리가 아닐까 생각한다. 누군가에게 내 글이, 내 책이 '책을 읽는 나'에 취하기 위한 수단으로 쓰이더라도 반가워해야 한다. 그것 역시 지금은 독서의 한 부분이니까.


그러니 안 읽는 책을 사는 사람들을 이제 더는 허영이라고 손가락질하면 안 된다. 이제 책은 읽는 것에만 그 용도가 있는 것이 아니니까. 그들을 '출판계의 빛과 소금'이라 일컬으며 우리는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책에 소비하고 싶어할지 고민하며 다양한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수많은 컨텐츠들을 뒤로 하고 책을 사고 읽는 게 하나의 트렌드가 되고 있다는 건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도 아주 큰 위로가 되는 일이다. 독자가 있어야 글도, 책도, 텍스트도 존재 가치가 있을 테니까. 책을 읽는 척만 하더라도 책 곁에 있다 보면 책을 더 읽게 될 것이고, 애정하게 될 것이며, 소유하고 소비하는 데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 관심이 언젠가는 진짜로 책을 읽는 데까지 뻗어와서 쓰고 읽는 이들이 더 많아지기를, 함께 읽고 이야기하며 더 나은 우리가 되는 데에 기여할 수 있기를.


- 계간지 <가히>, 2024 가을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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