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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롱할영 Oct 25. 2024

술독에 빠졌던 어느 때의 나처럼

김신회, 『친애하는 나의 술』 / 여름사람

18년 동안 에세이 15권을 썼던 김신회 작가의 첫 장편 소설이 나왔다. 오랫동안 솔직하게 자신의 치부까지 드러내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그 속에서도 기어코 일어나고야 마는 그만의 문체를 사랑해왔다. 내가 나에게 차마 하지 못했던 말들을 무심한듯 건네는 그의 글들에 많은 날들을 위로 받았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첫 장편 소설의 소재로 '술'을 쓰다니, 읽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의 지난 날들의 치부 역시 '술'이었으니까.


대구에서 상경해 대학 시절부터 서울에서 보낸 나는 결혼하기 직전까지 홀로 살았다. 스무 살부터 12년을 혼자 살았던 내게, 술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였다. 함께 마신 술부터 혼자 마신 술까지 수많은 술병들은 나의 외로움부터 행복한 순간들까지 항상 함께였다. 술을 잘 마시는 것이 한때 자랑이기도 했던, 술독에 빠진 줄도 모르고 매일 밤 술자리가 있어야만 밖으로 나갔던 날들도 많았다. 밤새 퍼마신 술로 정오가 되어서야 겨우 일어나 카페에서 자소서를 쓰다가 불합격 문자에 분을 못 이겨 술과 함께 했던 그때. 신촌과 홍대의 골목마다 술냄새가 가득했던 그 시간들을 지나고서야 알았다. '나에게 술을 먹인 건 바로 나'였음을.


김신회, 『친애하는 나의 술』 / 여름사람

『친애하는 나의 술』의 재운처럼 술로 도망치고야 말았던 어느 시절이 나에게도 있었다. 아무도 나에게 술을 먹이지 않았다. 스스로에게 술을 먹이고 있는지도 모른 채 그 밤들을 흘려보냈다. 처음에는 사람이 좋아서 마신 술이었지만 얼마 가지 않아 그 술잔은 나에게 기울여지고 있었다. 나 자신부터 내 마음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한 탓에 나를 탓해야 하는 문제를 세상을 향해, 다른 사람들을 향해 내뱉고 있었다. 그러고는 술을 넘기며 웃다가 또 울다가 어떤 감정이 나의 진짜 감정인지 헷갈린 시간들을 살았다.


술독에 빠져본 사람들이라면 안다. 재운이 술에 빠진 것은 결국 불안함 때문이라는 것을. 의지할 곳이 없다는 생각이 들 때, 사람은 한없이 나약해진다. 그러면서도 사람에 희망을 걸고, 아닐 것을 알면서도 기대를 했다가 또 무너진다. 그 패배감을 안주 삼아 또 술을 들이키고, 급기야 술이 없이는 누군가와 만나기 두려워진다. 그 두려움은 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감정이다. 술에 취하지 않은 나는 점점 더 초라해지는 것 같은데, 술과 함께 하면 자신감이 생기는 그 기분을. 결국 공허한 나를 채울 수 있는 건 나뿐인데, 그것을 술로 채우다 보니 점점 더 공허해진다.


내가 술독에서 나오게 된 것은 스스로를 의지하게 되면서부터였다. 불안하기만 했던 나의 내면이 단단하게 차오르기 시작할 때부터. 나를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채우게 되면서부터 술은 나에게 도구가 아니라 유희의 수단으로 변화해갔다. 나를 채우고 나서야 술이 나를 삼키지 않는 밤들을 보낼 수 있던 것이었다. 소설 속 재운 역시 자기연민에 빠져 있던 미성숙한 날들을 뒤로 하고, 단주모임을 통해 자신을 인정하게 된 뒤부터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어졌다. 자신의 상태를, 위치를 정확하게 인지할 수 있어야만 한 발씩 뻗어나갈 수 있다는 것을 한번 더 깨닫는다.


김신회 작가의 글은 항상 자신을 믿을 수 있게 만든다. 그게 어떤 상태의 나일지라도. 나의 밑바닥을 스스로가 알게 되더라도 그것 역시 나의 모습임을 인정하고 다시 바닥을 딛으면 되는 것이라고, 나를 바로 서게 만들 사람은 오로지 나뿐이라는 사실을 늘 말해주려는 것만 같다. 그의 첫 장편 소설 역시 세상을 살아갈 때 우리가 의지해야 할 사람은 바로 '나 자신'임을 말해준다. 못난 나라도 그것조차 사랑스러운 나로 받아들이고 더 나아가기를 말하면서. 


술독에 빠졌던 어느 날들을 되돌아보게 만들었던 그의 소설 덕분에 지금의 내가 얼마나 단단해져있는지, 타인이 아닌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이 인생의 중심을 어떻게 잡아주는지를 다시 생각한다. '나에게 술을 먹인 건 바로 나'였던 시절들을 지나온 나에게, 그 시간들을 잘 버티고 걸어온 나에게 또 안부를 전한다. 불온한 누군가에게 온전해질 힘을 북돋워주는, 스스로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게 만드는 김신회 작가의 글들이 멀리까지 닿아 서로에게 손을 건넬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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