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계간 '가히' 겨울호 - 이나영의 '스탠바이 북' (3)
며칠째 소설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떠들썩하다. 언론들은 연일 한강의 수상과 관련된 보도들을 하고 있고, 온라인 서점의 사이트가 마비되기도 했으며, 최대의 불황기였던 인쇄소 역시 밤새 가동되고 있다. 나 역시 흥분되는 마음을 가라앉히기 어려웠다. 아시아에서, 그것도 여성 작가로, 더군다나 젊은 작가가 이 상을 받게 될 줄이야. 이는 한국 문학계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줄 것임이 분명했다. 아니, 더 나아가 전 세계 글 쓰는 모든 사람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 아닐까.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우리를 꿈꾸게 하고 있었다.
‘읽는 사회’에 대한 희망
서점 직원과 출판사 담당자들은 매년 ‘노벨문학상’이 발표될 때 혹시나 하는 마음을 품고 야근에 임한다. 우리 출판사에서 책을 낸 작가가 상을 받을까 하는 마음과, 혹시나 한국 작가가 수상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아주 작은 기대감을 품고서. 제아무리 독서 인구가 줄어들고 있다고 하지만, 노벨문학상 수상작은 많은 사람을 다시금 책 앞으로 불러 모으는 역할을 해 왔고, 전 세계 독자들에게 수상 작가의 작품과 그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경험을 통해 문학에 대한 탐닉을 새로이 하게 만들어왔다.
그러니 서점 직원들과 출판사 담당자들은 노벨문학상이 발표된 순간부터 내내 전화를 붙들고 있어야만 한다. 미리 뽑아둔 예상 작가별 도서 리스트와 출판사 연락처를 준비해두고 있다가, 해당 출판사로부터 경쟁 서점 중에서 가장 많은 재고를 확보해두어야만 그의 능력이 증명되기 때문이다. 재고를 빼앗기는 순간, 그는 무능력한 사람이 된다. 발표된 순간부터 해당 작가의 책부터 역대 수상자의 책까지 판매 추이가 오르니 노벨문학상과 관련된 작가들의 책들을 한데 볼 수 있도록 매대를 준비해두거나, 온라인 페이지를 만들어두기까지 한다. 그러니 출판인들에게 노벨문학상이란, 출판업의 부흥을 꿈꾸게 만드는 존재이자 독서하는 사회로의 희망인 것이다.
올해에는 특히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인해 그의 작품들이 곧 100만부 판매를 돌파할 것이라고 한다. 노벨문학상 발표 다음 날에 그의 책을 구매하려고 오프라인 서점에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출판과 인쇄 관련 주식이 한껏 오른다는 것, 그리고 출판과 관련된 지원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는 것. 이 모든 것이 그날을 기점으로 벌어진 일이다. 그러니 출판 관계자들이 부푼 꿈을 꾸지 않을 수가 있을까. 내가 기억하는 이래로 늘 성장은커녕 불황 소식만 들려오던 출판계가, 이제 ‘읽는 사회’로 한발 더 나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져봐도 될지를 생각하지 않을까.
작년 8월, 출판인들은 출판문화 예산지원 확대와 저작물 불법유통 근절 등을 촉구하기 위한 집회를 열었다. 정부가 출판과 독서 관련 분야의 예산을 삭감한 것이 주된 이유였고, 문화 콘텐츠 제작에 대한 지원이 영상 콘텐츠에 국한됐던 것 역시 그 근거 중 하나였다. 독서 인구도 날이 갈수록 줄어드는데, 정부의 예산과 지원까지 삭감한다는 현실에 출판인들은 절망했다. 출판인들끼리 ‘이 시장은 우리만의 시장’이라고 자조 섞인 농담을 주고받기 일쑤였다. 출판인들의 숨통을 그나마 터 주었던 출판 제작 지원 사업은 중지되기도 했고, 독서문화를 증진시키려는 사업들도 운영이 더 힘들어졌다. 심지어 도서관 지원 예산도 안전하지 못했다.
그러나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도서 제작에 대한 세제지원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했고, 출판을 비롯해 번역에 대한 지원과 투자를 더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한국 문학의 국제문학상 수상이 최근 10년 동안 30여 건에 달하면서 해외의 수요는 증가하고 있는데, 번역에 대한 국가적인 지원은 아주 미미한 수준이다. 변두리 문학으로 취급받던 한국 문학이, 이제는 세계를 향해 가고 있으니 그 미래를 구축해낼 토대를 본격적으로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 더 힘을 받고 있다. 소설가 한강이 쏘아 올린 공 하나가 출판업계의 미래를 바꾸어놓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희망을 품게 된다.
‘쓰는 사람’이 더 많아지는 사회
한강의 수상은 작가들을 비롯해 작가들과 작가 지망생, 그리고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도 꿈을 품게 만들었다. 한국어로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한 자긍심, 더 이상 변두리 문학이 아닌 세계의 관심을 받을 수 있다는 희망, 그리고 글쓰기 행위 자체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까지 주었다. 이는 글쓰기의 힘이 점점 더 둔화되고 있는 우리 세태에 텍스트가 가진 힘을 다시 깨닫게 만드는 중요한 변곡점이 되는 것이다.
요즘 도서관에서 초등학교 3학년과 4학년 아이들의 글쓰기 수업을 진행하면서 아이들이 글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머릿속에 들어있는 것들이 너무 많아서 어떤 이야기를 써야 할지 모르겠다는 아이도 있고, 가만 앉아서 생각하는 것 자체가 힘이 들어 글쓰기를 도중에 포기하는 아이도 있으며, 심지어는 영어로 쓰고 말하는 것은 자랑거리가 되는데 국어로 글쓰기는 것은 가치가 없지 않냐고 되묻는 아이도 있었다. 아이들의 그런 반응을 보고 난 뒤부터, 나는 글쓰기의 가치를 조금이라도 느끼게 만드는 것이 수업의 목표가 되었다. (물론 아이들은 늘 쉬고 싶어 하고, 집에 가고 싶어 하지만.)
글쓰기는 사회가 인식하는 것보다 훨씬 고차원적인 행위다. 고등학교 때 국어국문학과에 지원하겠다고 했던 나에게 ‘국문과는 굶는 과 아니냐’고 비아냥대던 선생님이 있었다. 또 국문학을 공부해서 돈을 벌 수 있겠냐는 부모님의 걱정을 듣기도 했다. 물론 당시의 나는 전공이 밥을 먹여줄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은 전혀 하지 않고 단순히 내가 좋아하는 것을 공부하겠다는 생각뿐이었지만. 졸업 이후 출판사, 광고 회사, 언론사, 그리고 서점까지 국문학을 공부하고 글을 쓰면서 ‘글쓰기’로 접근해볼 수 있는 회사들에 모두 발을 담가봤더니, 글을 쓴다는 것만으로도 접목시킬 수 있는 분야가 상당히 많았다.
나 역시 사람들에게는 ‘나중에 자식을 낳으면 이과 공부를 시키거나 기술을 배우게 해야겠어요’라고 자조 섞인 말을 하지만, 나는 단 한 번도 국문학을 공부한 것과 글을 쓰기로 한 것을 후회한 적이 없다. 글을 쓰는 것은 나와 내가 살아가는 사회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게 만드는 사유적인 행위이기도 하고, 나만이 쓸 수 있는 글을 쓰기 위해 끊임없이 이야기를 생각해내야 하는 창의적인 행위이거니와, 누군가의 마음과 생각을 변할 수 있게도 만드는 활동적인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런 글쓰기의 의미가 폄하되거나 그 영향력이 쇠퇴하지 않기를 누구보다 간절하게 바랐다.
한강의 수상 이후, 아이들에게 벅찬 이 감동을 나누고 싶어 그의 작품에 있는 문장 중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이해할 법한 문장들을 꼽아 함께 읽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아이들이 그의 문장을 이해하는 것을 바라고 한 수업은 아니었다. 단지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의 글을 번역된 것이 아닌 우리말 그대로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을 공유하고 싶었고, 그의 문장이 가진 힘을 전달이라도 하고 싶었다. 글쓰기로도 세계에서 유명한 사람이 될 수 있으니, 지금 우리가 쓰는 글의 힘을 한 번 믿어보자고도.
AI 기술을 이용해 귀찮은 글쓰기 과제를 해내기도 한다지만, 결국 내 손으로 쓴 ‘나의 글’이 가진 힘은 언젠가 힘을 발휘할 것이라고 믿는다. 지금 쓰는 내 글이 좋은 글은 아닐지라도, 글쓰기를 놓지 않고 계속 쓴다면 나는 더 넓은 사고를 하는 사람, 좋은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 되어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다. 그러니 아이들도, 글쓰기가 힘든 사람들도, 작가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도 모두 자신의 글이 만들어낼 미래의 자신을 믿어보면 좋겠다. 그러니까 내가 바라는 건 더 많은 사람이 쓰고자 하는 것, 그리고 팔리기 위한 글보다 정직하고 솔직하게 써낸 글이 존중받는 사회가 되는 것이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너무 거창한 꿈을 꾸는 것이 아닌가 싶겠지만,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하기에 가능한 상상과 바람이다.
지금 한국 출판계와 작가, 그리고 독자들은 ‘한강의 기적’을 통해 ‘읽는 사회’로의 변화를 꿈꾼다. 책과 독서에 대한 이 관심과 열기가 부디 일시적인 것이 아니기를, 또 문학과의 거리감을 조금이라도 좁힐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문학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다독여주고 움직이는 힘을 지녔음을, 다시 한번 되짚어볼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