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나영의 스탠바이 북 (4)
SNS를 보면 작가가 수도 없이 많다. 요즘은 글을 쓸 수 있는 플랫폼도 다양하다 보니 ‘작가’로 불리는 사람들이 날이 갈수록 더 생겨난다. 그러니 작가의 의미도 이전보다 더 모호해지고 있다. 글을 쓰는 모두를 작가라고 하는 것일지, 하다 못해 책 한 권이라도 낸 사람을 작가라고 해야 할지까지 의견이 분분하다. 이마저도 책의 경계가 개인이 발행한 전자책으로까지 뻗친다면 그 의미가 또 희미해진다. 작가의 홍수 속에서 책을 펴낸다는 건, 글을 쓴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또 여기에서 살아남기 위해 우리는 무얼 해야 할까.
요즘 책들은 그 역할이 출간으로만 그치지 않는다. 책이 출간되고 난 이후부터가 책의 가능성이 발휘되는 시간이다. 책이 출간된 이후의 행사, 강연 등 다양한 루트에서 책의 범위가 확장되어 작가에게 영향을 끼친다. 그러니 출간은 시작일 뿐, 출간 이후의 활동들이 작가와 출판사에게 더 중요해지는 시대다.
오죽하면 요즘 출판사들이 좋아하는 작가는 출간 이후의 홍보를 적극적으로 해주는 작가라고 할까. 그만큼 ‘좋은 글’만이 책의 흥행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가 되기도 한다. 이미 SNS든 방송을 통해서든 유명한 사람을 저자로 섭외하는 경우가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저자의 영향력이 있다면 확보된 독자가 있다는 의미는 물론이고, 그가 자신의 책 소식을 사람들에게 알리기도 훨씬 수월해진다. 그러니 책의 흥행과 더불어 책을 활용한 다양한 행사와 강연 섭외도 더 잘 들어올 수밖에 없다.
책을 판매하는 MD로 일할 때도 저자의 SNS를 들여다보는 것은 일상이었다. 그의 구독자가 몇 명인지, 팔로워는 얼마나 되는지, 현재 일하고 있는 곳은 어디인지, 연재하고 있는 곳이 어느 매체인지 등 저자의 활동 범위를 알고 있어야만 그 책이 팔릴 책인지 아닌지를 가늠해 볼 수 있었다. 저자가 움직이지 않는 책이 팔리는 경우는 대개 출판사가 홍보에 투자를 많이 할 때, 혹은 기존에 그의 글이 쌓아둔 공로가 사람들에게 이미 인식되었을 때 중 하나다. 하다못해 요즘 저자들은 자신의 지인들에게라도 책을 팔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실제로 내가 만난 출판사 중 아쉬움을 토로하는 곳이 있었는데, “저희 작가님들은 발간 이후 활동이 없으셔서 판매가 참 어려워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뭐든 브랜딩이 중요하다는 요즘 시대에서, 작가가 자신의 책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는 것은 책을 방치하는 일이 되기도 한다. 책 역시 하나의 수단임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나의 책은 세상에서 두각을 드러내긴 어려울 것이다.
출판사의 형태도 워낙 다양해진 요즘이라, 의지만 있다면 책을 내기는 쉽다. 자비 출판으로 책을 낼 수도 있고, 독립출판물로 제작할 수도 있으며, 투고를 통해 계약하는 경우도 있다. 또 손쉽게 만들 수 있는 ISBN도 없는 전자책을 발행해 플랫폼에서 판매하는 것도 보았다. 원고를 갖고만 있다면 누구나 저자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책이 내기 쉬워질수록, 작가도 수없이 많아지니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책의 수단화’에 몰두한 나머지, ‘책을 낸다’는 사실에만 치중하는 작가들도 많이 생겨나는 것이다. 이는 책의 질적 하락을 자주 일으킨다. 책을 판매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종이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 때가 종종 있었다. 막상 책의 내용은 양산형 글이거나 어딘가에서 본 듯한 표절에 가까운 글이 담겨 있는데, 작가는 이를 부끄러워 하지 않고 자신을 ‘작가’라 내세우며 책에서 파생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는 경우다.
소신 발언을 하나 해보자면, 그런 작가들은 대개 자신이 책을 냈다는 사실에 심취해 ‘작가 놀이’를 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책이 하나의 스펙이 되어 이런 출판 시장의 섭리를 잘 모르는 사람들의 심리를 이용해 각종 강연을 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출판사를 차려 자신의 책과 비슷한 책들을 또 양산하며 ‘작가 놀이’를 할 다른 저자들을 찾아내어 자신의 수익 수단으로 삼는다. 쉽게 쓰인 책들이 그렇게 또 세상에 나온다.
책을 쓴 사람이 별 고민 없이 책을 낸다면 읽는 사람에게도 그 영향은 미미해진다. 모든 책이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저자가 ‘작가’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하길 원한다면 글을 쓸 때 자신의 글이 읽는 이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려 하는지, 글쓰기가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 정도는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고민 없이 오로지 자신의 수단이 되기 위해 태어난 책을 쓴 사람에게도 ‘작가’라는 호칭을 써야 할까.
쓰는 사람이 많아진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글쓰기를 오로지 수단으로만 생각하고 쓰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은 좋지 않은 일이다. 글이란 자신의 생각을 담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써온 사람으로서, 그저 팔리기 위해 대중이 원하는 글이나 자신을 판매하기 위해 치장하는 글을 쓰는 일은 지양해야 한다고 감히 말해본다. 짜깁기로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나의 경험과 생각에서 우러나온 글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뭐라도 써 보라는 글쓰기에 대한 권유에 담긴 의미는 “당신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말들을 꺼내어 보세요”라는 말이다. 내 생각들을 정리하지 않고서는 글이 논리를 가지기 어렵거니와, 떠오르는 생각 중에서 글이 될 수 있게 이어나가는 작업은 꽤 고차원적인 사고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가 주목해야 할 글쓰기의 의미는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아닐까. 저마다의 인생은 다르게 흘러갈 것이고, 그 이야기가 다른 이에게 닿았을 때 불러올 잔향이 또 다른 이야기를 낳는 것이니까.
쏟아지는 글들 속에서 우리가 글을 가려서 읽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의 이야기는 꼭 그 작가여야 할 필요는 없다. 그러니 고유한 이야기를 써내는 사람의 글을 읽어야, ‘작가’라는 타이틀보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에 대한 열망이 더 강한 사람의 글을 읽어야 독자에게도 그 힘이 전해진다는 것.
진부한 글이 혹여 마케팅에 성공해 사람들에게 많이 읽힌다고 해 봤자, 그 글은 떠도는 글이 될 뿐 작가 고유의 글이 되기는 어렵다. 책 역시 상품이기도 하니 팔리는 책이 되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일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 책의 작가가 과거의 영광으로 또 책을 내었을 때, 그 책은 이전 책과 별 다른 성장이 없을 가능성이 많다. 책이 제자리를 돌고 있다면, 독자들도 언젠가는 그의 책을 멀리하게 될 것이다.
하나의 책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의 진심이 필요하다. 우선 작가 자신의 진심이 담긴 글이 당연히 필요하고, 그 글을 진심으로 읽어줄 제1의 독자인 편집자가 있어야 하며, 독자들에게 가장 먼저 보이게 될 책의 얼굴을 만들어주는 디자이너와, 책을 제작해주는 제작자의 손길까지. 그리고 책이 출간된 이후에 책을 홍보하는 영업자에게도 그 책이 독자에게 닿아야 한다는 진심이 깃들어야 한다.
이 마음들이 하나씩 더해져 그 책이 완성된다면, 누군가는 책에 담긴 마음들을 알아줄 거라 믿는다. 그러니 조급한 마음으로 섣부른 ‘작가 놀이’를 위한 책이 아닌, 진심을 모아줄 수 있는 책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 그런 책이 많아져야 작가라는 단어의 의미도 더 소중해질 수 있다. 작가의 의미가 퇴색된다면 독자 역시 흥미를 잃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책이 수단이 되는 시대이며, 작가 역시 그 시대를 받아들여야 하겠지만 책의 본질을 잊어서는 안 된다. 본질을 잃어버린 책은 종이만 축낼 뿐이다. 책이 내뿜는 잔향으로 독자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을 작가라고 부를 수 있기를, 팔기 위한 책보다 하고 싶은 말이 있는 책이 더 환영받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