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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든지 Jul 03. 2020

이토록, 형형하게

삶의 물음에 삶으로 답하는 나의 여정을 씁니다

‘이토록’이라는 언어의 울림을 좋아한다.

신기하게도 몇 마디 단어 앞에 ‘이토록’을 더하는 것만으로 감정선은 한층 더 감칠맛을 낸다. “이토록 사랑스러운,” “이토록 슬픈,” “이토록 즐거운,” “이토록 애틋한”... 수많은 이토록들의 연속으로 나는 둥글게도 모나게도, 깊게도 얕게도, 뜨겁게도 차갑게도 살아온 것이리라.

형체 없는 아득함에 제목을 붙이면 숱한 감상이 아닌 하나의 챕터로 자리하는 것처럼, 그렇게 수많은 감정의 경계와 반환점과 이음새에 ‘이토록 이름표를 달아본다.


마음을 쓰일 때가 많다.

능동적으로 내 마음을 내 의지대로 쓰는 것과는 다르게 왠지 더 애달프고 애틋할 때가 있다.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은 으레 겪는 성장통 같은 느낌이라고 생각한다.

작은 것에도 금세 마음을 쓰고 마는 자신이 안타까울 때가 있었다. 내게 할당된 마음의 총량을 훌쩍 넘어가 버릴 때, 마음을 ‘써버리는’ 날이 꼭 그랬다. 어떠한 자극에도 무던하고 큰 동요가 없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사랑에도, 우정에도, 학업에도, 일에도, 하물며 나 자신에게도 진심을 다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얼마나 따뜻한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것인지, 알 듯하면서도 제대로는 이해하지 못한 채 이십 대를 보냈다.

삶의 물음에 삶으로 답해야 하는 순간들이 있다는 것을 배웠다. 사랑과 이별이 그러하고, 만남과 상실이 그러하며, 또 남겨진 외로움이 그러하다는 것을. 미처 준비하지 못한 만남은 홀연히 찾아오고, ‘왜’를 물을 새도 없이, 어떠한 이유조차 듣지 못한 채 멀어지기 일쑤다. 누군가를 자신만큼 사랑할 수 없어 실망하고, 모든 것을 나눌 수 없음에 낙담하는 과정이 수반되어야 우리는 비로소 사랑을 알고, 고독을 배우며, 어른이 된다.


주체로서의 자아와 담대한 삶의 여정, 그 앞에 ‘이토록’의 깊이를 더하는 것.

다가오는 것들 앞에 의연한 자세로 나를 잃지 않은 채 살아간다는 것, 살아낸다는 것.

이토록 무수히 아름다운 감정들, 그러나 살아 있기에 느낄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쓰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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