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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든지 Aug 23. 2020

버티는 이별과 소란한 외로움

영화 감상평을 짧게든 길게든 기록하곤 한다.

최근 별생각 없이 그간 남겨온 것들을 주욱 읽어 내려가다 보니, 새삼 와 닿은 감상평이 있었다. 웨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 《문라이즈 킹덤》의 감상평이 그것이다.

아이들은 사랑만으로 버틴다.
어른들은 버티는 사랑을 한다.


감정의 태반은 사랑에서 파생된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삶은 만남부터 이별까지의 여러 스펙트럼을 잘게 쪼개어 단권으로 묶는 지난한 작업의 연속이다. 으레 살면서 수 없는 이별을 겪으며 단단해진다고 하지만, 사실은 이별 하나에 문 하나가 잠긴다. 열병과 같던 숱한 애정의 감정들에 이름표를 달아 걸어 잠그며, 행동요령이나 필승 공식을 주석으로 다는 것도 잊지 않는다. ‘상대방의 A에는 B로 응수한다,’와 같은.

사랑이라는 무형의 감정에 이름표들이 덕지덕지 붙어 가며 그 마음은 가늠할 수 있는 유형의 것이 되어 간다. 흔히들 ‘잰다’고 하는 것이 그 귀결이다. 뒷걸음질 치는 사랑이 버티기 시작할 때, 이별의 냄새는 짙어진다. 사실 내가 나를 지키지 못해서, 사랑은 끝난다. 내 일상, 내 감정, 내 생활, 내 취미... 요컨대 ‘나의 것’이 위태로워질 때 비로소 관계는 무너진다.

남겨진 자에게 준비하지 못한 이별은 가혹하다. 바다의 짠내 나는 소금기가 씻어내고 씻어내도 한동안 까슬하게 몸에 배어있듯, 그렇게 떠나고도 떠나보낼 준비를 한다. 사랑의 시작에 열광하며 미처 끝을 상상하지 못하던 풋풋함을 뒤로하고, 누군가는 ‘그러나,’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별한다. 그러므로 사랑을 쓰기에 앞서, 이별에, 그리고 남겨지는 외로움에 먼저 생각이 미친다.


이별의 외로움은 한여름 눅진하게 들러붙는 물기 찬 공기의 무게처럼 묵직하다. 목덜미에 땀으로 엉겨 붙은 머리카락을 가지런히 정돈할 조금의 여유도 허락하고 싶지 않은, 자기 징벌적 외로움이다. 이깟 감정적 동요에 잠식당하다니, 꼴사납구나,라고 생각하지만 볼품없이 찢긴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서라도 생각을 멈출 수 없다. 원래 이렇게 될 거였다고 자위하기에는 그 ‘원래’의 상태가 어떤 것이었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조용히 침잠하며 수면 위 소란이 나를 찾지 못하고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는 수밖엔 달리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언제, 어떻게, 왜를 따지는 무의미한 절차를 밟아본다. 이를테면 사후처리와 같은 셈이다. 해묵은 감정들을 하나둘씩 부검하여 이 고통의 이유를 찾으려 해 보지만, 한 짝씩 나눠 낀 이어폰이나 살짝 맞닿아 간지러운 팔의 온기와 같은 추상적인 애틋함보다는 이별을 목도한 눈빛이나 침묵하는 거리감, 맞은편 찻잔에 송골송골 맺혀가는 물방울과 같이 손에 잡힐 듯 구체적인 외로움의 형태만 선명하다. 흐릿하게 뭉뚱그려진 연애의 시간에서 마구잡이로 쥐어뜯긴 듯 볼품없는 모양으로 이별이 자리하는 것이다. 그저 무기력한 이별이다. 무자비한 외로움이다.

갓난아이가 어미 젖을 보채듯, 이별의 아픔은 문득문득 깨어나 울부짖는다. 달려가 외로움을 끌어안는다. 마뜩잖은 수고로움이지만 그마저도 내 일부이기에 도무지 무시할 수 없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외로움을 재우는 것뿐이다. 그렇게 나는 외로움을 키워낸다. 어린 감정들을 어르고 달래며 함께 키워진다. 서투르게나마 나도 내 감정들과 함께 성장하는 것이다.

내가 이별을 버티는 것이 아니라, 이별이 나를 버텨낸다.


시간이 약이라고들 하지만 그 처방전은 저마다 달라, 어떤 이는 금세, 또 다른 혹자는 어쩌면 평생의 시간을 복용한다. 그 누구도 가늠할 수 없는 것이 사랑의 깊이와 이별의 집요함이다. 바닥의 타일 개수를 멍하니 세어 보고, 바람에 나부끼는 머리카락에 무력해지고, 공중전화 앞에서 머뭇거리게 되는, 그런 모든 시간의 흐름이 나에겐 곧 이별이었다.

버티는 이별 앞에 나의 일부이자 전부였던 어여쁜 우리 사랑의 순간들을 헌사한다. 그렇게 또 웅크렸던 몸을 이완하며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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