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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이 Jan 14. 2023

복숭아에 멍이 들듯이




서서히 멍들어 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보이지 않는 곳에서부터, 작은 충격으로부터 서서히.


복숭아를 사서 찰랑찰랑 거리며 집에 들고 가요. 어서 집에 가서 맛있는 복숭아를 먹겠다는 생각에 그저 신이 나서는, 조심성없이. 예쁘고 흠집 없는 애들만 고르고 골라서 멀쩡한 줄 알았는데 껍질을 벗겨보니 갈색 멍이 들어있었던 복숭아. 난 그저 빨리 맛있게 먹고 싶은 마음 뿐이었는데, 복숭아를 멍들게 할 생각은 없었는데. 빨리 먹고 싶어 신이 났던 게 잘못이라면 잘못이었을까요. 복숭아 과육은 생각보다 무르고 그 과육은 생각보다 더 예민하게 충격을 간직해요. 자기 몸에 멍을 남기는 방식으로.






최근들어 자각몽을 자주 꿔요. 나는 꿈에서 깨기 직전에 어, 이건 꿈인데. 하고 깨달아요. 얼마 전 꾼 내 꿈 얘길 하나 해줄까요.


나는 이상한 라운지 같은 곳에 많은 사람들과 모여 있었어요. 나는 그곳에서 누군가를 만나기로 했고, 그가 약속장소에 늦었어요. 그는 라운지에 자신의 맥북이 있으니 그걸 좀 챙겨서 와달라고 부탁했고, 나는 약속장소에 놓인 그의 펼쳐진 맥북을 찾았죠. 나는 그가 혹시라도 내가 자신의 노트북을 봤을까 하고 염려하는 마음이 드는 게 싫어 강제 종료하려고 하는데 그때 실수로 키보드에서 '헤드키'라는 걸 눌러 버렸어요. 헤드키는 스크린이나 프로젝터와 노트북을 연동시키는 키였죠. 그 순간 그 라운지에 있는 스크린으로 그의 노트북 화면이 송출됐고, 그의 노트북에 있는 여러 사생활과 관련된 자료들이 하나하나 팝업으로 떠올랐어요. 사람들은 웅성대며 경악했고, 그에게선 전화가 울리고 나는 사색이 돼 어쩔 줄을 몰라하고 있었죠. 그때 "어, 잠깐만. 맥북엔 '헤드키'라는 게 없잖아."하고 말하는 순간 꿈에서 깼어요.


내친김에 하나 더 할까요. 새해를 맞아 콜라를 끊겠다는 우스운 다짐을 하나 했는데요. 꿈 속에서 이상한 신제품 콜라 시음회? 같은 걸 하느라 나는 콜라를 한 모금씩 찔끔찔끔 마시고 있었어요. 체리맛 콜라를 맛보는데 이름이 '레드페퍼'였어요. 나는 이상하게 찜찜한 마음으로 그 콜라를 마시다가 '잠깐, 체리맛 콜라는 레드페퍼가 아니라 닥터페퍼잖아'하고 깨닫는 순간 후다닥 잠에서 깼어요. 참 바보같죠.






당신을 응원한다는 마음은 정말 변함이 없어요. 누구보다도 진심이고요. 당신도 그렇단 걸 알아요. 날 진심으로 응원하고 있단 걸 난 느낄 수 있어요. 그래서 고마워요 항상.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해요. 덕분에, 당신 덕분에.





이른 나이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 프랑스 작가의 얼굴과 그의 이름을 오랫동안 생각했어요. 오늘은 노래 한곡을 하루종일 반복재생해 들었어요. 하루종일 같은 노래를 들었지만 지루하지 않았어요. 덕분에 시간의 경계가 흐려지고 새벽과 아침과 오전 오후 그리고 저녁과 밤까지 하나의 옅은 색으로 물들었지만,  그게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당신의 자잘한 거짓말에는 타격도 없어요.  어떤 거짓말도 나는  괜찮아요. 당신이 어디서 무얼하든  아무 상관도 없어요. 당신이 아무리  일부러 괴롭혀도  아무렇지도 않아요. 악랄하고 교묘한 방식으로  괴롭혀도 당신이  미워요 . 화도 안나요. 필요한 순간에 가끔씩만 화가    뿐예요. 이젠 정말 아무렇지도 않아요. 당신은 당신이에요. 이러쿵 저러쿵 어쩌고 저쩌고 해봐야 아무 의미도 없는걸요.





콜라를 끊겠다고 다짐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가끔 콜라가 너무 마시고 싶은 순간이 몇몇 있어요. 나는 콜라 대신 물을 마시면서 대체될 수 없는게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상기해요. 그와 동시에 영원히, 영-영 대체될 수 없는 게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해요. 없으면 없는대로 다 살아져요. 살아는 져요. 콜라가 없어도 나는 잘 지내요.


이기적인 마음과 이타적인 마음이 공존할 때나 성숙한 마음과 미성숙한 마음이 충돌할 때, 반드시 이타적이고 성숙한 쪽만이 정답은 아니란 사실을 나이를 먹을수록 더 짙게 알게 돼요. 더욱 선명하게. 그 깨달음은 거룩하고도 혼란스럽고 묵직하면서도 산뜻하죠. 좀 더 솔직해도 되겠어요. 좀 더 마음대로 해도, 되겠어요. 나는 같은 곡을 계속 반복해서 들으면서 흥얼거렸어요. 나는 말도 안되는 춤을 추면서 마음 속으로 주문을 외우듯이 반복했어요. 좀 더 솔직하게, 솔직하게, 솔직하게.





당신의 마음이 고마워요. 당신은 날 처음봤을 때 부터 내가 좋은 사람이라고 말해줬죠. 알면 알수록 더 좋은 사람이라고 반짝이는 눈빛으로 내게 담백하게 말했었죠. 내가 사랑받기에 충분한 사람이라고, 넘치도록 사랑받아 마땅한 사람이라고 가감없이 말해준 고마운 사람. 난 당신이 오래도록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날 지켜줄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정말 고마워요, 진심으로. 난 이제 더이상 새벽이 두렵지 않아요. 겨울이 지나치게 춥지도 않고요. 갑자기 비가 내린대도 괜찮아요. 비 좀 맞으면 어떤가요. 이런 마음이 들기까지 모든 과정이 순탄하지 만은 않았어요. 그림자와 빛이 모두 있어야 명암이 지듯 멍든 적이 있어봐야 가뿐한 상태가 얼마나 좋은지도 알게되는 법이죠.







얼른 맛있는 복숭아가 먹고 싶어 상기된 마음과 빨라진 발걸음과 그 때문에 예기치 못하게, 아니 의도와 다르게 봉지 안에서 서로 흔들리며 멍 들어가던 복숭아들. 죄없는 복숭아.







마음의 멍은 눈에 보이지 않아요. 복숭아처럼 껍질을 벗겨볼 수도 없구요. 단단한 줄 알았던 내 마음은 생각보다 훨씬 더 무르고 거긴 보이지 않는 곳에서부터 아주 미세한 멍이 들었어요. 가만히 두면 아프지 않지만 어딘가에 짓눌리면 지그시 아픔이 전해져요. 그걸로 난 멍이 들었단 걸 감지해요. 내 마음을 멍들게 할 생각은 없었단 거 알아요, 그럼요. 잘 알아요. 나도 충분히 잘 아는걸요. 그렇지만, 마음은 생각보다 더 예민하게 충격을 간직해요. 가장 보이지 않는 곳에 멍을 남기는 방식으로. 복숭아보다 훨씬 더 은밀하게, 또 깊은 곳에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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