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점심을 먹고 모처럼 사색에 잠겼다.
쇠꼬챙이 하나가 불현듯 머리를 관통하는 듯한 날카로운 아픔이 느껴져
왼쪽 관자놀이를 지그시 누르며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그러다 문득,
새 옷이 헌 옷이 되는 과정에 대해 생각했다.
택을 땔 때 설레는 마음,
소중하게 아껴입는 마음,
주름이라도 질까 매번 다려 입는 마음,
뭐가 묻거나 올이라도 나가면
하루종일 기분이 안 좋아질 정도로 신경 쓰이는 마음,
걸려있는 것만 봐도 기분이 좋은,
그런 새 옷을 대하는 마음.
옷은 실제로 낡아서 낡은 게 아니라
입지 않는 순간 헌 옷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 옷이 얼마나 낡았는지와 상관없이
옷장에 처박힌 채
멀쩡히 낡아가는 내 헌 옷들.
아니 새 옷들,
헌 옷이 되어가는 멀쩡한 내 새 옷들.
이런 마음일까.
더 이상 손이 가지 않는
멀쩡한 내 새 옷들처럼,
멀쩡한 채 낡아가는 내 헌 옷처럼,
처음의 생기를 잃은 마음이
멀쩡히 닳고 닳는 과정.
더 이상 돌볼 여력이 없는 마음.
그렇게
아직 멀쩡하지만,
놓아버린 채 방치하는 마음.
헌 옷이라기엔 아직도 너무 새것이지만
흥미를 잃어 손길이 가지 않는
새롭지 않은 새 옷처럼,
새것이라기엔 이미 흥미를 잃어버린
나의 이 마음.
낡아버린 새 마음.
새 옷은 방치하는 순간 헌 옷이 되어버리는 거야.
마음도 똑같아.
따끈따끈한 마음도 방치하면 차갑게 식어버려.
나는 그걸 몰랐어.
미처 몰랐어.
아니, 사실 알았어.
사실 나는 다 알고 있었어.
미안,
미안해.
더 이상 손이 가지 않아 자리만 차지하는
멀쩡한 헌 옷들을 옷장에서 일제히 꺼내어 정리하면서,
나는 어쩔 도리없이 식어버린
유효기한이 지난 마음도 함께 정리하였다.
박스에 처박아두면 있었는지 없었는지도 모르게
까맣게 잊어버리게 되는 옷들처럼
내 마음 속 공간에서 몰아내면,
자리를 잃은 마음들은 원래 없던 것처럼
사라져버릴거야.
꺼내어 볼 수 없게, 치워 버리자.
그렇게 헌 옷을 정리하듯
마음을 정리했다.
헌 옷이 있던 자리엔
언젠가 헌 옷이 될, 결국엔 되고 말,
새 옷이 자리를 채웠다.
나는 새로운 마음으로
마음 속 빈 자리를 채우려 했지만,
한동안 그 곳을 비워 두기로 했다.
낡았지만 손이 자주가는 편안한 옷처럼
익숙하고 편안한 마음만,
그런 마음만 남겨둔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