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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이 May 09. 2024

요즘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




머리를 잘랐더니 머리 말리는 시간이 현저히 줄었다.


몇몇 지인들이 내가 단발로 자른다고 했을 때, 신중해야 한다고 여러차례 경고(?)했었다.

"너 단발하면 다시 긴 머리로 못 돌아가는 수가 있어."

전혀 와닿지 않던 그 은은한 위협(?)이 이제서야 퍽이나 공감이 되는 것이었다. 단발이 주는 편안함 때문에 머리가 길기 전에 계속 자르고 또 잘라 버려 영영 기를 수가 없게 된다는..! 근데 그 짧은 머리가 주는 이로움이 뭔지 정말 알 것 같다.

머리를 감는 시간도, 말리는 시간도 긴머리일 때의 반밖에 들지 않는다. 이렇게 편할 수가. 이렇게 생산적일 수가! 삶의 질이 쑥쑥 올라가는 기분이다. 가슴을 훌쩍 넘는 길이에서 쇄골이 조금 넘는 길이의 중단발로 잘랐다가, 다음 날 바로 어깨에 닿을랑말랑한 길이까지 잘랐다. 그러다 또 한 차례 잘라 이제는 턱까지 온다.

"얘들아, 나 머리 한 번 자르니까 점점 짧아지는 것 같아."

-원래 그래.

아, 원래 그런거야? 그래도 지금 머리가 잘 묶이니 다행이다. 다만, 낮게 묶는 것만 가능하다. 이제 당분간 똥머리나 포니테일 따위는 못하게 됐지만 오히려 좋다. 남자들이 머리를 수건으로 대충 슈슉 털고 나면 몇분 지나 다 말라 있는게 내심 정말 부러웠는데…… 그 정도는 아니지만, 나도 이제 30분동안 드라이로 말리다 팔이 아파오는 고통으로부턴 해방이다!!!!!!!!



정말 긴머리로 다신 못 돌아가는 건 아니겠지?






다 읽어버릴까봐 아쉬워서 조금씩 아껴 읽는 책이 한 권 있다.


읽으면 무조건 행복해지는, 잔잔한 미소가 지어지는 책. 그의 지성과 재치와 유머와 따뜻한 시선과 명료한 문장과 지극히 상식적인 사고방식을 너무 존경하고 또 닮고 싶다. 이런 책을 읽는 건 너무 확실한 행복이다. 나도 언젠가 누군가의 침대 맡에서, 지친 하루를 되돌아보며 읽다가 피식 미소 짓게하는 책을 쓸 수 있을까. 거창할 것도 없는, 딱 그정도. 그렇게 고요한 위로를 선사할 수 있다면 좋겠다.






새로운 습관이 생겼다.


그 사실이 제법 마음에 든다. 그게 나의 습관이 됐다는 그 자체가 마음에 드는지, 아니면 그 습관이 가져다 주는 여러 변화나 이점이 마음에 드는지, 둘 다 인지는 모르겠다.


요즘 머리가 복잡하면 닥치고 플랭크 1분을 한다. 하기 싫은 일을 하기 전이나 해야할 일이 있는데 왠지 모르게 자꾸 꾸물렁 대고 싶을 때, 게으름을 피울 수 있을 때까지 최애애애대한 버티고 싶을 때, 이불밖은 위험하다는 생각이 나를 급습할 때, 컨디션이 안 좋거나 혹은 안 좋아질 예정(?)일 때도 마찬가지다.

아 어 음 오어어 으엉? 응? 하기 전에 걍 무조건 냅다 플랭크를 해버린다.

무조건 한다. 일단 플랭크를 하면, 몇 초만에 아주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다.

플랭크를 하는 순간, 시간이 느리게 가기 시작한다. 뉴턴 역학에 반기를 들고 나타난 아이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절로 이해가 된다. 모든 좌표계에서 빛의 속도가 일정하고 모든 자연법칙이 똑같다면, 시간과 물체의 운동은 관찰자에 따라 상대적…어쩌고저쩌고 따위의 이론을 바로 '몸으로' 이해하고 만다.

아니 분명 시작할 때 1분 타이머를 맞춰뒀는데, 타이머가 혹시 멈췄나 싶어 괜히 시리를 부른다. 헤이 시리, 시리? 띠릭! 소리에 켜진 화면을 보니 타이머는 여전히 잘 가고 있다. 한참동안 했다 싶은데 여전히 32초가 남았단다. 와, 1분이 이렇게 길었나? 이렇게나? 삐비빅! 삐비빅!

그제서야 나는 "동시성은 절대적인 개념이 아니라, 관찰자의 운동 상태에 따라 다르다.....!!"라는 특수상대성이론을 다시금 곱씹으며 장렬히 전사하고 마는 것이다.


이상하게 플랭크를 하고 나면 갑자기 모든 일을 할 의욕이 생긴다. 아주우우 느리게 가던 시간이 갑자기 제 속도를 찾으면서 내 등을 탁- 밀어주는 느낌이랄까. '아, 설거지 하기 싫어-> 플랭크 1분-> 설거지를 해야겠어.' 이런 식이다. 설거지는 플랭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귀여운 테스크가 되고 만다. 룰루랄라 노래를 부르면서도 할 수 있다. 그리고 이상하게 플랭크를 하는 동안 뭔가가 하기싫은 기분과, 그것이 하기싫은 10000000가지 이유를 생각하던 머릿속이 싹 정리되고 만다. 실수로 파일을 지워버린 것처럼 그냥 1초만에 모든 생각이 싹 사라져 버린다. 머릿속은 '하, 힘들어. 으으윽(팔 후들후들). 복그으은 땡겨어어. 1분 언제 끝나아아으악.' 이런 생각뿐이다. 정말 의식이 환기 되는지 어쩌는지는 모르겠지만, 상당히 효과적이라 게으름을 극복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추천한다. 알게 모르게 복근이 짱짱해지는 건 덤이다.


 아 물론, 밖이라든지 아무데서나 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지만 집에 있을 때 활용하면 효과 만점이다.


근데 요즘 부작용(?)이 생겼다. 하기 싫은 일을 하기 전에 무조건 플랭크를 하다보니, 어떤 일이 하기 싫어서 플랭크를 할까말까 하는 순간에 '아, 아냐. 나 이 일을 싫어하지 않는 거얼~? 마침 하려고 했는 걸?'하면서 나 자신을 속이게 된다는 거다. 하기싫은 일과 플랭크 사이에 '플랭크를 피하기 위한 달콤한 자기기만의 시간'이 끼어 들었다. 그래도 더이상의 시간 지체없이 일을 시작하게 된다는 점에선 좋은 건가? 싫어하던 일을 더이상 싫어하지 않게 된다는 점에서(사실은 싫어하지 않는다고 나 자신을 속이는 것이지만)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는건가....? 모르겠다.


이제 이 글을 마치고 나면 일본어 단어를 외워야하는데...아, 플랭크 하러 가야겠다! 아, 아냐 아냐. 나 사실 일본어 단어 외우기를 싫어하지 않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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