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중, 「상속」 단평
이 소설은 죽음을 앞둔 습작생이 젊은 소설가 선생이 죽기 전 남긴 유품인 책을 자신의 소설 쓰기 아카데미 동기이자 갓 작가가 된 친구에게 전해주면서 생기는 소소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상속되는 것이 선생의 유물인 ‘책’이 아니라 바로 그 사람의 ‘인생’이라는 것이다. 기주와 선생이 함께 줄을 그은 문장들은 마치 하나의 화음처럼 진영에게 울리게 된다. 그들이 읽었던 책들을 물려받는다는 것은, 단순히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갈 기회를 얻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내면세계까지 고스란히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을 선물 받게 됨과 동시에 어떠한 감흥을 느낄 기회를 얻게 되는 것이다.
소설에서 맞물려 돌아가는 것은 ‘소설 쓰기’와 ‘죽음’이다. 작가가 주인공이자 서술자를 ‘소설가’ 즉, ‘글을 쓰는 사람’으로 설정한 것은 지극히 의도적인 것이며, 그들이 ‘죽음’과 연관되어있는 것 역시 결코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죽음의 앞에 놓인 사람이, 또 이미 죽음을 겪은 사람이 아직 남아 앞으로의 인생을 살아가야 할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을 수 있을까. 이 소설은 ‘문인’으로서 할 수 있는 가장 숭고한 가치로서의 ‘상속’을 이야기하고 있다.
글을 쓴다는 것은 결국 우리의 ‘삶’을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우리네 삶을 어떻게 담아낼 것인가, 또 어떻게 하면 ‘잘’ 담아낼 것인가가 바로 글쓰기의 난관이자, 과제이다. 그것을 통해 독자에게 아주 작은 것이라도 영향을 끼칠 수 있을 때, 이를테면 성찰이나 탐색과 같은 자아 확장의 기회를 선물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그 글의 의미와 가치는 빛을 발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인간의 ‘삶’과 ‘죽음’은 글쓰기의 본질적인 영역이자 주제이며 의미를 탐구하는 데 있어서 결코 별개로 상정할 수 없는 무엇이라 할 수 있다. 작가는 그것의 무게를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내 의지가 아닌 다른 누군가에 의해 이 세상에 태어나 자신이 상속받은 삶을 살아가면서 또 다른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칠 찬란한 문장들을 쓰고, 그것들을 엮어 하나의 소설이나 한 권의 책으로 세상에 낼 때, 이미 그것은 하나의 ‘유품’이 된다. 작가의 유품을 우리들은 읽으면서 생각하고 탐색하고 공감하고 위로받으며 우리 역시도 그 ‘삶’의 테두리 안에 존재함을 다시금 확인하게 되는데, 이것은 하나의 ‘상속’의 과정이라 볼 수 있다. 하나의 작품을 읽는다는 것은 그 속의 인생을 읽는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책을 상속하는 것은 하나의 인생을 상속하는 것과 결코 다르지 않다. 그 책을 읽은 사람이 또 다른 작품을 써내고 그것을 독자에게 건넬 때, 비로소 또 하나의 인생이 상속되게 된다.
결국, 작가는 ‘글쓰기’라는 것이 무한한 상속의 과정임을 자각하고 이에 대한 깨달음을 이렇게 넌지시 그러면서 차분하고 조곤조곤하게 전한다. 이것은 자기 고백적 소설이자 메타소설이자 그런 의미에서 소설이지만 소설이 아닌 소설일 수 있을 것이다. 작가는 자신의 창작과정에서도 맞닿을 수밖에 없는 어떠한 당위적인 ‘글쓰기’의 목적과 본질적 문제에 관한 탐구를 소설로 기어코 탄생시키면서 이렇게 또 한 사람의 인생이 상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