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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이 Oct 13. 2024

대도시의 생존법

이언희, <대도시의 사랑법>



이언희 감독의 대도시의 사랑법을 보고 왔다. 박상영 작가의 연작소설 <대도시의 사랑법> 속  단편「재희」가 원작인 작품이다. 지금까지는 원작을 넘어서는 작품은 없다고 생각했다. 항상 원작 소설을 읽고 영화를 보면 실망하곤 했으니까. 정말 잘 만들어진 영화라고 해도 항상 원작을 생각하면 아쉬웠다. 


소설을 원작으로 둔 대부분의 영화가 그렇듯, 태생적으로(?) 원작을 넘는 영화란 게 좀처럼 나오기 힘들다. 러닝타임 동안 섬세한 서술과 이야기를 다 녹여내기란 무리다보니 많은 생략이 들어갈 수밖에 없고, 원작을 재밌게 읽은 사람일수록 영화를 보면 실망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영화 관람 전부터 많은 걱정을 했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이 영화는 소설보다 더 좋았다.





영화를 보기 전에 후기나 평론가들의 평점을 먼저 보고 가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면 자꾸 은연중에 그 평가가 영향을 미쳐 온전한 영화 감상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웬일인지 불안하여, 쓸데없이 돈과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아니하여, 그보다는 기분을 잡치고 싶지 아니하여, 영화를 보기 전에 관람평을 미리 찾아봤는데, 종종 '원작보다 좋았다', '소설을 먼저 읽었는데, 소설보다 더 좋았다'와 같은 평들이 눈에 띄었다. 그럴 수가 있나...? 했는데 영화를 보고 나서는 절절히 공감한다.


굳이 두 작품을 동일 선상에 두고 비교하자면 소설 원작보다 영화가 좀 더 좋았던 이유는 꽤 많다. 물론 소설은 소설만의 매력이, 영화는 영화만의 매력이, 각 장르가 표현할 수 있는 특성이 있기 마련이지만.  


영화가 원작보다 더 촘촘하고, 디테일하고, 상징적이고, 귀엽고, 웃기고, 전반적인 완성도와 완결성이 더 뛰어났던 것 같다. 물론 김고은은 내가 생각했던 여주인공의 이미지와 다소 괴리가 있었지만, 그게 극 전체를 방해할 정도는 아니었고 노상현의 연기가 특히 좋았다. 그는 그리 많은 대사를 하지는 않지만 눈빛과 서있는 자세, 뒷모습만으로도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 표현했다. 연출과 연기에 설득력이 있어 내가 상상한 장면이 그대로가 아니더라도 실망스럽지 않고 오히려 좋았다. 다만, 주인공 흥수의 애인으로 나왔던 배우의 연기가 다소 국어책 읽듯 어색해 중간중간 호흡이 무너져 흐름이 끊기고, 몰입이 깨진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노상현 배우가 넘기는 감정과 호흡을 상대 배우가 온전히 받아치면서 주고 받지 못하는 느낌.





「재희」는 박상영 작가의 작품 중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작품이다.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 1차원이 되고 싶어, 믿음에 대하여 등 그의 다른 작품을 빠짐없이 다 읽어봤지만 그래도 난 '재희'가 제일 좋았다. 딱 적당한 무게감과 그만큼의 위트와 유머, 억지스럽고 구차하지 않은 서술이 좋았달까. 영화나 드라마로 나오면 어떠려나 기대반 걱정반이었는데, 괜한 걱정을 했다 싶다.


이언희 감독은 '미씽'에서도 그렇고 개연성 있게 이야기를 끌어가는 능력과 인물의 시점에서 영화에 집중할 수 있게 하는 능력이 탁월한 것 같다. 


(스포가 될 수 있어 자세히 이야기 할 수는 없지만) 여자에게 남자란 빨간 옷 같은 거라는 이야기, 구겨진 우유곽과 열등감에 관한 이야기가 특히 기억에 남고 복분자 소동도 귀여웠다. 원작에서는 주인공이 재희의 결혼식에서 축가로 핑클의 '영원한 사랑'을 부르는데, 영화에서는 'Bad girl Good girl'로 바꾼 것도 노래 가사가 재희에게 좀 더 찰떡처럼 어울렸던 것 같다. 전혀 슬픈 노래가 아닌데 슬프게 느껴졌다. 둘이 춤추면서 그 노래를 부를 때는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지. 너무 많이 울고 말았다.


Bad girl Good girl 전주가 나올 때 좀 더 요즘 노래로 바꿨네? 했는데 저 노래도 벌써 14년 전에 나온 노래라니……세월의 흐름과 그 아찔한 속도를 실감했다.  




심각한 얘기도 아니고 그냥 귀엽고 깜찍한 이야기이자 청춘 성장물?이라면 성장물인데, 너무 많은 눈물을 흘리고 나왔다. 내가 대학생활 했던 시기와 겹쳐서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었을까. 


대도시의 사랑법은 제목처럼 '사랑의 방법'이나 '사랑의 형태'를 다루기 보다는 하나의 '생존'을 이야기 하고 있다. 불안정한 청춘이 대도시에서 살아가기 위해서, 말그대로 '생존'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형태의 사랑이 필요했으리라. 


대도시에서 생존하기 위한 생존법. 재희와 흥수의 관계는 어쩌면 판타지적이기도 하다. 성별이 다른 성소수자 친구와의 동거라는 특수한 형태의 관계란 다양한 이유로 현실에서 존재하기가 쉽지 않을 테니까. 


"네가 너인 게 어떻게 약점이 될 수가 있어."

재희가 흥수에게 한 말이다. 재희와 흥수는 서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준다. 평범하지 않고 유별나다거나, 특이하다고 섣불리 평가하지 않는다. 상대를 어떤 소수자의 위치에 놓고 배제하지도 않는다. 그저 온전히 서로의 '존재' 자체를 긍정해준다. 내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해주는 존재가 있다면, 칠흑같이 어두운 이 대도시의 밤도 외롭지 않을 수 있다.


늘 외롭고 위태롭고 불안하고 두려운 그래서 불완전한 청춘이 서로 기대고 의지하면서 성장하는, 도시에서 생존하는 이야기. 서로 열렬히 사랑하기 보다는 서로의 사랑을 지켜주기 위해 서로가 필요한 관계. 그 사랑의 형태가 어떻든 그것 역시 사랑이고, 사랑 없인 생존이 불가능하다. 도시의 밤은 너무 어둡고 차가우니까. 






날씨가 너무 좋아서 오랜만에 노들섬에 갔다. 아니, 그런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깜짝 놀라고 말았다. 노들섬에 이렇게 사람이 많았었나. 다들 피크닉 나온 것 같은데, 거의 여의나루 뺨치는 인구밀도였다. 노들섬은 한강에 비해서 한산하고 그 특유의 분위기가 좋아서 가끔 러닝도 하고 피크닉도 왔었는데. 


날씨가 너무 좋은 탓일까. 내가 생각했던 건 잔디밭에 평온하게 누워서 책도 읽고 커피 마시면서 이야기도 나누는 거였는데, 잔디밭에 누울 자리조차 없어 보였다. 다들 팍팍한 도시 생활 속에서 가을이 가기 전에 모처럼 시간 내서 놀러 나온 거겠지. 하, 그나저나 이런 식이라면 또 다른 아지트를 물색해봐야겠는데. 나는 아쉬운 마음으로 서둘러 피크닉을 마무리 했다. 대도시에서의 생존, 역시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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