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 미도파
연희동 골목을 걷다 보면 문득 발걸음이 느려지는 순간이 있다. 어디선가 익숙하게 풍겨오는 레트로한 공기. 간판의 로고에서부터 심상찮은 기운이 풍기는 ‘미도파’는 그런 장소다. 처음 문을 열고 들어서면, 마치 시간을 거슬러 어떤 오래된 영상의 한 장면 안으로 불쑥 들어가 버린 듯한 기분이 든다. 새것보다 오래된 것의 촉감이 더 따뜻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곳은 아주 조용하고 설득력 있게 증명한다.
낡은 계단을 올라 2층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문득 오래된 백화점 간판을 축소해 놓은 듯한 ‘미도파’의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옛날 이름 그대로의 레트로 감성, 그것이 이 공간의 정체성이다. 내부로 들어서면, 1990년대~2000년대 초반의 음악이 부드럽게 흐르고, 빈티지 전화기와 레코드 판, 손전화기와 같은 물건들이 어쩐지 익숙하고도 낯선 친구처럼 자리를 잡고 있다. 마치 어릴 적 부모님 손잡고 갔던 백화점의 추억 한 켠에 다시 초대된 기분이다.
조용한 창가 쪽 테이블에 앉아 메뉴판을 펼치면, 시럽을 머금은 카페 오레나 메론소다 아이스크림 같은 음료들이 복고 스타일 감성을 더욱 도드라지게 만든다. 나는 향이 진한 강배전 드립커피를 주문하고, 창 너머로 보이는 연희104고지 정류장의 풍경을 바라본다. 바삐 오가는 사람들과 그런 사람들을 한 웅큼씩 싣고 또 내려주는 버스. 이 공간이 주는 분위기 탓인지 그 모습은 마치 과거의 사진 속 한 장면처럼 느껴진다.
내가 미도파를 좋아하는 이유는 단순히 예쁜 복고 카페여서가 아니다. 시대가 지난 포스터들, 이제는 더이상 나오지 않는 기계들, 조금씩 긁히고 벗겨진 나무 테이블 같은 작은 것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낡음의 온도' 때문이다. 손때가 묻은 것들만이 품을 수 있는 은은한 포근함. 이곳의 분위기는 누군가의 오래된 집에 초대받은 듯 편안하고, 동네의 시간과 함께 숨 쉬는 것처럼 느긋하다. 그래서 책 한 권을 꺼내 놓고 커피를 마시다 보면, 정신없이 흘러가던 일상 속에서 잠깐 숨을 들이키는 감각이 찾아온다. 마치 ‘괜찮아, 오늘은 조금 천천히 가도 돼’ 하고 다독여주는 것처럼.
미도파의 메뉴는 화려하지 않지만, 이상하게 오래 기억에 남는다. 눈에띄게 특별하다기보다, 공간의 감성과 어울리는 맛을 낸다는 게 더 정확할 거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면 젖은 나무 냄새 같은 고소함이 퍼지고 잔을 내려놓는 순간엔 잔잔한 음악이 뒤늦게 귀에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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