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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이 Apr 19. 2022

그날의 우리



그날은 갑자기 예기치 않게 비가 내렸지


"앗 차거"

한 방울 떨어지는 비를 맞고 너를 쳐다보자

너는 웃었지


한 두방울 떨어지던 빗방울은

이내

부슬부슬 내리는 비가 되었고

우린 서둘러 아무데나 들어갔어



우리가 식사를 마치고 나왔을 때


빗줄기는 걷잡을 수 없이 굵어져 있었지


나는 우산이 없었고


너는 우산을 챙겨왔었지



"오늘 비 예보 있댔는데 우산도 안 가지고 오고, 바보."


그렇게 말하는 네 목소리를 들으면서


덤벙대는 성격을 가진 내가 고맙다고 생각했어



입구로 가 우산을 찾았지만

하필 누가 너의 우산을 가져가버렸고

너는 "아, 그 우산 비싼건데" 하면서 웃었어



급한대로 편의점에 우산을 사러 들어갔고


평소같으면 각자 하나씩 두 개를 샀겠지만

우린 하나를 샀지


그게 시작이었을까




우린

하나의 우산을

나눠썼지


우산을 나눠쓸만큼 친밀한 사이도 아니었는데말야



평소같으면 택시를 탔겠지만


나는 빗속을 내달리는

버스를 타고 싶었고


너는 버스 정류장까지 데려다 준다고 했어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더니 '15분' 이라는 전광판의 글씨가 보였지


평소같으면 이왕 정류장까지 왔으니

그냥 기다렸다 탔겠지만


그날은 왠지 그 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졌어


너는


"아, 버스 오려면 한참 남았네


좀 더 놀래?"


라고 했고


나는 그래, 라고 대답했지.


그리고 우리는 바보처럼 다트 따위를 했던 기억이 나.


비가 대충 그쳤나,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너는 그날 편의점에서 샀던 우산을 다시 잃어버렸던 것 같기도하고.



그날 우린 게으르고도 부지런했고


우연적이면서도 필연적이었지


그날 비가 오지 않았더라면

그날 네가 우산을 잃어버리지 않았더라면

내가 그냥 택시를 탔더라면

버스가 곧 왔더라면

네가 좀 더 놀래?라고 묻지 않았더라면


나는 너의 그런 웃음,

그런 말투 그런 손짓 그런 춤 그런 표정

따위를 보는 일은 없었겠지



별거 아닌 하루라고 생각했는데


참 별거인 하루였던

그날이


가끔 생각나


아니,



자꾸

자꾸자꾸 생각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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