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중독자

쓰고 싶다고 적고, 다시, 쓴다고 적고

by 어찌


[들어가는 말]


일기를 쓰고 싶다고, 혹은 써야 한다고 일기에 적는다.

일기를 쓴다고 일기에 적는다.

내 일기의 다른 이야기들도 대부분 이런 식이다.

지금도, 또 쓰고 있다고 쓰고 있지 않나.





[일기 중독자-1]


중독. 나는 일기를 쓰기 위해 일기를 쓰는 게 아닐까.


일기에 잡아두지 않으면 생의 흔적이 모두 흘러내려 찾을 수 없게 될 것 같다. 한순간도 놓쳐서는 안 된다는 일종의 강박관념에서 생긴 습관일지도 모른다. 혹은 ‘검사-확인’을 받아야만 안정감을 느끼는 이상한 근성일지도 모르고.

나는 기억력이 무척 안 좋아서 모든 걸 너무 쉽게 잊어버리니까. 적어도 이 감정과 이 사건들은 잊어버리면 안 돼, 라며.

그렇다기엔 참 쓸모없고, 지나치게 사적이며,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을 법한 (심지어 나조차도) 중얼거림에 지나지 않지만. 지나친 솔직함은 거북하지만 '일기니까'라는 마법의 말은 모든 '쓰기'를 허용한다. 때때로 지나친 자기 고양감은 느끼하고, 묵직한 자책감은 징그럽기까지 할지라도 말이다.


역시 그저, 아무거나 ‘쓰는’ 행위 자체에 중독되어 있을 뿐일지도 모르겠다.









[일기 중독자-2]


일기 중독인 주제에 일기를 잘 쓰지는 못한다.

일기를 잘 쓴다는 게 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내 일기가 ‘잘 쓰인 일기’의 범주에 속하지 않다는 것 정도는 안다. 그건 세상 바보천치가 와도 알 수 있다. 봐, 또 이렇게 자기 비하로 징그러워지려고 하잖아.


월요일의 일기를 목요일에 쓴다. 화요일의 슬픔을 수요일에 굳이 다시 들춰내고, 금요일의 즐거움을 다음 월요일에 정리한다. 문장의 시제는 시간을 넘나 든다.

누군가를 만나야 한다고 적어두고 만났다고 또 적는다. 중복이다.

감정이 한 문장 사이에서 널뛴다. 일관성이 0에 수렴한다.


엉망진창이다.





[일기 중독자-3]


그런데도 일기를 쓰는 것은 결국 버티지 못하기 때문이다.

쓰지 않고는, 마치 모기 몇 마리를 잡지 못한 채 잠에 들려는 것과 같은 찜찜함 때문이다. 앵앵거리는 소리가 거슬린다. 괜히 가려운 느낌에 어깻죽지와 허벅지를 벅벅 긁어대다 결국 벌떡 일어나 방 불을 켜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