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수영 : 숨은 잘 쉬고 살고 있나요?

-백수가 되고, 평일 오전 11시 수영 강습에 다니고 있습니다

by 어찌


백수가 되고, 평일 오전 11시에 시작하는 수영 강습에 다닐 수 있게 되었다.








강습 첫날. 20대부터 70대까지 남녀노소가 쭈뼛쭈뼛 수영장에 몸을 담근다. 아직 수영복을 입은 제 모습이 어색하지만, 기분 좋은 긴장감이 얼굴에 떠오른다.

“개헤엄만 쳐봤는데 앞으로 나갈 수 있을지 모르겠네.”

형광 물안경을 쓴 할머니의 말에 다들 ‘저도요’를 외치며 제대로 헤엄을 칠 수 있을지 염려한다. ...쓸 데 없는 고민이었다. 이제 막 수영을 시작하는 학생들이 배우는 건 발차기도, 팔 동작도, 심지어 가만히 물에 둥둥 떠 있기도 아니다. 가장 먼저 배우는 건 바로, ‘숨 쉬는 방법’이다.

일명 「음파 호흡법」. 이렇게 말하니 무슨 소림사 만화에 나올 법한 무술 비기 같은데, 현실은 ‘음-(물속에서 보글보글 날숨) 파-흡-(고개를 들며 물 밖에서 들숨)’이다.



숨쉬기만큼 단순한 동작이 있을까? 아니, 애초에 동작이라고 부를 수나 있나? 외부의 공기를 몸 안에 들이마시고, 다시 내 몸 안의 공기를 바깥으로 내보내는 것이다. 그러니까 ‘잘 숨 쉬는 방법을 배운다’라는 건 ‘내게 맞는 속도를 찾아 바깥을 마시고 안을 내뱉는 법을, 그리고 그 두 가지를 리듬감 있게 연결하는 법’을 익히는 거다.





Pixabay @愚木混株 Cdd20



머릿속에서 이미 나는 숨쉬기의 일류 고수다. 공기 대신 물을 듬뿍 마시고, 가슴까지 오는 물 높이에서 꼬르륵거리며 온 팔과 다리를 연체동물처럼 버둥대며 물 밖으로 간신히 나오기 전까지는. 「음파」라는 깔끔한 두 음운의 명칭을 가진 호흡법은 내가 하면 「음- 보글... 보그르륵 뽀글르륵! 컥, 파! 허흡, 헉 헉」호흡법이 된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다들 거기서 거기라는 점이다. 70대 분홍 꽃무늬 수모를 쓴 할머니도, 새까만 민무늬 수영복을 입은 20대도 예외는 없다. 70년이고 20년이고 잘만 숨 쉬고 살아왔던 (그렇게 믿었던) 몇십 년의 세월은 다 부질없는 거품이 되어 물 안에서 보글보글 흩어진다.



인생무상과 생존 수영. 그 사이의 아이러니함에서 일단 생존이 먼저다. 온 신경을 집중한다. 숨을 어느 정도 빠르기로 내뱉어야 하는지, 물 밖에서 어느 정도의 각도로 고개를 돌려야 숨을 마실 수 있는지, 그 속도감과 리듬감에. 그리고, 얼마나 힘 있게 신체를 지탱해야 하는지, 혹은 얼마나 힘을 빼야 하는지의 강도에.

이렇게 ‘숨을 쉰다’라는 행위에 온 감각을 집중해 본 적이 없다. 어떻게 해야 하지? 어떻게 했더라? 그리고 그제야, 한 번도 ‘숨쉬기’를 제대로 배워 본 적이 없다는 걸 깨닫는다.



당연하다. 살기 위해서는 숨을 쉬어야 하고, 이미 살아 있다는 건 숨을 쉴 줄 안다는 뜻이니까. 당연히 알고 있는 걸 굳이 다시 살펴볼 필요는 없었다. 새로운 걸 배우기에도 충분히 정신이 쏙 빠지는 하루하루였는 걸. 그래서 다른 사람이 숨을 ‘잘’ 쉬고 있는지 관심을 둔 적이 없었다. 그건 나 스스로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되려, “숨 쉬는 건 안 귀찮냐?”라는 질문에 “숨을 안 쉬는 게 더 귀찮거든.”라고 대답하던 나였다.


숨 쉬는 거? 당연히 할 줄 아는 거 아니야? 아니, 안 하는 게 더 어려운데요.




Pixabay @tatlin



다시 숨을 꾹 참은 채로 물 안으로 고개를 박고, 바닥을 바라본다. 수영장의 균일한 사각형 타일이 물에 일렁거려, 꼭 내가 아니라 바닥이 둥실둥실 떠다니는 것 같다. 천천히 숨을 내뱉는다. 콧 속에서 몸 안의 공기가 거품이 되어 빠져나간다. 그러고 있자면, 바닥의 정사각형 타일이 찌그러진 마름모꼴이 되었다가 곡선이 되었다가 하며 물어보는 것이다.

‘그동안 숨은 잘 쉬며 살아왔어? 정말로? 그럼 지금은? 언제 쉬어야 하는지 알겠어?’

지금은....... 아, 숨이 찬다. 안에 있던 공기가 죄다 빠져나간 거다. 바깥이 필요하다. 파- 숨을 크게 내뱉으며 수면 위로 고개를 쳐들었다가 빠르게 공기를 마시고 다시 물속으로 처박힌다.

아, 또 리듬감을 놓쳤나 보다. 들이 마신 건, 공기 반 물 반이다. 아이고, 또 가라앉는다. 꼬르륵...







수영 강습을 시작한 지 몇 주가 지났지만 여전히 호흡은 어렵다. 그래도 확실히 알게 된 건, 나도 사람들도 사실 대부분 숨을 ‘잘’ 쉬는 방법 따위 모른다는 것이다.

특히 수영장 초급반에서 왜 숨 하나 제대로 못 쉬냐고 비웃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들 ‘어떻게 그렇게 숨을 잘 쉬어요? 물 안 들어가요?’라며 진지하게 고민한다. (세대 통합의 아름다운 현장을 보고 싶다면 수영 강습에 등록하면 된다. 생존을 위한 일차적인 자유로움을 위해 20대부터 70대까지 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세대 공감과 통합의 장을 볼 수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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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당연히’ 할 줄 아는 일은 없다. 당연히 ‘잘해야 하는’ 일도 없다. 왜 못하냐고 구박하거나 반대로 자책해도 되는 일 따위는 더더욱 없다. 아니, 숨 쉬는 것도 제대로 못 하면서 무슨. 거기 새치기하려는 분, 숨부터 제대로 쉬고 오세요.

백수가 되고 이것저것 하기 전에, 일단 숨이나 먼저 잘 쉬어야겠다고- 목구멍에서 느껴지는 알싸한 수영장 물 향을 맡으며 생각한다. 숨쉬기는 어쩌면 수영 초급반을 다니는 동안만이 아니라, 살아가는 내내 익혀야 할 진짜 삶의 비기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