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개월 장기 아르바이트생은, 15층의 거주민

- 거꿀이 백수의 세계 -

by 어찌
백수의 세계는 거꾸로 된 세상이다.
더 오래 근무한다는 사람에게 "왜?"라는 의문을 던진다.





"와, 한 달이나 일하세요?"

"그렇게 오래 근무하신다니 정말 대단하세요!"




예...? 모두 한 달 아르바이트가 아니었단 말이에요?

아니, 그전에... 보통 한 달 아르바이트는 초 단타 아니었나요. 언제부터 한 달이 장기근속 기간이 된 거죠.







이게 어떻게 된 사연이냐면, 백수가 된 지 한두 달 차, 나는 한 달 아르바이트(이하 '알바')에 지원했다.

벌써 돈이 다 떨어졌다거나, 급하게 필요하게 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작은 지방 도시에서 레일을 타는 공장 아르바이트가 아닌, 딱 한 달만 근무하는 일자리는 거의 나오지 않았고, 마침 제법 큰 스파 의류 브랜드가 오픈하면서, 그 흔치 않은 한 달 아르바이트 자리가, 그것도 제대로 근로계약서를 쓰고 4대 보험이 들어가며, 불법적 초과근무 없이 돈 떼일 일이 없는, 일자리가 나온 것이다.

보통 제대로 된 근로계약서를 쓰는 단기 계약직은 6개월, 아주 짧아야 3개월인 경우가 대부분이기에, 이런 나름의 대기업에서의 한 달짜리 아르바이트 자리는 백수계의 산삼인 셈이다.




이걸 하면 적어도 서너 달은 아무 계산 없이 백수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

'심봤다! 투자 수익률 300프로!'라는 이상한 계산법으로 지원한 이곳에서- 첫 점심 식사시간, 이런 생각지 못한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출처 : 픽사베이 @tigerlily713



서른여 명 정도의 알바생들 중 한 달 내내 일하는 이들은 나를 포함하여 5명뿐이었다. 그 외에는 거의 1-2주 정도의 단기 알바생들이었다.

그들은 나를 마치 만 60세 정년퇴직 근로계약을 맺은 사람을 보듯 눈을 반짝였다. 물론 말처럼 '대단하다'라는 눈빛은 아니었고, 비하하는 눈빛도 아니었으며, 순수하게 '신기하다'라는 눈빛에 가까웠다.





"하하하... 한 달 알바 구하기가 어렵더라고요. 딱 한 달 일하고 싶은데."





나는 어쩐지 변명하는 기분이 되어 어색하게 웃었다.





"하긴, 좀 길게 팍, 일하고 오래 쉬는 것도 나쁘지 않지."

"맞아맞아, 잊을만하면 일해야 하는 것도 은근히 귀찮아."





아니, 그러니까 저만 이상하다고 느끼는 건가요. 한 달이 그토록 긴 시간이었던가요. 하지만 어쩐지 분위기상 따질 수가 없었다. 그저 혼란스럽게 눈알을 데굴데굴 굴렸다.







문제는, 이 이상함이 점심을 먹고 난 이후, 다 같이 바닥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까지도 이어졌다는 거다.



"어디에서 오셨어요?"

"저는 A동, 아 그런데 저 어차피 일주일만 하고 그만둬요."

"아......"



정직원들의 어디서 왔느냐는 관심의 질문에 근무기간으로 대답한 것은 오랜 경험에서 나오는 배려였다. 매정하다고 볼 수도 있겠으나, 어쨌든 사람에게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으니 오래도록 함께 할 사람에게 더 에너지를 쏟는 게 당연한 생존본능일 것이다.





출처 : 픽사베이 @ Suppadeth wongyee



마치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의 만남과 같은 거다.


20층에 올라가는 사람이 다른 누군가와 엘리베이터를 탄 상황을 생각해 보자.

상대가 4층을 누른다. 고개를 숙이고 핸드폰을 한다. 13층을 누른다. 눈을 마주치고 가볍게 고개를 까딱하며 인사를 건넨다. 조금 사회성이 발달한 사람이라면 '날씨가 좋지요'나 '어디 다녀오시나 봐요' 따위의 인사를 건넬수도 있겠다.

그런데 19층, 아니 20층을 누른다면?

그는 같은 동 '거주민'에서 내 아래층이거나 옆층의 '이웃'이 된다. "엇, 안녕하세요!" 입가에 미소를 띠며 목소리 톤을 한 단계 올려 인사를 건넨다.






그래, 그렇기에 이 정도의 흐름은 자연스러운 알바 생태계의 수순이었다. 이상한 일은 그다음에 일어났다.

함께 점심 식사를 한 사람이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 이분은 한 달 일하세요!"

"오, 정말요? 잘 부탁해요.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집은 가까워요?"

"네? 아, 네, 그 저는, H동에서 왔어요."



아니 방금 눈이 살짝 반짝이셨는데 잘 못 본 거지요? 그러니까 저 한 달 단기 알바 맞지요...? 일 년을 잘못 들으신 건 아니지요?


20층까지는 아니어도 한 15층 정도의 '이웃 주민'을 대하는 태도에 당황하여 어색하게 대답했다. 4층도 아닌 3층이라 여겼던 내 친밀감의 강도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수직 상승했다.








이상하면서 웃기는 상황이라고 생각했다. (아, 물론 고층은 싫다. 나는 아무도 모르는 3층에서 조용히 내리고 싶다.)




정규직 직장인-이라는 신분에서 본 '기간의 관계'와 달랐기 때문이다.

계약직인 사람들에게 (특히 나이가 조금 있다면) 종종 '그런데 왜 계약직으로 일을 하세요?'라고 이유를 물었다. 걱정을 가장한 우월감의 위로를 건네기도 했다. "여기서 경력 좀 쌓으면 다음에는 좋은 곳으로 정규직 들어갈 수 있을 거예요." 따위나 "다음에 정규직 모집한다던데 도전해봐요. 누구씨는 지금처럼만 일하면 될거야."라는 식의.



보통 안정된 직장을 더 선호하니까,라고 반문할수도 있겠으나 어쩌면 안정성 선호 현상이 이런 질문을 만들어냄과 동시에 이런 질문이 당연한 사회적 분위기가 장기근속의 정규직 선호 현상을 더 강화시키는 건 아닐까.






이곳 백수의 세계는 거꾸로 된 세상이다. 더 오래 근무한다는 사람에게 "왜?"라는 의문을 던진다.

말을 건네는 정직원들에게 당당하게 먼저 나는 잠시 지나가는 인연이라고 알려준다.

'저는 4층 거주자예요. 곧 떠날 거지요.'




그렇다고 서로에게 냉소적으로 대하지도 않는다. 만약 그 사실을 알고도 말을 건넨다면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진다.

자연스럽게 밥을 함께 먹고, 함께 근무 스케줄을 확인하고, 자연스럽게 흩어진다.





출처 : 픽사베이 @Jose Antonio Alba



있어도 이상하지 않고, 없어도 이상하지 않다.

백수들 특유의 배짱과 자유로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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