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앞에 너른 공터가 있다. 도서관 옆으로는 노인복지회관이 있다. 뜨거운 날숨과 여유로운 들숨이 섞인다.
그래서 도서관은 생生으로 가득하다.
백수가 되면서 반드시 하겠다고 다짐한 '빈둥거림'이 두 개가 있다.
종일 둥굴 거리며 읽고 싶은 만큼 책을 읽고 잠에 들고를 반복하는 것이 하나.해가 떠 있는 평일 낮에 천천히 밖을 걷는 것이 다른 하나다.
이 두 가지를 모두 만족시켜주는 것이 있는데, 바로 평일 낮에 천천히 걸어 도서관에 가는 것이다.
누군가는 참 재미없는 빈둥거림이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본래 빈둥거림이란 아무것도 추구하지 않는 것, (설령 그게 재미라 할지라도)이 가장 그 본질에 가깝지 않나.
게다가 내가 사는 동네의 도서관은 얼마 전 리모델링을 마쳐, 나름 숨겨진 동네의 ‘핫-스팟’ 이다.
도서관 앞에는 너른 공원이 조성됐다.
옆으로는 노인복지회관이 자리하고 있다.
그 사이에서 도서관이 균형을 잡고 있다.
날숨
출처 : 픽사베이, @Michal Jarmoluk
작은 지방 도시라고는 해도, 도시 한가운데에서 뛰어놀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다. 그렇기에 많은 이들이 이곳에 나와 숨이 차게 생의 감각을 뽐내고 있다.
공원 가운데로는 한 번도 물이 나오는 걸 본 적이 없는 분수대 광장이 있다. 가장자리를 둘러싸며 벤치가 놓여 있고, 그 뒤로는 잔디밭이 넓게 펼쳐져 있다.
가장 안쪽의 분수대 광장에는 아이들이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면서 큰 소리로 웃거나, 혹은 운다. 뭐가 저리 서러울까, 나는 그 사이를 키득거리며 지나간다. 뒤에 펼쳐진 녹음의 잔디밭, 눈이 있나 없나 자세히 봐야만 하는 새까만 강아지, 솜뭉치같이 퐁실퐁실한 새하얀 강아지, 그리고 얼룩덜룩한, 세상에서 가장 귀엽다는 똥강아지들이 혀를 내밀고 헉헉대며 뛰어다닌다. 이곳은 견주들의 성지임과 동시에, 귀여운 게 세상을 구한다는 철학을 가진 나의 성지이다. 몇몇 어른들이 씩씩하게 팔을 위아래로 휘두르며 산책로를 따라 경보를 한다. 그 동작이 어찌나 절도 있는지 ‘척척’하는 소리가 날 것 같다.
그들의 가슴이 오르락내리락 움직이고, 그에 맞추어 가쁘게 내뱉는 날숨이 뜨겁다. 날이 더워진 탓에 땀이 흐르고 날개뼈와 겨드랑이를 중심으로 옷이 축축하게 젖어가는 게 보인다.
들숨
출처 : 픽사베이, @tank air
이 뜨거운 날숨 속, 사이사이 여유로운 들숨이 온도를 식혀주고 있다.
노인복지 회관을 이용하는 노인들이 평일의 햇살을 쐬러 삼삼오오 나온다.
휠체어를 타고 팔로 바퀴를 밀며 앞으로 천천히 나아가는 할아버지,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그 옆을 걷는 할머니, 벤치에 등을 기대어 빛의 따수운 감각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노인들. 어떤 이들은 눈을 감고 있고, 어떤 이들은 노인복지 회관 1층에 자리한 카페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테이크아웃하여 천천히 빨아들이며 담소를 나눈다.
그 사이를 지나가며 이야기를 훔쳐 들으면 대개 ‘누구네의 누구의 누구의 누가 그랬다더라-’로 이어진다. 그들의 이야기에 담긴 방대한 삶의 인물들을 듣자면, 등장인물만 몇 백 명이라는 박경리 소설 <토지>를 방불케한다.
그 모든 동작과 이야기들은 아주 느리고, 그러나 생경하다. 마치 시간의 감각을 무시한 듯이, 혹은 그 감각의 1초 1초를 소중하게 음미하듯이. 가슴이 천천히 오르락내리락 거린다. 숨을 들이쉰다.
출처 : 픽사베이, @jarmoluk
뜨거운 날숨과 여유로운 들숨의 온도 사이를 지나, 도서관에 들어선다.
리모델링을 마쳐 바닥과 벽에서는 광이 난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에는 형형색색 원색의 빈백과 작은 놀이 기구들이 도서관의 색감을 더한다. 앉아서 책을 읽을 수 있는 책상에는 최신 LED 스탠드들이 놓여있다.
마치 날숨의 감각 같다.
내 키의 곱절은 돼 보이는 책장 사이를 걷는다. 중간중간 아주 오래된 책들이 있다. 수많은 이들의 손을 거쳐 딱딱하던 책 표지조차 낡아 벨벳처럼 부드럽다. 시간을 품어 낸 내지는 누렇게 변한지 오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