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 신입 사원에서 중고 신입 백수로 2
- 중고 신입 백수 편 -
첫 신입 백수 때 찢어버렸던 백수 계약서를 뒤적여 찾아낸 후, 스카치테이프로 너덜너덜하게 이어 붙인 꼴이다.
뭐 어떤가. 코팅된 것 같고 좋다.
3년 6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적지 않은 곳을 돌아다녔다. 주위에서는 내게 역마살이 있나 보다고 했다.
두 번의 이직과 세 번의 취직.
즉, 세 번의 신입 생활과 두 번의 중고 신입 생활을 겪었다.
그러나 내게 더 큰 의미를 준 것은 그 사이에 존재한 간격의 시간들이었다. 중고 신입 사원이 된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중고 신입 백수 경력을 쌓는 것이었다.
첫 신입 백수.
첫 직장을 나온 후 6개월 정도의 중고 신입 백수.
마지막 회사를 퇴사하고 난 지금의 배짱이 백수.
출처 : 픽사베이, @mozlase
첫 신입 백수 시절은 공무원 공부를 하는 일명 '취준생'의 탈을 쓴 백수였는데, 탈을 썼다고 말한 이유는 사실상 제대로 취업 공부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주제이면서도 눈치는 또 많이 봤다. 특히 공무원 시험은 수능 다음으로 전 국민이 주목하는 시험이 아닌가. 함께 저녁 식사를 하다 뉴스를 틀면 ‘공무원 시험 경쟁률/합격률/난이도’ 등이 기습적으로 등장하곤 했다. 기습작전에 당한 가정의 저녁 밥상 분위기는 숙연해졌다.
미디어는 종종 취준생을, 특히 공시생을 사회 시스템이 낳은 피해자적인 존재로 그리다가도 한순간에 '초단기간 최연소 합격자'를 영웅적 존재로 치켜세우기도 했다. 가엾은 이 시대의 청년이라는 시선에 스스로에 대한 동정심과, '사실은 그렇게까지 공부를 하지 않아요'라는 죄책감이 충돌했다. 그 역설적인 마음을 직면하다 보면, 늘 끝은 자책이곤 했다. 그저 뉴스에서든 온갖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든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말아 주기를 바랐다.
공시생들이 등장하는 드라마가 나올 때는 ‘아 왜! 그냥 제발 아무도 관심 갖지 말아 주시겠어요? 예?’하고 기획자에게 원망을 쏟고 싶을 정도였다.
이 신입 백수 계약 기간은 계속된 불합격에 연장-재연장- 되다가, 다른 진로를 선택하며 간신히 만료되었다.
피해자인지 죄인인지 모를 정체성으로 살던 첫 백수 시절은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기간이었다. 그래서 몇 년 후 어떻게 될지, 한 치 앞을 모르던 신입 백수는 패기 넘치게 '백수 계약서'를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그동안 반갑지 않았고, 다시는 보지 맙시다!"
출처 : 픽사베이, @congerdesign
....... 패기 넘치게 계약서를 찢어버린 백수는 중고 신입 백수가 되었다.
(한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계약서는 기간 만료가 되어도 잘 보관하고 있도록 하자.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오랜 격언을 기억하자.)
첫 중고 신입 백수도 아니고 두 번째 중고 신입 백수라니, 백수 시장에서조차 혀를 찰 중고 중에 중고다.
하지만 중고는 역시 ‘어쩌라고’의 배짱이 두둑한 법. 왜, 백수는 백수‘건달’의 줄임말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배짱이 두둑한 건들거리는 배짱이가 되었다고나 할까.
이전 백수 시절들은 비자발적으로 부여받은 직위였다.
비자발성에서 나온 조금함은 삶의 방향을 왜곡했다. 내 눈을 살필 겨를이 없으니 당장 내 앞에 있는 남의 눈동자에 비친 세상을 보고 내 삶을 그렸다. 그 미래를 향해 달리느라 다른 길이 있다는 것을 찾아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무언가를 ‘하고 싶다’라는 마음보다는 '이렇게 될 수는 없어'라는 간절함이 매일을 채웠다.
아득했다.
이번 중고 신입 백수는 자발적으로 선택한 직위다.
다른 삶을 살아보고 싶다는 의지이기도 하고, 어떻게든 먹고살 수 있다는 믿음이기도 하며, 혹시라도 어려워진다면 그때 다시 돌아가든 단기 아르바이트를 하든 어떻게든 나를 책임질 수 있다는 '배짱'이기도 하다.
물론 이 역시 아득하긴 하지만.
이런 의미에서 중고 신입 사원과 중고 신입 백수는 점점 남의 눈치를 덜 본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아주 정반대의 면모가 있는데, 무감각의 끝으로 내달리던 중고 신입 사원때와는 달리 중고 신입 백수가 된 지금은 감각 구석구석이 살아있음을 느낀다.
회사 모니터 혹은, 집에서 누워 보던 핸드폰의 전자파 외에는 느껴지지 않던 빈둥거림의 감각은 생生의 감각이라기보다는 사死 의 감각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디지털 환경에서 성장했다는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도 아닌 나이인데, 신체 자체가 디지털화된 듯한 물리적 디지털 네이티브랄까.
중고 신입 백수가 된 지금은 디지털의 전자파 감각에서 벗어나려고 노력중이다.
제철 나물로 요리를 해서 쌉싸름하고 고소한 봄의 향기를 느끼며 거친 줄기를 꼭꼭 씹고 싶다. 탄 향에 산미가 은은하게 섞인 커피를 내려 두고 책을 읽으며 필사를 하고 싶다. 종이를 넘기는 감촉을 손 끝으로 느끼면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싶다.
내 시간을 내가 살고 싶다.
살고 싶다.
출처 : 픽사베이, @VinzentWeinbeer
처음 직장을 그만둘까 고민할 때, 존경하던 회사 선배가 해주었던 말이 있다.
“단순히 하기 싫어서 나가는 거면 말리고 싶고, 하고 싶은 게 있다면 무조건 나가요.”
이제야 그 말의 의미를 조금은 알 것 같다.
무서움에 쫓겨 나오면 결국 두려움에 다시 돌아가게 된다. 하고 싶은 게 있어서 나갔을 때에서야 비로소 내가 하고 싶은 것으로 살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긴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명확하다.
내 시간을 감각하며 나로 살고 싶다는 것.
이는 단순히 백수의 시간에서 나온 배짱이 아닐 것이다. 때려치움의 경험이 만든 '그만둬도 생각보다 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확신이며, 역설적이게도 중고 신입 사원의 경력을 통해 얻은 다르게 '살고 싶다'는 본능이다.
물론 앞으로 자주 흔들리기도 할 테고 눈치가 스멀스멀 올라올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확실한 것은 첫 신입 백수일 때보다 그리고 첫 중고 백수 일 때보다 빠른 회복 탄력성을 갖게 됐다는 점이며, 흔들림의 끝에서 스스로에게 칼을 겨누기보다는 중고 신입 사원처럼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어쩌라고."
나는 첫 신입 백수 때 찢어버렸던 백수 계약서를 뒤적여 찾아낸 후, 스카치테이프로 너덜너덜하게 이어 붙인 꼴이다.
뭐 어떤가. 코팅된 것 같고 좋다.
반듯한 종이에서 나온 빳빳한 일(事 사)이 가져다주는 무감각(死 사)의 감촉보다, 우글우글한 재활용지에서 나온 놂(遊 유)의 감각이 전해주는 살아있는(生 생)의 감촉이 더 좋다.
이왕 역마살이 낀 운명이라면 '신입 중고 사원'보다 '신입 중고 백수'라는 정체성으로 여기저기 돌아다녀보고 싶다.
생각보다 큰일은 일어나지 않으며, 큰일은 애초에 신입에게 맡겨지지 않는다는 점을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