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Epilog. 어, 중간의 사용라이프

삶의 맥시멀과 미니멀, 그 어중간에서 살아가기

by 어찌





황희 정승의 하인 둘이 다투었다. 첫 번째 하인이 황희 정승에게 자신의 억울함을 토로하자 황희 정승이 말하였다.

- 네 말이 맞다.

그러자 다투었던 다른 하인이 저의 억울함을 호소했고, 황희 정승은 다시 말했다.

- 네 말이 맞다.

그것을 보던 황희 정승의 부인이 "같은 일에 판단이 다르다니 왜 둘 다 맞다고 하느냐."라고 하자 황희 정승은 또 말했다.

- 부인 말도 맞소.






'와, 이런 사람이 옆에 있으면 진짜 짜증 나겠다.'


처음 이 일화를 들었을 때 그런 황희 정승의 태도가 못마땅하였다. 그런 애매모호하고 어중간한 태도는 그저 비겁한 회피에 불과한 거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점점 알게 되었다. 나야말로 그 어중간이 중에서도 어중간한 인간이라는 걸. 그런데 정말로 살다 보면 이것도 저것도 맞는 말이고, 이것도 저것도 명확한 답이 아닐 때가 많지 않나?... 아닌가? 이것도 어중간해서 답을 내리지 못하는 건가?

또 이런 식이다. 나는 자주 이렇게도 저렇게도 확실하게 살아내지 못하곤 한다.



- 공무원 시험에 연달아 불합격하며 시험공부를 때려치웠지만, '공'이 붙은 직업을 포기하지 못하고 중간 지대의 공기관에 입사하였다.


- 사람이 싫다고 외치면서도 시골살이를 택하진 못하고 어중간하게 적당히 사람 있는 (그리고 적당히 없는) 도시에서 산다.


- 정년 보장이 되는 직장을 때려치우곤 완벽하게 프리랜서를 준비한다거나, 완전한 백수로 살지도 못하고 어중간하게 계약직으로 새로운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 글이 쓰고 싶은데 낙서도 하고 싶어서 둘 다 어중간하게 섞는다. (이 책도 그 결과물인 셈이다.)


- 물건이 가득 찬 공간은 답답한데, 또 버리지는 못한다. 적당히 사용하며 산다.


- 삶을 맥시멀 하게 채우지도 미니멀하게 비우지도 못한 채, 어중간하게 산다.



그래서 어떤가 하면, 매번 어중간하게 살 때가 가장 편안하다. 극단적으로 치열하면 나가떨어지고, 한없이 여유롭게 지내자니 조급증이 올라와 금세 불안해지고 마는데, 중간에서는 그럭저럭 만족에 수렴한다.

누가 들으면 마치 내가 과거 황희 정승을 보던 때처럼 불쑥 짜증이 나고 '어쩌라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쪽 이야기를 들으면 그 말이 맞고, 다른 쪽 이야기를 들으면 또 그 말이 맞다는 건 어떤 중간 이야기를 듣느냐에 따라 그 말이 맞지 않기도 하다는 뜻이다. '기'와 '결'만으로는 이야기의 진실을 알 수 없다. 어떤 삶의 방식이 맞는지는 어떤 중간 이야기를 쓰느냐에 달려있다. 그리고 그 중간 이야기는 황희 정승의 하인들처럼 각자가 다르게 쓰기 때문에, 나만이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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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득 채운 맥시멀의 삶이 맞는지, 가볍게 비운 미니멀의 삶이 맞는지 나는 결정 내리지 못했다. 둘 다 맞고, 둘 다 내게는 맞지 않는 이야기다. 두 극단에서 떨어져 나간 나는 어중간한 틈새에서 하나씩 사용해 가는 사용 생활자가 되어 지낸다.

어쩌겠나. 역시 어중간한 인간은 어중간하게 살 때가 가장 행복한 법인걸.


아직 이 이야기의 끝이 어떻게 날지는 모르지만, 어차피 사용할 이미 내가 가지고 있는 물건은 차고 넘치니까 결말을 고민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어쩔 수 없이 사게 될 앞으로의 물건까지 가늠해 보면 아마 평생토록 어중간하게 이리저리 흔들리며, 나름의 이야기를 잘 채워갈 수 있을 거라 믿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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