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찌 Sep 21. 2024

Prolog. 경계구역 서른셋

내가 서른셋이라고?








 어린 시절, 우리는 아날로그 세상을 살았다. 물론 컴퓨터는 있었지만, 네모난 디스크를 넣고 다 깨진 그래픽의 포켓몬스터 게임이라던가, 단순한 마리오 게임을 하곤 했다. 학교에서 칠판지우개의 분필 가루를 창가 벽에 대고 팡팡 두드려 털었다. 반마다 창가의 벽돌은 붉은색이 아니라 흰색 분필로 얼룩져 있었다. SNS는 감성 가득한 싸이월드가 전부였다.


 그러다 대학생 때 스마트폰이 나왔고, 페이스북이 떠오르더니 어느 순간 인스타가, 유튜브가, 틱톡이 마구 쏟아지는 시기를 어른이 되어 겪었다. 학창 시절에 규칙과 암기를 중요하게 여기던 사회에서 취업시장에 나오려니 갑자기 창조적 혁신적 인재를 외치는 시장으로 바뀌어 있었다. 코딩이 중요하다더니 고작 1~2년 사이에 이제는 AI 툴을 다룰 줄 알아야 한다고 한다.

 


 어린 시절은 아날로그, 조금 커서는 디지털.

 태어날 때부터 스마트폰과 각종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며 자란 세대는 아니다. 그렇다고 기성세대라기엔 제대로 내 먹거리 하나 자리 잡지 못했다.

 완전한 사회 초년생은 아니고, 그렇다고 경력자라고 말하자니 너무나 쌓아진 능력치가 없다.

 이전처럼 형제자매가 많지도 않고, 요즘의 저출산 정도는 아니라 2명의 형제자매가 보통인 인구수. 

    

 경계구역의 세대. 일명 끼인 세대.







 서른이 넘으며, 친구들과 나는 10대 때와 20대 때보다 더욱 정체성과 진로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그렇게 서른 초반의 31, 32를 지나 더욱 어중간한 33살이 되었다.

 잊고 살다가 ‘네가 몇 살이지?’라는 질문에 ‘2024–1992…+1…’로 일의 자리를 가늠해 서른셋이라고 대답하고는, 문득 깜짝 놀라곤 한다. 어쩐지 조금 징그럽게 여겨지기도 하고.

 내가 서른셋이라고? (난 아직 하나도 철이 안 들었는데!)     


 전에는 이도 저도 아닌 모습이 참 별로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요즘은 이 어중간함이 오히려 좋다. 어쩌면 경계구역도 하나의 구역이고, 그것도 한 정체성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게다가 경계구역은 다른 말로 하면 교통의 요지 아닌가. 어릴 때는 아날로그 세상을 살아 보았고, 지금은 디지털과 AI의 시대를 (헐레벌떡) 살아볼 수 있으니 손해는 아닌 셈이다.



 친구들과 나는, 서른셋의 우리는 양 끝에 발을 걸치고 각자의 방식으로 경계구역을 넘어가고 있다. 이 안에서 혼란스럽기도 하고, 이따금 경계구역에 자리 잡고 쉬기도 하면서. 앞으로 넘어갈 구역이 어디로 갈지는 모른다. 아마 각자 다르겠지.

 뭐가 됐든 어디가 됐든, 어찌어찌 어딘가에 닿아있을 것이다.

 그러니 이 ‘경계구역 서른셋’은 서른셋의 모든 이들을 규정한다기보다는, 개인적인, 그리고 내 주변의 서른셋 ‘우리’의 어중간한 이야기일 뿐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