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의 구박에 움찔했다. 평소라면 아픈 사람 서럽게 왜 그러냐고 억울해했겠지만, 최근 내 몸뚱이는 좀 심하긴 했다. 풀이 죽은 나를 보고, 부모님은 쯧- 소리를 내며 고개를 저었다.
2월부터 계속 하루건너 아프다며 반년을 골골댔으니, 부모님 입장에서도 안타까움과 지겨움이 동시에 들 것이다. 부모님도 그런데, 주변 사람들이 보기엔 오죽할까. 더 이상 ‘나 아파요.’라고 말하기도 민망해 그저 삼키고 만다. 뒤에서 조용히 약을 먹고, 한의원을 다니고, 위내시경과 엑스레이와 초음파 검사를 한다.
그도 그럴 게, 서른셋 짜리가 40대, 50대 앞에서 계속 골골대면 조금 우스워 보이지 않나. 큰 질병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만성이라는 아픔의 종류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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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는 종종 20대와 함께 묶인다. MZ세대라는 명칭부터, ‘요즘 이삼십 대들은-’ 따위의 ‘이삼십 대’로 묶여 ‘청춘’의 대표적 나이대로 통칭되곤 한다. 그래서인지 30대로서 큰 질병이나 부상이 아니라면, 아픔을 드러낼 때 조금 머쓱해지곤 한다.
그래도 변명을 하자면, 역시 조금 억울하다. 꾀병이 아니라, 정말 많이 아프다. 서 있고 앉아 있을 때도 식은땀이 줄줄 났고, 하루 종일 배가 걸래 짜듯이 뒤틀렸다.
서른셋의 ‘청춘’에 골골대는 건 나뿐만이 아니다.
나는 전 직장에서 매일 야근을 하고 돌아와 11시에 밥을 먹고 잠들고를 반복하다 만성 위염에 걸렸다. 다른 사무직 친구는 허리 디스크 때문에 새벽마다 동네 한의원에 다닌다. 어떤 친구는 눈이 심하게 안 좋아져서 컴퓨터를 덜 볼 수 있게 아예 전공 직종을 바꾸어야 했다.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해 7년 동안 근무하던 친구는 마음의 병을 얻어 퇴사한 후 병원에 다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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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이가 들어가는 걸 부정적으로만 보지 않고, 무언가 새로운 걸 시작하는 데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는 의식이 퍼지면서 다양한 중년과 노년의 삶들이 조명받고 있다. 나 역시 나이에 상관없이 그렇게 다양한 삶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되는 걸 적극 지지한다. 활력을 잃지 않은 모습은 반할 정도로 멋있으니까.
그런데, 일과 경험, 배움에서는 나이가 들어도 점점 젊어지는 데에 비해, 역설적으로 신체는 더욱 빠르게 노화하는 것 같다. 삼십 대이지만, 어쩐지 예전 사오십 대의 그것에 가깝다고 느낀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 앉아서 운동량은 없다든가, 핸드폰을 너무 많이 한다든가, 가공식품을 너무 많이 먹는다든가. 탄수화물 중독이라거나, 미세먼지 때문이라거나. 요즘 ‘저속 노화’가 유행하는 게 괜한 이유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바쁜 출근길과 녹초가 되어 돌아온 퇴근길의 끝에서 삼시세끼 제철 자연 식재료로 끼니를 챙기는 건 큰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하루 종일 사무실에 앉아 컴퓨터를 보고, 마우스를 클릭하다 손가락 관절 염증이 오는 것도 피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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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어서고 앉을 때마다 곡소리가 나면 늙은 거래.
한창 건강 이야기를 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에구구.’, ‘아이고 가야지.’, ‘어잇차…’ 소리를 내다 누군가 자조적으로 한 농담에 웃고 말았다.
- 다들 참 왜 이렇게 아프냐.
키득거리다가, 어휴 야, 그래, 이렇게라도 웃어야지. 그래도 다들 아프지 말자. 웅? 아직 우리는 ‘이삼십 대’ 청춘이어야 하니까, 수명은 지독히 연장되어 100세 시대라니까. 아니야 우리 때는 120세 시대래. 그러니까 오늘은 정말 꼭 운동하자면서, 헤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