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를 지치게 해
첫 취업을 하고, 스스로 밥벌이를 한다.
각종 공과금과 4대 보험, 세금을 내기 시작하고, 100세 시대라는 노후 준비를 위해 차곡차곡 (작디작은) 적금도 꾸준히 넣고 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니, 확실히 10대와 20대와 달리 주변의 압박감은 덜 해지기 시작한다. 물론, 아주 사라졌다는 것은 아니지만, 스스로 책임을 질 수 있게 되니 그런 말들에 타격감도 별로 받지 않게 되었달까. 스스로 밥벌이를 한다는 것은 나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가장 큰 방어 구역을 설정해 준다.
오히려 불안해하고 있으면, 주변에서는 '괜찮아.' '너 정도면 아주 잘하고 있지.' '야, 매일 출근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거야.'라고 위안을 건넨다. 나 역시 다른 사람이 불안을 호소할 때면 비슷하게 말한다. '잘하고 있어.'라고.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기도 하고.
지금처럼만 하면 된다.
차곡차곡 적금을 넣고, 노후를 준비하고. 적당히 가끔 여행도 다니고, 카페에 가서 커피 향 묻은 종이책을 읽고, 치즈와 크래커를 먹으며 행복해할 수 있다. 종종 공부도 하고, 자격증도 따고, 뉴스도 들으면서 자기 성취나 보람도 느낄 수 있다.
머리로는 알고 있다.
이대로만 하면, 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하던 대로 매일을 또 하던 대로만 하면 되는데.
아침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고, 집에 돌아와 깜깜한 방 안에 누워 제대로 보이지 않는 천장 무늬를 바라보고 있자면 슬금 이런 생각이 나를 붙잡는다.
'정말로?'
그 생각을 시작으로 알 수 없는 불안함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아니. 아니야. 뭔가 잘 못 됐다는 느낌이야. 이렇게 살고 싶은 거 맞아? 모르겠어. 근데 나 나름 열심히 살고 있는데. 그러면 뭐 해, 나아지는 게 없잖아. 이대로 살면 그냥 이렇게 살 수 있을 뿐이야. 근데 그게 나쁜가. 아니야. 아니란 건 아는데, 뭔가 이렇게 살고 싶진 않아.'
그 끝은 반쯤의 불안함과, 반쯤의 포기로 점철되다 잠이 든다.
'하지만 정말로 언제까지 더 노력해야 해?'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다들 '괜찮다.' '잘하고 있다'라고 말해준다.
나를 가장 지치게 하는 건, 타인의 말이 아닌 나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