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 신입 사원에서 중고 신입 백수로 1
- 중고 신입 사원 편 -
세상에 쓸모없는 경험은 없다고 하던가.
매도 맞아 본 놈이 잘 맞고, 외국어도 많이 해본 놈이 말을 잘하는 법이다. 이 진리를 백수에게도 적용해 보자면, 백수도 해본 놈이 건강한 마음가짐으로 빈둥거린다. 호기롭게 백수의 재정의 까지 내리며 새로운 삶을 꿈꾸지만 처음부터 이렇지는 못했다.
그렇다. 나는 백수가 처음이 아니다. 중고 신입 회사원이 아닌 중고 신입 백수라고나 할까.
세 번의 직장 생활을 했다. 두 번은 중고 신입사원이었던 셈이다.
중고 신입. 사람에게 ‘중고’를 붙인 이 단어는 어딘가 비하적인 느낌이 들지만, 한편으로는 해학의 유머가 느껴지기도 한다. ‘어떻게 사람에게 중고라고 할 수가 있어?’라고 타박하면 ‘어쩌라고’하며 삐딱하게 대답할 것만 같은 단어랄까.
단어를 닮아 중고 신입은 특유의 ‘어쩌라고’가 있다.
나쁜 말로 하면 푸릇푸릇함이 없고, 좋은 말로 하면 능수능란하다. 업무적으로 능수능란하다는 의미도 있겠으나, 이미 경험해 본 자가 가질 수 있는 특유의 배짱이 있다는 말이다.
나 역시 그랬다. 원래도 남의 눈치를 많이 보는 성정이기에 첫 직장 생활 당시 작은 실수 하나에도 몇 날 며칠을 자책했다. 뭐 하나를 물어보려고 해도 망설임의 이유가 줄줄이 따라왔다.
‘신입이 물어볼 때는 적어도 혼자 시도는 해보고 물어봐야 한다던데.’, ‘전에도 비슷한 거 물어봤는데 또 물어보면 일머리 없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지금 엄청 바빠 보이시는데 귀찮아하면 어쩌지.’
작은 일들이 태산같이 커 보이던 시절이었다. 마치 그 작은 일 하나가 내 업무 능력 전부를 규정지어 버릴 것 같았고, 남들에게 그렇게 규정당하면 무시무시한 일들이 벌어질 것만 같았다.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회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법한 무시무시한 일은 애초에 신입에게 맡겨지지 않는다.
두 번째 직장에 들어갈 때는 업무에 대한 걱정보다는 사람에 대한 걱정이 많았다. 일이야 배우면 되는 거고 어떻게든 되겠지만, 다른 조직 문화는 겪어본 적이 없었다. 어떤 무언의 규칙이 있을지, 함께 일할 동료들은 어떤 성향일지,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이전대로 하면 될지... 따위를 걱정했다.
막상 해 보니 어땠냐고 묻는다면,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또 좋지 않은 사람들도 만났다. 즐거운 조직 문화도 있었고, 웃기는 조직 문화도 있었고, 무서운 조직 문화도 있었다.
그래 마치 첫 직장과 같이.
세 번째 입사. 경력자를 뽑은 것은 아니기에 역시나 중고 신입 사원이었다.
긴장은 됐으나, 이전만큼 걱정은 되지 않았다. 특히 큰 변화는 내 잘못에 관대해졌다는 것인데, 며칠을 자책하던 첫 신입 때와 달리 정신승리를 빠른 시간 내에 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 일은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다는 경험이 쌓였기 때문이리라.
회복 탄력성의 프로세스는 다음과 같다.
내 실수를 발견한다.
① ‘아!’ 깨달음의 시간
② ‘아...’ 짧은 자책의 시간
③ ‘아, 어쩔 수 없지.’ 수용의 시간
자기 비하는 월급마냥 가볍게 양심을 스쳐 지나가고, 한 술 더 떠서 ‘그걸 결재한 팀장이랑 부장도 책임이 있는 거 아니야?’라는 물귀신 작전을 펼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생각한다.
‘어쩌라고.’
물론 이때까지만 해도 알지 못했다.
착실히 쌓던 중고 신입 사원의 경력은 이제 그만둘 때가 됐다고 막연히 생각했으나, 그것은 한 직장에 오래오래 다니며 경력 사원이 된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제 길조차 한 치 앞을 모르던 중고 신입 사원은 중고 신입 백수라는 새로운 분야로 전업해버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