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 두렵다. 슬픔에 허덕이는 시간이 고통스러운 것을 알기에 그렇다. 슬픔의 잔상이 오래 남기도 한다는 것을 알기에 더욱 그렇다. 슬픔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안간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경험하였기에두렵다. 이번에는 그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두렵다.
슬픔이 늪이라면, 기쁨은 산 정상이다. 기쁨은 순간이다. 힘들게 노력하여 얻은 성취와 만족에서 오는 것이 기쁨인데, 기쁨을 느낀 순간부터는 내려오는 일만 남는다. 그렇기에 중요한 건 기쁨에 도취하지 않는 것이다. 정상에서 내려왔는데 정상에 있다고 착각하지 않는 것이다. 이상에 빠져 사는 사람은 현실을 제대로 자각할 수 없으니까.
다행스럽게도 대부분의 어린이는 슬프면 슬프다고, 아프면 아프다고 운다. 가끔은 슬프고 아프기전에 울기도 한다. 그만큼 감정과 가깝다는 뜻이겠다. 게다가 세상이 기쁜 일 가득이다. 항상 웃는다. 학교 쉬는 시간 복도에는 웃는 얼굴 가득이다. 어린이는 눈물과 웃음을 숨기거나 피하지 않는다. 느끼는 대로 표현한다.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오른다.어린이들이 슬픔의 잔인함과 기쁨의 허망함을 알면 어떻게 될까. 느껴지는 대로 느끼는 어린이가 기뻐의 비밀을 알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적어도 기쁨을 두려워하는 어른이 되는 것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기쁨을 온전히 느끼고 건강하게 표현하는 어른으로 자라도록 도울 수 있지 않을까.
나도 기뻐의 비밀을 알고 있었더라면, 지금처럼 겁쟁이로 지내고 있지는 않았을 텐데. 기쁘다고 너무 뻐기다가 고무줄처럼 끊어먹고 엉엉 울고 있지 않았을텐데.
기뻐의 비밀
이안
내가 기뻐의 비밀을 말해 줄까?
기뻐 안에는
이뻐가 들어 있다
잘 봐
왼손으로 '기', 오른손으로 '뻐'를 잡고
쭈욱 늘리는 거야
고무줄처럼 말이야
기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뻐
어때, 진짜지?
기쁘다고 너무 뻐기다가
기뻐를 끊어 먹지 않도록 조심해
너도 알다시피,
길다고 꼭 좋은 것만은 아니이잖아?
기뻐가 끊어질 땐 무지 따끔해
어쩔 땐 찔끔 눈물이이 나아
작가 소개 (이안)
1998년 『녹색평론』에 「성난 발자국」 외 두 편의 시를 발표하고, 1999년 『실천문학』신인상에 「우주적 비관주의자의 몽상」 외 네 편이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시집 『목마른 우물의 날들』『치워라, 꽃!』을 썼습니다. 동시 평론집 『다 같이 돌자 동시 한 바퀴』를 냈으며, 이 책은 『고양이와 통한 날』『고양이의 탄생』『글자동물원』『오리 돌멩이 오리』에 이은 다섯 번째 동시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