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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 Feb 09. 2023

어쩌면 나도 저녁별

송찬호의 동시 <저녁별>

 나는 어릴 때부터 혼자 이상한 질문에 답을 내리는 것을 좋아했다. 책을 찾아보거나, 어른에게 물어보지 않았다. 아무도 생각하지 않을 질문 같기도 했고, 다른 의견으로 답을 찾는 것보다 내가 나를 설득하는 과정 자체가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해결되지 않은 질문은 여전히 내 마음속에 물음표로 남아있다. 그 이상하고도 오래된 물음표 중 하나는 '언제부터가 저녁이지?'이다.

 저녁의 시작이 왜 궁금할까. 그걸 알면 뭐가 달라질까. 알기 전에는 모른다. 답을 찾아야 무엇이 달라지는지 알 수 있다. 그래서 도대체 저녁은 언제부터 시작인가? 저녁은 해가 지는 무렵부터 밤이 시작되기까지다. 그러니 시작은 '해가 지는 무렵'이다. 바다가 있는 동네에 살고 있다면 수평선에 해가 넘어가는 시간을 '해가 지는 무렵'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아파트로 둘러싸인 우리 동네에서는 해가 언제 지는지 알 수가 없다. 바다와 가깝지 않은 나에게 '해가 지는 무렵'은 참 모호한 말이다.

 저녁이 시작되는 시점, 해가 지는 무렵에 대한 답을 찾지 못했다. 그러나 송찬호의 <저녁별>을 읽고 알았다. 해가 수평선에 닿았을 때부터를 해가 진다고 할지, 아파트 너머로 해가 넘어갔을 때부터 해가 진다고 할지, 그런 것들은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해가 지는 것을 따지기 전에 먼저 살펴봐야 하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서쪽 하늘에

저녁 일찍

별 하나 떴다


깜깜한 저녁이

어떻게 오나 보려고

집집마다 불이

어떻게 켜지나 보려고


자기가 저녁별인지도 모르고

저녁이 어떻게 오려나 보려고


-<저녁별> 전문


 "저녁 일찍/ 별 하나 떴다".  그 별은 "깜깜한 저녁이/ 어떻게 오나 보려고" 한다. 저녁이라고 다 같은 저녁이 아닌 것이다. 낮에 가까운 저녁은 환한 저녁이고 밤에 가까운 저녁은 "깜깜한 저녁"이다. 저 별은 깜깜한 저녁이 어떻게 오는지 궁금하다. "집집마다 불이/ 어떻게 켜지"는 지 궁금하다. 이제까지 "깜깜한 저녁"에만 나와서 불 켜져 있는 집들만 본 것이다.

 저녁별은 다양한 저녁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 같다. 환한 저녁, 어둑한 저녁, 깜깜한 저녁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나 보다. 환한 저녁에 나온 별도 저녁별, 어둑한 저녁에 나온 별도 저녁별, 깜깜한 저녁에 나온 별도 저녁별인데, 깜깜한 저녁만 저녁이라고 생각했나 보다. 그러니 "자기가 저녁별인지도 모르고/ 저녁이 어떻게 오려나 보려고" 할 수밖에 없었겠다.

 저녁별이 몰랐던  별이 떠있으면 저녁이라는 사실이다. 저녁별은 자신이 바로 저녁을 만드는 존재라는 사실을 몰랐다. 내가 있는 곳이 저녁이고, 내가 바로 저녁을 시작하는 존재인데, 저녁의 모습을 밖에서만 찾으려고 했다.

 나도 어쩌면 저녁별일지도 모르겠다. 아직 오지 않은 그 무엇을 기다리고 있지만, 어쩌면 나는 이미 도착해있는 지도 모르겠다. 그 무엇은 나의 존재만으로 벌써 시작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시선을 바깥에 고정하지 않기로 하자. 객관적인 지표보다 중요한 건 내가 누구인지 아는 것, 나의 가치를 아는 것, 내가 있음으로 해서 세상이 어떻게 바뀌는지 아는 것이다. 그러니 주위를 둘러보기 전에 나를 먼저 살펴보자. 저녁은 해가 지면서 오는 것이 아니었다. 저녁이 언제 오는지 기다리는 그 순간부터 저녁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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