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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 Jul 22. 2023

홀로 긴긴밤을 견디는 우리에게 건네는 위로

루리의 소설『긴긴밤』(문학동네, 2021)을 읽고

  『긴긴밤』은 산산조각 난 삶을 산산조각 난 채로 살아가는 이야기다. 아니, 살아내는 이야기다. 송수연 평론가의 정의에 보태어, 부서지고 절망하는, 절망 속에서 다시 한번 절망하는 삶을 살아내는 늙은 코뿔소 노든과 어린 펭귄의 “로드무비”라고 할 수 있다. 노든의 삶은 절망의 연속이지만, 그 삶을 살아낸다. 그 의지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노든의 첫 기억은 코끼리 고아원이다. 그 속에서 노든은 유일한 코뿔소이다. 그러나 긴 코 대신 딱딱한 뿔은 전혀 문제가 아니다. 코끼리들에게 다름은 차별의 근거가 아니라 연대의 이유이기 때문에. ‘나와 다르니 우리는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은 그들에게 순리다. 사소한 다름으로 수많은 차별을 자행하는 인간과 달리, 마땅히 순리를 따르는 코끼리들 속에서 노든은 안정된 삶을 살 수 있다. 그러나 노든은 코끼리 가족을 떠나 혼자가 되기로 결심한다. 소속감과 안도감을 뒤로 하고, 노든은 새로운 모험을 시작한다.

 우리의 삶이 그러하듯, 노든의 삶은 만남과 이별의 연쇄 작용이다. 그러나 노든이 마주한 이별은 너무나 가혹하다. 아내와 아이가 총에 맞아 죽고, 동물원 친구 앙가부도 뿔 사냥꾼에 의해 죽는다. 노든은 유일한 흰바위코뿔소가 된다. 코끼리들도, 아내와 아이도, 앙가부도 없는 세상에서 노든은 철저하게 혼자로 남는다.

 우리는 정서적 관계에서 비롯되는 소속감과 그 안에서 느끼는 안도감으로 안전감을 얻는다. 그리고 그 힘으로 삶을 살아낸다. 그러니 홀로된 노든이 치쿠를 만나지 못했다면 오래 살지 못했을 것이다. 치쿠도 마찬가지다. 노든과 치쿠는 서로에게 소속되어 검은 반점이 있는 알을 가지고 바다를 향해 앞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그러나 노든과 치쿠는 결국 바다에 닿지 못한다. 사막을 건너며 기력을 다한 치쿠는 마지막까지 알을 품다 끝내 일어나지 못한다. 알에서 태어난 어린 펭귄과 함께 바다를 향하던 늙은 코뿔소 노든도 도중에 주저앉고 만다. 대신 어린 펭귄이 사막을 건너고 언덕을 넘어 끝끝내 바다를 발견한다. 그리고 어린 펭귄은 절벽에 올라 바다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한다.     

 “나는 절벽 위에서 한참 동안 파란 세상을 내려다보았다. 바다는 너무나 거대했지만, 우리는 너무나 작았다. 바다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름다웠지만, 우리는 엉망진창이었다.”     

 거대한 바다 앞에서 우리는 너무나 사소한 존재가 되어버린다. 우리의 삶은 너무 작고 사소하여, 한 번의 파도에도 쉽게 무너지고 부서질 수 있다. 노든은 몇 번의 파도와 마주했다. 아내와 아이의 죽음, 앙가부의 죽음, 치쿠의 죽음. 노든의 삶은 부서지고 또 부서졌다. 그러나 노든은 끝끝내 살아냈다. 삶을 살아내는 힘은 관계의 안정감이 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무너진 노든을 일으켜 세운 것은 결국 새로운 관계와 소속감이었으니까.

 우리는 관계의 동심원 안에 산다. 배우자, 가족, 친구, 집단, 국가 등의 동심원 안에서 우리는 우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여기 우리는 관계의 소속감과 안정감을 누리며 살고 있는가?

 결혼과 출산율은 점차 떨어지고, 각 세대에 이름을 붙여 확실한 구분선을 긋고 있다. 또한,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모니터를 통해 소통하는 일이 익숙해졌고, 많은 일을 온라인으로 해결할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 지금-여기 사람들은 피상적이고 형식적인 관계가 당연한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관계와 연결, 연대의 이야기에 호응하는 현상은 그것에 대한 갈증 방증 아닐까? 우리는 타인과 좀 더 긴밀한 연결과 단단한 연대를 바라고 있는 건 아닐까. 그래서 관계와 연대의 힘으로 살아내는 노든의 이야기에 감동 받고 공감하는 것은 아닐까.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긴긴밤』은 분명한 위로의 이야기이다. 연결과 연대가 살아가는 힘이 된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위로의 메시지다. 부서지고, 무너지고, 절망하고, 좌절하는 수많은 긴긴밤을 홀로 보내고 있는 우리에게 희망을 주는 위로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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