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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 Nov 20. 2023

오래된 질문을 지금의 언어로

우리의 정원(김지현, 사계절, 2022)

 주인공 정원이는 열일곱 여고생이다. 에이세븐이라는 아이돌을 덕질 중인데, 핫한 그룹은 아니다. 그래서 친구들과 가족들 몰래 좋아하고 있다. '달이'는 유일하게 에이세븐에 대한 이야기를 편하게 할 수 있는 SNS 친구다.

 에이세븐의 리더인 'S'는 독서를 좋아하는데, S가 읽는 책을 따라 읽는 일이 정원이의 덕질 방법 중 하나다. 여느 때와 같이 S가 읽는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 읽고 있는데, 책에 꽂힌 쪽지를 발견한다. 독서 모임 초대장이다. 모임의 친구들은 여레, 나현, 지은이며, 그들은 모두 에이세븐의 팬이다. 도서관 봉사를 하는 지은이 S의 독서를 따라가는 정원이를 알고, 모임에 초대한 것이다. 덕질을 하는 공통 분모로 그들은 쉽게 친해질 수 있었다. 그러나 정원이 마음 한 켠에는, 언젠가 친구들이 에이세븐 좋아하는 일을 그만 두면, 혼자 남을 수 있겠다는 걱정을 품고 있기도 한다.

 이 점이 소설의 특별한 지점이자,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다소간 관계의 종말에서 오는 불안감을 안고 살아간다. 타인과의 관계를 욕망하고 추구하는 이유는 관계의 동심원 속에 속해있을 때 안정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심원이 무너졌을 때, 홀로 남게 되는 두려움을 품고 살아가게 된다. 또래 간의 정서적 유대 관계에 민감한 청소년 시기에는 두려움이 더욱 크게 느껴지기도 한다.

 소설의 중심이자 바탕은 친구 간 관계이다. 그 속에서 작가는 관계에서 오는 불안, 두려움을 놓치지 않았고, 이를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물론, 그것이 소설을 추동하는 주된 감정은 아니다. 그것을 극복하는 이야기는 더욱 아니다. 그러나 주인공 정원이와 주변 인물인 여레, 나현, 지은이의 우정은 정원이의 걱정과 우려로부터 시작되었기에 더욱 현실적이다. 고민이 해결되는 극적인 사건이나 반전이 없지만, 그렇기 때문에 소설이 더욱 우리 현실과 가깝다. 사소한 계기로 시작하고, 처음에는 경계하고 거리를 두지만, 알지 못했던 서로의 모습을 발견할 수록 더 가까워지고 결국 온전히 마음을 주는 것이 우리가 관계 맺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독특한 설정, 특별한 사건, 놀라운 반전은 이 소설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청소년들이 겪는 보편적인 고민을 말하는 방식에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친구 관계를 고민하는 청소년을 다룬 소설은 많이 쓰였다. 하지만, 이를 낡은 문제로, 지나간 담론으로 치부하고 외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래된 문제를 지금-현재의 언어로 바꾸어내는 일이 청소년의 지금을 함께하는 작가들이 해야할 일이 아닐까. 오래된 질문을 지금의 언어로 바꾸어내는 일은 계속 되고 있고, 계속 되어야한다.

 


 다만, 작품에 대해 의문이 몇가지 있어 적어둔다. 소설 첫 부분에 정원이는 혜수, 주원과 친구가 된다. "무리"를 만드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적절한 표현인지는 의문이다. 혜수와 주원은 원래 친구 사이였는데, 어느 순간 둘은 멀어지게 된다. 사실 멀어지는 것인지, 작품에 등장하지 않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전체 서사에서 혜수의 역할은 분명히 존재하는데, 주원은 갑자기 사라진다. 혜수와 주원이 사이에 모종의 사건이 있었던 것 같은데, 전체 부분이 삭제 된 것 같다. 그렇다면, 주원은 이 책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일까. 의미가 없는 인물은 소설에서 드러내야 한다는 생각은 극단적인 것 같다. 그렇지만 역할이 분명하지 않은 인물, 설명이 충분하지 않은 인물에 대해서는 조치가 필요한 것 같기도 하다. 전체 흐름에 방해가 되는 인물은 아니지만, 해소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 완결성이 다소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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