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이 슌지 <러브레터(Love letter, 1995)>
"やっぱり照れくさくて、この手紙は出せません。"
사람들에게 영화 <러브레터>에서 가장 대표적인 대사를 꼽으라면 설원에서 히로코가 목 놓아 부르던 "お元気ですか。" 그리고 저 대사를 얘기하지 않을까?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가장 아름다운 오역으로도 꼽히는 대사라고도 한다. 직역하자면 "역시 쑥스러워서, 이 편지는 전하지 못하겠습니다." , 그리고 오역된 자막은 "가슴이 아파서, 이 말은 적지 못하겠습니다"이다. 영화의 마지막, 이츠키가 편지에 적으려고 했던 내용은 아마도 책갈피 뒷면에는 이츠키가 그려둔 그림이 있었다, 라는 내용일 것이다. 이츠키는 과연 쑥스럽다는 얘기를 전하려고 했던 것일까, 가슴이 아프다는 얘기를 전하려고 했던 것일까.
이 영화는 서로 닮은 얼굴을 가졌지만 다른 삶을 살아가는 히로코와 이츠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동명이인 "후지이 이츠키"의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히로코는 죽은 애인 이츠키를 잊지 못하고 그가 어렸을 적 살았다던 홋카이도로 편지를 보낸다. 그곳에 살고 있던 사람은 애인의 중학교 동창인 이츠키. 똑같은 이름으로 둘은 잠시 오해를 가지지만 금방 동명이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히로코는 그런 이츠키에게 애인의 어릴 적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요청하게 된다.
나는 이츠키가 과연 첫사랑과 닮은 얼굴을 가졌기에 히로코를 사랑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히로코는 이츠키의 어머니에게 찾아가서 자신과 그녀의 얼굴이 닮았는지에 대해서 물어본다. 어머니는 그런 히로코에게 중학생을 질투하는 거냐며 달래준다. 첫사랑의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기억으로 덧칠해진 사랑은 좋았던 기억만 남기고 가슴 가장 깊은 곳에 가라앉는다. 사람은 첫사랑을 통해 처음으로 사랑의 감정을 배우고 방법을 익혀간다. 이츠키는 첫사랑과 같은 외모를 가진 히로코를 보고 첫눈에 반했을 것이다. 이것만큼은 틀림없는 사실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당시 느꼈던 사랑의 감정을 그대로 느꼈을 것이고, 자기도 모르게 다가갔을 것이다. 그러나 히로코와 이츠키가 다른 인물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 성격도 말투도 행동까지도 모든 게 다른 히로코를 사랑한 게 과연 첫사랑과 같은 외모뿐이었을까.
사랑이라는 건, 결국 다른 사람을 알아가는 과정일 것이다. 외모를 보고 첫눈에 반했던, 성격에 반했던, 일부를 보고 점차 많은 것을 궁금해하고 알고 싶어 하는 것이다. 히로코는 자신이 사랑했던 애인의 과거 모습들을 알고 싶어 하고 그런 히로코에게 이츠키는 자기가 알고 있는 기억들을 접어 보낸다. 첫 편지에서 히로코는 자신에게 있었던 일을 이츠키에게 적어서 보낸다. 그리고 몸이 좋지 않다고 말하는 이츠키에게 답장을 써서 보낸다. 이젠 더 이상 곁에 있지 않는 애인에 대한 사랑은 그를 궁금해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보냄으로써 그 사랑을 완성한다. 편지란 아주 보편적인 소통 수단이다. 그러나 답장을 주고받을 수 있는 건 아주 일부의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닿지 못할 편지를 보내고, 받지 못할 편지를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히로코는 이츠키에게 묻는다. "잘 지내고 계신가요,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 그녀가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었던, 전할 수 있었던 유일한 방식의 사랑이었을 것이다.
이츠키가 마지막에 전해받은 책갈피는 아주 먼 시간이 걸려서 도착한 편지이다. 그리고 그곳에는 그녀를 향한 오래된 사랑이 담겨있다. 제때 도착하지 못한 마음은 상대방에게 전해지지 못한다. 마음은 사라지지 않은 채 보낸 사람의 가슴 깊숙한 곳에 담긴다. 닿지 못할 사람에게 목이 터져라 외칠 것이다, 너는 잘 지내고 있느냐고. 나는 여기서 잘 지내고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