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national Youth Initiative Program
스웨덴 출국 날, 내가 먹은 모든 것은 셀 수가 없다. 나는 마지막으로 고구마줄기 김치를 꼭 해주었으면 한다고 부탁했고, 엄마는 밭에서 고구마 줄기를 가져와서 다듬고 씻었다. 그리고 멸치액젓과 양파, 엄마표 김치 양념을 넣고 맛있는 김치를 만들어 주었다. 엄마가 해준 쫀득쫀득한 수육, 쌉싸름한 깻잎김치, 자극적이고 매콤한 소중한 고구마줄기 김치. 나는 엄마의 음식을 사랑한다.
막내 동생이 완벽하게 계량하여 끓인 매운 라면, 탱탱한 쫄면과 촉촉하게 익은 계란, 빛나는 샤인머스켓, 아빠가 사온 달달한 미키 마우스 모양 초코 케익도 있다.
이 음식은 모두 엄마와 아빠가 나를 위해서 만든 것이다. 엄마와 아빠는 나를 못 보는 슬픔, 앞으로 해외에서 당도하게 될 단단한 고생을 앞두고 내 입에 음식을 가득 넣어 풀어지도록 했다. 우리 가족은 사랑 표현을 언어로 하는 것을 선호하기보단, 행동으로 보여주는 지향한다. 엄마는 음식을 만들고, 엄마가 만든 것을 내가 입안에 가득 넣고, 내가 행복해 하는 것을 좋아한다. 이는 엄마에게 내가 배운 하나의 사랑 표현이다.
집에 있는 동안 나는 날마다 살이 찌고, 날마다 날마다 몸과 마음이 부르도록 먹었다. 너무 많이 먹어서 배가 고픈 적이 없다. 이 세상 어디를 가도 엄마의 음식만큼 나를 만족시키는 음식을 찾아본 적이 없다. 그래서 나는 집이 아닌 곳이나, 해외에서 밥을 먹을 때, 이상하게도 항상 허기진 느낌이 든다. 배가 부르지만, 배가 고프다.
마지막에 케익을 먹으면서 나와 엄마와 아빠는 코가 빨개질 때까지 울었다. 나의 동생들은 내가 행복한 꿈을 찾아서 해외로 가는 것인데, 왜 나와 부모님이 울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나의 동생들은 옆에서 웃음만을 우리에게 보냈다. 나와 엄마와 아빠는 케익을 먹는지, 눈물을 먹는지 혼란스러웠다. 나는 엄청난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22일에 출발하여, 22일에 스웨덴에 도착한다. 아주 고된 여정일 테고 적어도 일주일간 jet lag 때문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나는 당시 가장 저렴한 표였던 중국 항공을 골랐고, 중국 베이징을 경유하여 스웨덴 ARN 공항에 도착한다. 한국보다 과거에서 살게 되는 나는 또다시 꿈의 너머에서 지내게 된다.
첫번째 기내식을 소음 속에서 먹었다. 소음 속에서 증폭되는 불안과 걱정이 나의 나이 때문인 것인지, 나의 안정되지 못한 현실 때문인 것인지, 부모님의 은퇴가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 때문인 것인지, 이 학교 너머의 일을 알지 못한다는 사실 때문인 것인지 분석하고 헤아렸다. 때로는 어두움, 저녁, 지하의 곰팡이, 감정이 전이로 물들어가는 순천의 나날이었다. 얼마나 더 슬퍼져야 할까. 언제 이해의 노을이 내게 다가올까 고민했다. 감정의 폭을 넓혀가고 싶지만, 이해하지 못하는 삶에 따라 관두곤 했다. 하지만, 불안과 걱정은 항상 나의 삶을 준비하게 만들었고, 드높은 곳으로 데려가 준 시발점이기도 했다. 이 불안과 걱정을 현재에 사용하여 좋은 미래를 만들고 싶다. 내가 나의 길을 찾아가고 있다는 확신이 든다. 그간 나는 나의 솔깃을 드높여 나 자신을 스스로 위로하곤 했다. 순간 순간이 큰 이루어짐의 시작이다. 깊게 숨을 쉬고, 당차게 앞으로 나아가려 한다. 반짝반짝 살아갈 수 있다. 내 본연의 길과 말로 소통할 수 있다. 계속해서 나와 타인과 소통할 수 있다. 기뻐할 수 있다. 본능과 직감으로 살아갈 수 있다. 사랑할 수 있다. 행복할 수 있다. 내가 믿는대로, 가능성을 풀어 놓는대로 내 자신이 된다고 믿고, 나를 한껏 돌보려 한다.
미리 연락을 하여 스웨덴 공항에서 만난 나의 덴마크 친구는 직접 끊은 표를 보여 주었고, 모든 길을 안내했다. 학교를 처음 시작하고 바쁠텐데 와준 친구에게 너무나 고마웠다.
친구는 나를 위해서 학교로 가는 모든 기차 및 버스표와 이틀 간의 호텔비를 모두 내주었다. 덴마크 친구는 나를 만나게 되어서 너무 기쁘다고, 가는 길은 걱정하지 말고 자신만 믿으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학교까지 아무 걱정이나, 차편의 검색을 하지 않고 편한 마음으로 갈 수 있었다. 나는 버스와 기차에서 편하게 쿨쿨 잠을 잤다.
나의 26살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나는 알 길이 없다. 다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했고, 그 선택을 믿으려 한다. 그리고 그 선택에서 최선을 다해서 생을 살아가려 한다. 덴마크 친구의 소리를 듣고 버스에서 일어나서 학교를 향해서 걸어갔다. 어두컴컴하고 춥다는 점에 느껴졌다. 친구는 내 짐을 들어주었고, 학교에서는 학교 선생님, 레이놀드가 우리를 기다려 준다고 했다. 전화를 하니 그는 우리가 주차장에 있는지 물었고, 내가 서 있는 곳이 어디인지 모르는 나는 주차장 같기도 하다고 말했다. 그는 자전거를 타고 와서 우리를 학교 입구에서 맞이했다.
이것이 나의 앞으로의 삶이다. 1층에서 나는 룸메이트 rowen과 머물게 된다. 간단한 짐을 풀고, 샤워를 하고 깊은 잠에 빠졌다.
frist day, sweden, 2025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