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기록
나에게 흰 것은 무엇일까.
“구름, 책, 광목, 소금, 눈, 얼음, 달, 쌀, 포말꽃, 백목련, 흰 비둘기, 하얗게 웃다, 밀가루, 백발, 데이지”
모두 흰 것과 연관이 있는 것이다.
모든 색을 지우는 눈처럼 강력한 흰색.
더럽혀지고 상처 나는 것은
도드라져 보이는 하얀색.
어느 색도 소화해 내며
‘너’의 색과 조화를 이루는 색.
아주 미세한 티끌 덕분에
흰색은 쉽게 모습을 드러낸다.
흰 휴지를 사용할 때
흰 생리대를 사용할 때
인간이기에
벗어나지 못하는
반복을 생각하곤 한다.
엄마가 지친 어깨 들썩이며
만들고 빨았을
흰 이불에 누워
흰 천장을 바라보고
마디 마디의 걱정거리를
조용히 되뇐다.
흰 것과 흰 것의 위아래에서
인절미의 고물처럼
내 체취와 피로를
톡톡여 묻히고 덜어낸다.
아빠의 흰 머리카락을 뽑으며
그동안의 세월을 유추한다.
흰 달과 흰 구름을 바라보며
흰 무지노트에
아직은 서늘해서 만질 수 없는
꿈들을 적는다.
나보다 늙은 하얀 차는 매일
아빠를 노동의 하얀 터로 실어준다.
새벽녘 나무에 내린 흰 서리
식물 곁에 붙은 이슬방울은
어제의 메마른 마음과
딱딱한 대지에
촉촉하게 스며들어
우리를 살린다.
"건강을 위해 피지 마세요"라 부탁해도
방에 남아있는
감쪽같은 하늘 위 아지랑이
하얀 담배 연기는
할아버지가
무수히 허공을 보며 되새겼을
파이한 한이 서려있다.
필통 속의 하얀 지우개는
까맣고,
다르고,
희갈겨진 선들을
괜찮다며 토닥이며
지워나간다.
다시 원래대로 하얗게.
네모난 관 안의
파란 얼굴 해바라기
흰 천이 가슴까지 덮인다.
천에 눈물이 아른아른 차올라
자꾸만 흐려져 보인다.
까만 사람들이
고개를 모두들 숙이고
하얀 천들은
눈물방울로 빛난다.
크리스마스 때 받은
나의 행복한 하얀 탁상시계는
오늘로 돌아오라 온 몸을 똑딱인다.
찌르르
풀벌레 우는 저녁 어둠 속에서
도시의 하얀 불빛 네온사인을 바라보며
자연의 소리에 반하는 인간의 색을 바라본다.
고등학교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깔깔거리며 잡던
반딧불의 노랗고 하얀 꽁무니는
반-짝 반-짝
참으로 위태로운 아름다움이었다.
흰 인정과 평정심을 가진 사람.
흰 웃음을 가진 사람.
2017年 8月 19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