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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밀리 Oct 27. 2021

서바이벌 경연프로그램의 본질

그들은 왜 자꾸만 다시 나오는가


며칠  티비에 나오는 경연프로그램을 잠깐 보게됐다. 하나는 노래프로였고 다른  랩이었다. 장르만 달랐지 요즘 시류는 놀라우리만치 똑같았다. 처음봤을  소름이 돋았던 그런 실력있는 사람들이 줄곧 다시 참가자로 경연을 하고 있었다.  사람은  자기노래를 안하고 여기  나와있을까?’ 심지어는  시즌 우승자와 이미 유명한 스타가 등장한 것을 보았을  정말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자격제한이 있는건 아니라지만 그건 마치 이미 수석으로 대학을 졸업한 선배가 다시 학위를   따보겠다고 재입학한 느낌이었다. 편집에는 수많은 의도라는  들어가니 내용은 논외로 치더라도 그들의 반복되는 등장  자체가 내겐 많은 것을 보여주는  했다.


나오고 또 나오고

이미 그 경연에서 취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취한 이들이 다시 등장을 했다는 것은 우승이 목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실력을 또 인정받고 싶었을까. 자신의 목소리를 대중에게 들려주기 위해 하나의 플랫폼으로 이용한 것일까. 아니면 그저 다시금 이목집중을 받고 이슈가 되어보고 싶어 프로그램을 이용한 것일까.  


우승이 정말 문제일까?

그렇다면 그들이 또 바람대로 우승을 했다고 치자. 그럼 우승후에는 무엇이 있을까. 몇년 뒤 아니, 몇 달 뒤 그들은 똑같은 모습으로 비슷한 경연 혹은 다음 시간에 또 출연하는 것은 아닐까. 잘하는 이들은 너무 많다. 우승을 해도 곧장 묻히고 말지도 모른다.


k팝 스타의 기획의도


서바이벌 경연의 본질을 신인발굴이라고 본다면 이미 데뷔한 스타가 다시 데뷔하고 또다시 스타덤에 오르긴 쉽지 않을 것이다. 물론 나는 그들의 사연과 결핍을 다 모른다. 재미삼아 혹은 그저 무언가의 홍보차로 혹은 내가 다 모를 저마다의 이유로 그 자리에 섰을 것이다. 아마 그들에겐 생계문제나 계약문제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해도 쥐었던 칼자루를 또다시 쥐고 등장하는 일회성적인 퍼포먼스, 그것만이 음악을 하는 유일한 방법이었을까. 남의 노래가 아닌 자신만의 노래를 묵묵히 불러나갈 방법이 정말 없었던 것일까. 인지도를 높이는 폭발적인 데뷔와 이목집중은 한번으로는 족하지 않은 것일까. 생각할수록 그들의 반복되는 등장은 더 미궁속으로 빠지게 됐다. 그들이 하고 싶은 음악이라는 것은 대체 어떤 종류의 것이었을까?




누구보다 더 잘하는 것의 함정

경연 프로그램의 탈을 쓴 방송이라는 데뷔 플랫폼을 가장 잘 이용하고 싶다면 목적의식을 달리 가지는 것도 방법이 된다. 남을 이기고 짓밟아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고유의 탁월함을 방송이라는 하나의 장을 통해 그저 보여주는 것이다. 내가 너보다 잘해-하는 우월함이 아닌 탁월함이다. 누구를 이기기 위해라는 목적이 아니라 그저 내 것을 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는 것이다. 대중의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을 하나의 인상을 남기는 것이다. 나는 내 음악을 하는 사람이야, 앞으로 그러고 살거야-라는 인상.


그 다음에 중요한 건 정말 그렇게 사는 것이다. 누가 뭐래든 계속 자기의 것을 하는 투지와 용기를 갖는 것이다. 내 노래 좀 들어주세요-도 당연히 필요하다. 그러나 문제는 우선순위가 바뀔 때 발생한다. 자기의 것도 없이 성급히 내 가창력만을 팔기 시작하면 금세 나는 없어지고 만다. 더 많은 이들을 이겨야하고 더 많은 이목과 집중을 끌어야 하니까 그저 더 나은 누군가를 따라하기 십상이다. 우선 필요한 것은 군중없이도 홀로 걸을 수 있는 용기다. 그 외로운 행진에서 자기만의 것이 생긴다. 아무도 좋아해주지 않는 글을 홀로 노트에 끄적이고, 아무도 지원해주지 않을지라도 더디고 허술하더라도 나만의 데모테이프를 차곡차곡 만들어가는 시간. 그 지지리도 느린 시간들. 그것이 우리에겐 반드시 필요하다.



김하온과 김하온의 앨범



자기의 것을 일궈나가기

내 음악을 하는데 얼마만큼의 이목집중이 필요할까. 정말 음악이 목적이라면, 정말 예술이 목적이라면 그렇게 많이는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망한 작품에 주연을 하든 흥행작의 엑스트라를 하든 맹렬하게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쌓아나가면 된다. 관중이 있든 없든, 있다면 적든 많든 내 노래를 부를 끈기. 그리고 무서운 집중과 몰입으로 그냥 자기의 것을 하면 된다. 조용하고 꾸준한 등장과 묵묵한 행보가 필요하다. 아무리 재주가 있대도, 그들의 무대가 서바이벌 경연 프로그램에 한정되는 한, 성장은 하지 못한다. 물이 끓는 것을 들여다 보고 있으면 물은 끓지 않는다. 나무가 자라는 걸 들여다 보고 있는다고 순식간에 자라는 것도 아니다. 나뭇결 사이로 빛이 들어가고 바람이 지나가고 아무도 모르는 때에 나무는 조금씩 자란다. 성장을 하는 정확한 그 찰나의 순간을 포착하는 건 나 하나다. 그게 성장이 가지는 중요한 속성이다. 성장은 본질적으로 외롭다. 그리고 외로워야한다.





환상과 꿈의 경계

인간의 많은 잘못된 행보는 환상과 꿈을 구별하지 못하는 것에서부터 비롯될 때가 있다. 스타가 되는 것도 목표는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종착역이 아니라는 것을 일찍 깨달아야 한다. 몇백억짜리 땅 덩어리 집과 차를 현금박치기로 척척 사재끼고, 모두가 매번 주목하는 멋진 무대에 서고, 한마디 한마디가 이슈가 되고, 상상도 못할 금액을 기부하는 것. 그런 우월한 선함까지 자랑하고 내보이는 것. 그런 세상의 ‘주연’자리. 그런 환상에 젖으면 깨어나기가 힘들다. 꿔도 꿔도 배가 고프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이 그런 환상에 의존해 살기에 박수칠 때 떠나는 사람들을 보면 저절로 탄식이 나온다. 그들은 어떻게 해서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1절 2절 3절 결국 뇌절 소리까지 들어야 겨우 정신을 차리는게 인간이란 동물인데.


중딩시절 즐겨봤던 연습생 대결프로그램이 기억난다. 비록 스타는 아니었지만 춤을 추고 노래를 하는 그들은 마치 반짝반짝 빛나는 별처럼 무언가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결국 데뷔를 하고 거대한 팬덤을 가진 스타가 되고 또 누군가는 그새를 못 버티고 논란을 만들고 탈퇴를 하고. 나는 어느새 대학생이 되었었다. 그들에겐 평생 그들이 사랑한다는 음악을 하고 살 수 있는 장이 열렸지만 그 장이 또 얼마나 금세 닫히고 마는지를 목격할 수 있었다. 우연히 티비를 통해 다시보게 된 그들의 무대에는 이상하게 뭔가가 빠져있었다. 그들은 더이상 반짝거리지 않았다. 아마 그들이 쫓은 건 꿈이 아니라 환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는 똑같은 재주를 가지고 기회를 얻기도 하고 누군가는 그렇지 못한다. 비슷한 노력을 하는 것 같은데 누군가에게만 정말 환상같은 일상에 살 기회가 주어진다. 혹자들은 노오력과 눈물나는 사연이 전부인 것처럼, 성공한 그들이 부와 인기를 누릴 마땅한 자격이라도 있는 것처럼 말하지만 내 눈엔 모두들 치가 떨릴 정도의 노력을 하고 산다. 자격이라는 건 인간이 인간에게 쉽게 할 말이 아니다. 그저 승리자의 성공담이 더 잘 팔릴 뿐이다.


세상은 원래부터 그랬다. 진리는 언제나 강자의 이익이었고 세상의 불균형을 이해하는 건 언제나 개인의 몫이었다. 그렇지만 구태여 또다시 비탄에 빠질 필요는 없다. 기회를 쟁취한 운좋은 자들에 대한 질투도 부질없는 짓이다. 그저 세상이 돌아가는 꼴을 인정하고 그 자리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면 된다. 환상이 아닌 꿈을 쫓는다면 행복은 그다지 멀리 있지 않기에. 묵묵히 활을 켜고 데모랩을 만들고 소설을 쓰면 된다. 내 작품은 알려져야하는 만큼 결국 알려지게 될 것이다. 자신이 반짝이는지 알지 못하는 이들은 가장 반짝거린다.


자기자신 콘테스트

남의 노래만 부르던 무명가수는 이제 자신의 노래를 부를 차례이다. 자신의 앨범을 꾸려나갈 차례이다. 남의 글만 써주던 고스트작가도 이제 자신만의 글을 써야 할 시간이다. 쓸데없는 걸 다 잘할 필요는 없다. 쓸데없이 대치하고 대결구도를 만들고 모든 경연에 등장해 1등을 차지할 필요는 정말 없다. 아마 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면 사람들이 이전만큼 주목해주지 않을지도 모른다. 기회나 무대를 잃어버리는 건 아닐지 걱정되고 비교될지도 모른다. 생각보다 앨범을 만드는 일이 어려울 수도 있고 완성작이 별로일수도 있다. 내가 기껏 출연한 작품이 흥행에 참패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도 꾸준하고 부지런하게 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일궈나가는 것밖엔 답이 없다. 음악도 그림도 랩도 연기도 시도 글도, 예술은 다 인생이기에 언제나 시간이 걸린다. 보여주기식이 아닌, 누군가보다 더 잘하고 짓밟고 올라서는 게 아닌 그저 나만의 춤을 춰야한다. 그곳이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외로운 길거리 무대일지라도, 결국 남는 것은 그런 것이다. 어떤 부질없는 경연이 아닌 나만의 대회에선 언제나 내가 제일 탁월할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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