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밀리 Nov 27. 2021

책 [하얀국화]

그들이 걸어온 길, 우리가 걸어갈 길


학교 도서관에 들어와 출입구를 지나면 얼마안가 큼직한 추천도서대가 있다. 그곳에 아주 오랫동안 이름이 올려진 책이 한 권 있었다. 남들이 추천해준 책을 참 좋아하지만 어쩐지 으스스한 제목에 쉽사리 읽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하얀 국화. 죽음에 대한 이야기일까? 그러나 이 이야기가 말하고자 한 것은 결코 죽음이 아니었다. 죽음이 아닌 오히려 생명과 그 생명을 가능케한 역사에 대한 이야기였다. 비록 무수한 죽음이 역사의 곳곳에 산재했을지라도 역사의 땅, 그곳은 결국 죽음의 땅이 아닌 생명의 땅이었다.     


모든 이야기를 품은 그곳, 제주 바다

이야기는 한 소녀의 순백의 어린시절로부터 시작한다. 가족과 부족하지 않은 먹을거리, 그리고 바다. 그곳은 완전한 행복이 있는 곳이었다. 특별히 제주 바다는 소녀 하나에게 에덴동산과도 같은 곳이었다. 그러나 어느날, 아무리 손으로 막아도 흘러내리고마는 잔인한 물줄기와도 같은 시대의 그늘이 그 소녀를 덮쳤다. 그날이 오자 소녀는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는 바다와 하나뿐인 동생 아미 앞에서 한 남자에게 무참히 납치된다.


그 남자가 이끈 곳은 전쟁이라는 대의명분아래 폭력과 광기어린 비인간성이 난무하는 곳이었다. 하나는 그곳에서 몸이 찢기고 가슴이 찢긴다. 그리고 자신과 같이 혼절할 것만 같이 고통스러운 삶을 살게 된 소녀들을 그곳에서 만나게 된다. 고통이 찾아올 때마다 숨을 참고 숫자를 세며 아름다웠던 어린시절을 기억하고 또 기억했다. 그러나 숨이 막히기 직전까지 한 고통이 끝나면 금세 다른 종류의 고통이 찾아왔다. 하나를 데려간 악마같은 그 남자는 끊임없이 하나의 이야기에 등장해 때로는 잔인하게 때로는 교활하게 한 소녀의 행복을 겁탈한다.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 그 남자는 멋대로 하나의 삶을 짓뭉개놓는다.


그 남자의 이름은 식민지 역사다. 대한민국 식민지 역사의 피해에 있어서 가해자는 사실 일본도, 미국도, 소련도 아니다. 가해자는 실체없이 공허한 이데올로기이다. 그리고 그것에 굴종하여 힘없고 약한 집단을 유린하고 착취했던 집단들이다. 우리 민족은 제주의 해녀들과도 같이 혼자 힘으로 땀흘려 먹고 살 능력이 있는 독립적이고 아름다운 민족이었다. 그러나 식민사관에 인간성을 매도한 집단의 이기(利己)에 의해 조선인의 독립성은 무참히 짓밟혔다. 헛되고 눈먼 이데올로기는 우리로부터 아름다운 소녀같은 자유를 납치해갔다. 실체도 없는 것에 의해 일본은 대한민국에게, 미국은 또 일본에게 씻을 수 없는 흉터를 남겼다. 실체도 없는 것에 의해 평화로이 가족들과 살고있던 한 소녀의 행복이 산산이 부서지고, 겨우 자유로워질 뻔했던 한 형제는 두 강대국의 잇속에 낀 채 몸이 두 쪽으로 갈라져 서로를 뜯어먹게 되었던 것이다.      




역사를 직시하는 것

무엇보다 이 책에서 주목하고 있는 것은 그 당시에 존재했던 무수히 많은 종류의 고통 중 위안부 여성으로서의 고통이다. 10대의 어린 소녀들은 어느 날 갑자기 이유없이 일상에서 내팽겨쳐짐을 당하고 일본군의 성노예가 되어야했었다. 그것은 한 여자의 일생을 단숨에 나락으로 떨어뜨려, 죽지 않고도 죽음과도 같은 고통의 삶을 살게 했을 뿐 아니라 그 여자를 둘러싼 한 가족의 남은 평생을 영영 망가뜨려버릴 위력을 가진 고통이었다.        


하나는 정신이 홱 돌아버릴 것만 같은 절규의 위안소에서 아편으로 만든 차 마시기를 거부한다. 아편으로 아픔을 잊고 현실에서 도피하는 것을 거부한다. 하나에게 차를 거부하는 행위는 살아남기 위한 첫번째 발걸음이었다. 맑은 정신으로 하나는 아름다운 것을 잊어버리지 않으려 노력했고 실제로도 그것을 결국 지켜냈다. 그녀는 끝까지 살아남아 아름다움을 지켜낼만큼 강인한 사람이었다. 시대의 피바람과 칼부림에 무고한 삶들이 절규하는 속에서도 그녀는 정신을 붙잡았다.      


어떤 부분은 너무 고통스러워 글자를 읽어내려가는 것조차 힘들었다. 이것이 진짜 있을 수 있는 일인 것인가. 다 진짜란 말인가. 다 진짜라는 것을 알기에, 더욱 숨이 막혔다. 겨우 글을 읽는 것 뿐인데 그 일이 숨이 막히도록 고통스러워서 할 수만 있다면 그쯤에서 그만 덮어버리고 싶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위안소에서 아편을 거부했던 하나와 같은 심정을 쥐어짜 페이지를 넘겨갔다. 다시는 반복되지 못하도록 두 눈 부릅뜨고 생생한 역사를 마주보았다.      


더 많은 낱말을 알수록 더 큰 힘이 생긴다. 그래서 일본인들이 조선말을 금지하는 거야.


더 많은 낱말과 더 많은 일들을 더욱 생생하게 우리는 알아야 한다. 한 가정과 한 민족에 치명적인 가해를 입힌 자가 누구였으며 어떤 근거와 어떤 사고로 인해 누가,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 할 수 있는 한 우리는 그 모든 지나간 정황과 사실을 성실히 알아가야만 한다. 아는 것을 멈추면 안된다. 물론 안다고 해서 그 피해와 수모를 모두 되갚을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무정히 지나가버린 시간 앞에 인간은 어떤 복수도 어떤 사과도 피해자의 혼을 온전히 위로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나 아는 것, 기억하는 것은 사실 복수보다 더 큰 힘이 있다. 그것은 망각으로부터 집단을 지켜낸다. 있어선 안될 일들에 대한 기록과 기억, 추모와 추도는 비극이 다시 반복되는 것으로부터 우리를 지켜낼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히 똑같이 누군가에게 무엇을 되갚는 것보다 더 값지고 중요한 일일지도 모른다. 아는 것은 역사에 있어서 정말 힘이 되는 것이다.        


역사가 결국 증명해낸 것은 무참히 밟힘당한 것만 같던 조선인의 독립성과 자유는 사실 죽지 않았었다는 것이다. 하나는 소련군에게 결국 마지막 죽임을 당하러 가는 듯한 순간에도 같은 처지의 소녀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마치 열쇠처럼, 혹은 보물지도처럼 남기고 떠난다. 자신의 피묻은 이야기가 누군가에 의해 기억되고 전해지리라는 것을, 그래서 지금은 한치앞도 보이지 않는 이 민족에게 자신의 이야기가 구원이 되고 또 길잡이가 되리라는 것을 흑백사진 속 해녀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사실이었다. 그녀의 강인함과 절개는 결코 한 번도 꺾인 적이 없었다.


아미가 마침내 소녀상 앞에서 그토록 그리던 언니와 재회했듯이, 나는 이 책을 통해 만나본 적도 없는 수많은 이들의 아픔과 고통과 재회했다. 그들이 처절하게 걷고 또 물을 길러와 우리 앞에는 이제 누구도 막지 못할 역사의 긴 강이 흐르게 되었다. 그랬기에 작가 역시, 우리 모두의 누이였던 하나의 삶, 그리고 역사의 용사였던 이들의 삶에 가장 아름다운 하얀 국화를 바친 것이었다.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역사라 해서 없었던 것으로 할수는 없다.

이 말을 개인적인 삶에만 적용시켰던 나는 이제 고개를 들고 민족이 지나온 길을 바라본다. 그들이 하나되어 걸어온 피칠갑된 역사를 똑바로, 성실히 아는 것에서부터 나의 공적인 삶을 다시 시작하고자 한다. 잊지않는 것은 부당한 권력에 저항하는 가장 강력한 방법이다. 실체없는 이데올로기에 사과받을 수는 없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두눈 부릅뜨고 잊지 않는 것, 우리 민족의 지나온 고통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것이 앞으로 남은 인생을 살아갈 나와 미래세대를 악의 반복으로부터 지켜낼 최소한의 예의이다.       


점심메뉴를 무엇으로 할지부터 유학을 갈지 아님 교사가 될지, 일상적 고민부터 일생일대의 고민까지 지금 우리는 꽤나 용감하게 행복을 찾아나서는 시대에 서있다. 그럴 자격을 부여받은 시대. 그러나 그 자격은 누가 부여했는가? 한민족이 걸어온 역사다. 이제는 이 시대의 모든 의식을 가능케 하기 위해 아래로 흐르고 있는 피와 절규의 역사의 강을 봐야한다. 그 강에 온 몸을 집어넣고 세례라도 받은 듯 나는 새롭게 다시 태어나야한다. 결코 추악과 행패를 잊지 않는 한명의 시민으로, 한 사람의 몫일 뿐이라도 악한 권력을 온 일생으로 맞부딪히며 살아갈 것이다.


한 한국전쟁 참전용사가 말씀하셨었다. 자유를 가진 누구에게나 의무가 있다고. 그 의무란 자유를 가지지 못한 우리의 형제에게 자유의 파발이 되어 자유를 맛보게 하는 것이다. 아직도 현존하는 모든 허위의 세력과 이데올로기의 베일을 벗기고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모두에게 알려야 한다. 그리고 실제로 그것이 현실이 되도록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자유롭지 못한 이들을 도와야 마땅하다. 우리 민족 역시 그 자유의 아름다움을 누리게 된 지 오래되지 않았다. 민족을 포기하지 않은 이들로 인해, 우리는 자유를 얻었다. 그리고 당연히 이제 우리에게도 의무가 있다. 자유의 기쁨을 모르는 북녘을 넘어 또 중동지방을 넘어 이 한 지구가 온통 자유의 맛을 누리도록 우리에게도 지치지 말아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코끼리 다리를 더듬을 뿐이라지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