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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밀리 Dec 04. 2021

버스정거장에서 느낀 것들

사랑하고 감동하고 희구하고 전율하며 살라는 말

사람은 사람과 어울려야 산다는데 요새는 그런게 귀찮다. 감화되지 못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어색하기 껴있기 싫어서 냅다 모임 자리를 도망쳐오던 길이었다.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쓸데없이 바쁜 마음으로 버스를 기다렸다. 사람이 북적이는 주말 버스 정거장에는 휠체어를 탄 남자분이 있었다. 그렇구나. 나는 고개를 돌리고 버스를 기다렸다. 그러던 중 제일 먼저 온 버스가 정차했다. 휠체어를 탄 남자분은 손을 휘저어 그분 나름대로 탑승을 알렸다. 그러나 웬일인지 기사분은 버스를 멈추지 않았다. 승차문을 천천히 지나고, 하차문이 휠체어 바로앞에 위치했을 때, 버스는 멈췄다.


23년 서울버스 인생, 처음으로 보는 경사판이 하차문쪽에서 내려왔다. 휠체어 바퀴는 그 판을 굴러 천천히 버스로 올라갔다. 기사님이 운전석에서 내려와 전용좌석을 세팅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뒤에 도착한 버스에 올라탔다.


누군가가 자신의 직업을 그토록 충실히 이행하는 걸 목격할 기회는 많지 않다. 승객을 버스에 태우고 목적지에 데려다준다는 그 목적에 오직 충실한 모습이었다. 더도말고, 덜도말고 휠체어가 올라탈 수 있는 그 정확한 위치에 버스를 위치시키는 것, 신속히 안전벨트를 벗고 내려와 손님이 앉을 좌석을 준비하는 것. 산다는 게 참 별거 아니라지만, 일도 직업도 한 세상 사는동안 그저 시간때우기용은 아닌가 생각도 해봤지만. 누군가가 무엇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면 아직도 감격을 느낀다. 다시 떨어져내릴 걸 알아도 돌을 밀어올리러가는 시지프스를 목격한 것처럼 금방이라도 눈물이 날 것 같아진다. 


카뮈는 삶의 가치를 찾으려는 노력과 침묵하는 세계 사이에서의 인간의 삶을 ‘사막 한가운데’로 비유한 바 있다. 깨어있는 의식을 통해 이 사막에서, 이 의미없는 돌굴리기 고행에서, 이 부조리에서 살아남아 버텨야한다고 했다. 어쩌면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맨 아름다움이라는 것도 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건가 보다.



남자다운, 여자다운, 엄마다운, 선생다운.

‘~다운’이라는 말이 제일 폭력적이라는 어떤 대사가 있었다. 파격에 파격을 거듭하는 걸 미덕으로 삼는 것처럼. 그러나 고등학교 시절, 나는 선생답지 않은 선생이 가장 무서웠다. 내 부족한 가정형편을 우습게 생각하고 뭐든지 쉽게쉽게 말을 내뱉을 때마다 나는 점점 마음의 문을 닫았다. 영원히 낫지 못할 것 같은 생채기를 입은 것 같았었다. 내 잘못도 아닌 상황들이 너무나도 부끄러워 아무도 안보이는 곳으로 도망치고 싶었다. 내가 많은 걸 바란 건 아니었는데, 그저 선생님다운 정도면 충분했는데. 하필이면 과하게 자유분방하게 사는 사람을 선생님으로 만나 정말 많이 미워했었다. 그때부터 나는 자기 자리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하지 않는 사람들이 무서웠다. 자신의 역할을 다 해낼 능력도 없으면서 쓸데없이 허울좋은 파격만 꿈꾸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제일 맹랑하고 무서웠다.


그러나 오늘, 이 더할나위없이 신속하고 정확한 기사님, 직업인다운 직업인을 떠올리는 귀갓길에 울컥 뭔가가 치밀어 오르는 것 같았다. 감상적으로 구는게 싫어 억눌렀지만 정말 오랜만에 느끼는 감정이었다. 그런 삶을 한번이라도 보기를 얼마나 바랐는가. 하나님은 아름다움을 끝없이 의심하는 내가 불쌍해서 그런 장면을 잠깐이라도 보여주신 건 아니었을까. 자신의 직분을 다하는 것. 그것은 정말 아름다운 일이다. 


나의 오랜 연예인이었던 마이클잭슨의 man in the mirror 한구절이 떠오른다.

Could it be really me, pretending that they’re not alone?

이기적인 종류의 사랑밖엔 몰랐다는 마이클 잭슨의 이 고백처럼 나는 왜 항상 높은 것에 목이 마를 수 밖에 없었을까. 내가 찾는 건 생각보다 더 가까이에 있는지 모른다. 내가 있는 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 나는 아직도 많은 것에 목이 마르지만, 그리고 앞으로도 조금은 더 그럴 것 같지만, 그래도 이제는 용기를 가지고 싶다. 이 사막 한가운데에서 사람다운 사람, 인간다운 인간으로 살아나갈 용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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