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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밀리 Jul 10. 2022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

티파니에서 아침을 맞는 것만으론 충분하지 않다

나는 스포일러 중독자다. 영화를 보기전에 꼭 스포일러를 포함한 줄거리를 다 읽어보고 구미가 당기면 영화를 본다.


1960년대 초의 뉴욕, 검은 선글라스에 화려한 장신구로 치장한 홀리(오드리 헵번)가 택시에서 내려 보석상 티파니 앞을 활보한다. 홀리는 뉴욕의 한 아파트에서 홀로 살아가며 부유한 남자들과의 만남을 통해 화려한 신분상승을 꿈꾸는 여성이다. 어느 날, 폴(조지 페퍼드)이라는 가난한 작가가 홀리의 아파트로 이사를 오면서 두 사람의 만남이 시작된다.


상당히 일차원적이고 약간 우스꽝스러운 이 캐릭터 소개를 보고 마음이 동했다. 사실은 그동안 커오면서 아이코닉한 오드리햅번의 사진들과 포스터를 봐서 영화의 존재를 익히 알고는 있었지만, 신분상승? 미국판 춘향전인가.. 한번도 이런 현실적인 줄거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이런 여자를 대체 미국 고전영화에선 어떻게 묘사하고 있을지 너무 궁금해졌다.


속물일까, 문제해결사일까

매일같이 바쁘게 파티를 열고 사람을 만나고, 비참한 자기인생을 구원해줄 돈많은 남자를 찾아다니기 바쁜 여자. 할리는 줄거리에 나온 캐릭터 그대로였다. 그러나 주인공이라면 으레 그렇듯 이 여자도 그렇게밖에 살 수 없는 속사정이란 것이 있었다. 동생을 사랑하는 누나이자/돈때문에 어린나이에 결혼까지 감수했던 여자. 그러고도 또다시 동생의 인생(+자기인생)을 구하기 위해 상류층남자와의 결혼을 찾아 헤매는 사람이었다. 어떻게 보면 생각없는 사람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생각이 정말 많지만 그런 생각들이 너무 괴로운 나머지 생각없는 척 연기하는 사람 같기도 하다. 어떻게 보면 지독한 속물같기도, 어떻게 보면 냉철한 문제해결사 같기도 하다. 정말 저 마음에는 무엇이 들어있을지 가늠할 수 없는 심연같은 캐릭터다.


그러다 우연히 같은 아파트로 이사온 폴을 만나게 된다. 폴 역시 내기준 되게x100 별로인 겉만 번지르르한 캐릭터였다. 폴은 가난한 작가로 글쓰는 일을 전전하면서 어느 유부녀와 불륜 관계를 이어나간다. 어쩌면 이 영화 설정안에서 이를 비겁하다 칭하는 것조차 이상할지도 모르겠다. 그저 현실에 안주할 방법을 찾은 것 뿐이기에. 이웃인 할리와 폴은 우연한 만남으로 이어지고, 그렇게 두 연인의 인연이 시작된다.



폴은 어느날 우연히 창가에 앉아 홀로 노래하는 할리를 보게된다. 그 유명한 문리버 장면 연출은 세대를 거슬러도 참 아름답다고 느꼈다.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변하지 않는 미감이란게 있는가보다.


(영상 연출과 더불어 고전미를 느낄 수 있는 문리버의 가사)

Two drifters off to see the world
떠도는 이 둘, 또다시 세상을 보기 위해 떠나요 
There's such a lot of world to see
아직 세상에 배워야할 게 정말 많거든요
We're after the same rainbows end 
우리는 모두 무지개가 끝나는 곳으로 향하고 있어요
Waiting round the bend
머지않아 곧 만나게 될거예요
My huckleberry friend
나의 정다운 친구여
Moon river and me
달을 따라 흐르는 강물, 그리고 나


그 사람의 고독을 보게되면 사랑이 시작된다.


시트콤주제에 드엔딩으로 유명했던 하이킥 감독은 한때 말했었다. 그 말이 들은 후에도 뇌리에서 잊혀지지 않았다. 그리고 사랑에 빠진 연인들을 보면 저 둘은 서로의 어떤 고독을 보았을까?하고 어김없이 대입해보게 되는 공식이 되었다. 아마 폴도 분주하고 명랑하기만한 할리의 깊은 고독을 보았기에 아무리 속물에 돈타령만 하는 지독한 여자였음에도 사랑이 싹튼것이 아닐까.




티파니에서는 나쁜 일이 일어날 수 없어

우울한 아침이면 택시를 타고 티파니 보석점에 간다는 할리의 대사는 인물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문제 상황에서 우울에만 젖어있지 않고 어떻게든 방법을 찾으려고 하고, 한시라도 가만히 있지 않고 상황을 진전시킨다. 그러나 그렇게 자유분방해보이는 그녀도 사실 과거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그녀가 아주 어릴적 돈 때문에 결혼했던 남편은 지긋지긋했던 과거를 이고지고 어느날 그녀를 찾아온다. 그러나 할리는 과거의 모든 것은 또 뒤로하고 돈많고 능력있는 새로운 구원자를 찾기 위해 브라질로 떠나려한다. 할리는 이런식으로 극 내내 신기루같은 상류사회에 대한 동경 속으로 계속 도망치기만 한다. (캐릭터 일관성 하나는 최고..)



이름도 없이, 속할 사람도 없이 산다는 것

자신이 사랑하는 동생의 모습과 폴의 모습이 겹쳐보일만큼 자신도 폴을 사랑하지만, 폴의 사랑한다는 절절한 고백에도 할리는 거침없이 'so what'을 외친다. 그녀에게 사랑을 하는 것은 '우리'안에 갇히는 것일 뿐이었다. 서로를 속하고, 서로에게 속하는 뻔하고 유치한 게 결국 인생에서 의미있는 유일한 것임에도 그녀는 폭주기관차처럼 자기의 이름까지 부인하는 지경에 이른다. 자기는 할리도, 룰라메이도 아니라고, 나도 내가 누군지 모른다고, 함부로 사랑하게 될까봐 이름도 붙여주지 않았던 고양이마저 어느 빗길에 잔인하게 놓아줘버린다. 그런 할리에게 질릴대로 질린 폴을 할리를 두고 택시에서 내린다. (아래는 유일하게 좀 멋있었던 폴의 각성 모먼트) 


"어이 아가씨 당신이 뭐가 문제인지 말해줄까요, 당신은 겁쟁이야. 당신은 아무 직감도 믿지 않아. 한번쯤 멈춰서서 호기롭게 '그래 인생은 실전이야' 이렇게 인정하기 두려운거야. 사람들은 사랑에 빠지고 서로에게 속해. 왜냐 그게 누구든 인생에서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니까.

당신은 당신 스스로 자유로운 영혼이라 부르겠지. 그러고도 당신은 누군가가 당신을 우리안에 가둘까봐 두려워하고있어. 미안하지만 당신은 이미 그 우리안에 있어. 당신 스스로 지은 우리지. 그 우리는 튤립도, 텍사스도, 소말릴랜드도 아니야. 당신이 어딜 가든 있지. 왜냐 당신이 어디로 도망을 치든 결국 당신은 당신 자신을 만나게 될테니까. " 


역시 뼛속까지 problem solver인 할리는 팩폭을 날리고 떠난 폴을 뒤따라 결국 택시에서 내린다. 두 연인은 이름없는 고양이 cat을 찾아 빗속에서 서로를 품에 안는 것으로 끝이난다.





시간이 갈수록 그 중요성을 더 절실히 깨닫게 되는 진실이 있다. 인생에서 '받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 '받지 않는 것'은 그저 사양이나 겸양에서 시작할지 모르지만 결국은 상대방의 사랑한다는 말에 '그래서 뭐 어쩌라고' 대답하는 무시무시한 지경에 이르기까지 한다.  혼자 살 수 있다는 착각. 도움을 받지 않아도, 사랑을 받지 않아도 괜찮다는 생각. 자꾸만 나의 행복을 지연시키는 어리석은 생각일 뿐이다. 인간의 행복은 인간에게서 온다. 누군가가 주는 호의를 받아들일 줄 모른다면 인생에서 발견할 수 있는 아름다움은 한껏 줄어들게 된다.


받는 것은 적극적인 행위이다. 그것을 반드시 조만간 갚아야할 무언가가 아닌 그저 나와 같이 외로운 또 하나의 인간의, 나와 비슷한 마음에서 비롯한 호의로 받아들이는 행위는 적극적으로 그 사람을 수용하는 행위이자 가끔은 거절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행위이다.


일상을 적극적으로 사는 법

서로를 속하고 서로에게 속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캐릭터의 정서는 이 시대 참 공감되는 정서다. 결국 지독히 상처받을 게 뻔한 그 관계 속으로 또다시 걸어들어간다는 건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매일 그 용기를 내는 것 외에 우리가 더 할게 있는가. 인생은 판타지가 아니다. 멋있는 한방도, 역전도, 눈부신 성장도 우리의 '하루'안에는 결코 찾아볼 수 없는 무언가이다. 하루하루 안에는 그저 매일 똑같은, 지겨운 일상이란게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일상 위로 사계절이 지나고, 어느새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에 꽃이 피고 신뢰가 쌓이는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그런 일상을 특별하게 볼 줄 아는 눈이다.


우리 인생은, 우울할 때 택시를 타고 보석점에 가는 것만으로는 결코 충분하도록 만들어지지 않았다. 사람에겐 결국 사람이 필요하고, 어떤 실수와 상처가 기다리고 있더라도 또 한걸음 내딛는 것 외엔 우린 도망칠 곳이 없다. 그리고 그런 관계는 생각보다 멀리 있지 않다. 식탁에서 매일 마주하고 있는 바로 그 사람들, 질리고 지겹다고 생각한 그 인연들의 진가를 발견하는 것부터 일상의 진가가 시작된다. 





(이하는 나의 개인적인 사족) 

돈많고 능력있는 파트너에게 기생해서 사는 것도 하나의 라이프 스타일이 될 수 있기에 존중은 하지만 이렇게 추진력있고 에너지 넘치는 당찬 여자가 그 에너지의 방향을 상류사회남자 찾는 것에서 돌려서 자기 사업이라도 하나 시작했다면 뭐라도 되지 않았었을까 싶다. 할리이름을 걸고 쥬얼리 사업이라도 시작하는게 브라질 재벌을 만나는 것보다 그녀가 찾는 행복을 만나기엔 더 쉽고 빠른 방법이었을수도... 

이 영화가 요즘 재개봉을 한다면 어떤 평가를 받을지 궁금해졌다. 오히려 요즘은 사는게 너무 힘들어서 할리가 현자라고 평가받을지도 모르겠지만(...)

고전은 역시 고전이지만 또 고전은 고전일뿐이라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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