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밀리 Jun 19. 2022

영화 [begin again]

외로이 어리석게 가난하게

도시의 남자, 댄

결혼생활도, 직장생활도 모든 것이 마음처럼 이루어진 것 하나없는 중년의 남자. 자신을 배신했던 아내와의 관계는 아직도 매번 삐걱대고 사춘기 딸과의 관계도 쉽지만은 않다. 갈 곳 없이 놀이터에서 고개숙여 우는 남자의 등에는 내려놓을 수 없는 짐이 한가득 지워져있다.


God may not always be on our times. But he's on time

지하철에서의 행인의 목소리를 빌려 청중에게 울려퍼지던 영화 속 나레이션. 그러나 시간 속에 사는 인간에게 고통은 길게 느껴지는 법이다. 그리고 시간의 저편에 존재하고 있는 신을 기다리란 말은 더 큰 고통을 불러일으키곤 한다. 낯선 행인은 술과 슬픔에 찌든 남자의 손에 전도지를 쥐어준다. 신에게 이야기해보세요. 라는 말을 남기며.


But what if he doesn't answer

그러나 신과의 대화도, 자리를 잃어버린 직장으로도 그에겐 갈 곳이 없다. 홀로 남겨진 아파트 뿐이다. 어디를 보아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 인생. 그러던 어느날 바에서 그레타의 노래를 듣게된다.



Here comes the rain so hold your hat

찰나의 감정으로 자신을 배신한 연인을 뒤로하고 그레타는 노래한다. A step you can't take back. 삶은 되돌릴 수 없는 수많은 선택을 요구한다. 어떤 걸음은 치명적인 아픔을 남기기도 하고 어떤 걸음은 후회를 남기기도 한다. 그렇다고 달리는 열차를 뒤로 돌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삶은 지독하게도 계속된다. 그레타의 가사처럼 비가오면 쓰고있는 모자를 꽉 쥐는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What if it starts raining? keep rolling it'll be beautiful

댄은 그레타의 음악에서 가능성을 발견하고 둘은 같이 앨범을 만들기 시작한다. 그러나 댄의 레코딩회사에서는 투자할 수 없다고 발을 빼고 둘은 뉴욕 이곳저곳을 누비며 야외 레코딩을 감행하기 시작한다. 지하철에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서, 골목에서, 도시의 소음과 함께 되돌릴 수 없는 순간들을 녹음한다.


비긴어게인의 묘미는 그레타와 댄의 미묘한 감정관계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진주같은 순간들을 함께 공유하지만 반드시 두 인물이 연인으로 맺어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같은 상처를 공유하고, 같은 마음으로 음악을 사랑하지만 둘은 서로의 궤도에서 우정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관계이다. 그레타라는 여자도, 댄이라는 남자도 참 멋있는 인물이다.



무한신뢰

또다른 관람포인트는 주인공들의 주변인물에서 찾을 수있다. 그레타의 친구 스티브, 댄의 친구 트러블검. 이들은 모두 주인공들의 곁에서 주인공들에서 무한신뢰와 무한지지를 보내는 친구들이다. 이들이 친구가 연인과 헤어졌든, 현재 무슨 상황에서 무엇이 부족하건 말과 행동으로 무한지지를 보낸다. 어느 길을 어떤 모양새로 걷든 함께하는 이들이 있기에 극중 인물들의 여정은 계속해서 앞을 향해 나아간다.





달콤씁쓸한 자유의 맛

자신이  곡을 노래하는 데이브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그레타는 자신의  연인과 완전히 작별한다. 데이브는 자신이  실수를 어떻게든 되돌릴  있다고, 노력하면 된다고 말했지만 어떤 스텝은 되돌릴  없는 스텝도 있는 법이다. 우는  울지 않는  강을 따라 자전거를 타는 장면에선 그레타의 외로움이 느껴지고 자유가 느껴진다. 토지에서 말했듯이 자유는 고독이고 외로움이다.  가치를 아는 사람만이,  가치를 감당할  있는 사람만이 자유를 누릴  있다.  자유를 아는 그레타는 결국 자신의 앨범도 레코딩회사에 팔지 않기로 결정한다. 작은 수익이더라도 자신의 방식대로 세상에 앨범을 공개한다.



듣는 순간 나 역시 영화속 주인공이 되게 만드는 주옥같은 OST들, 뻔하지 않으면서도 삶에 깊숙이 밀착해있는 감독의 주제의식이 좋은 영화를 완성한다. 좋은 영화는 반복해서 볼수록 이전에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고 이전에 보았던 것들도 다르게 보이기도 한다. 같은 재료로 수백가지의 요리를 해내는 기분이 든다. 누구와도 공유하고 싶지 않은 욕심이 드는 너무 행복한 순간이다.





어느새 6개월의 미국생활은 휘몰아쳐 끝나있다. 될거라고 예상하지도 못한채 까마득히 잊고있었던 학교 콘테스트에서 내 영상이 뽑혔다고 메일이 왔다. 얼떨떨하기도 하고, 이렇게 될 줄 알았음 더 잘 만들 걸하는 여러 감정이 또 밀려오다가, 다시 간단하게 생각하기로 한다. just do it. 그래 이렇게 그냥 하면 되는 거였다. 비가오면 비가 오는대로 모자를 꼭 붙잡고, 신이 응답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면 드는대로. 이렇게 계속걷다 어느순간 돌아보면 아름다운 순간들을 발견하겠지.


외롭지 않으면, 어리석지 않으면, 또한 스스로 가난해지지 않으면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없다던  누구의 말처럼, 외로이 어리석게 가난하게 남은 6개월도  살아봐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sweet surrender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