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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밀리 Nov 24. 2023

영화 [클로저]

현대인의 병적인 사랑방식


유명한 명장면: "I love you" "Where? i can‘t see”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의 진실이란 무엇일까. 댄, 앨리스, 래리, 안나 네 사람의 사각관계가 어지럽게 얽혀 그려진 영화 Closer 속에서 가장 의문의 단어는 '진실(the truth)'이다. 러닝타임 내내 네 사람은 '진실'을, 다른 말로는 '사랑'을 자신만의 방식대로 찾아나간다. 그러나 commitment의 부재로 인해 사랑은 한 순간에 말뿐인 사탕발림으로 전락해버린다. '진실'하기로 했답시고 다른 사람과 잤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이들의 모습은 참으로 낯설게 느껴진다. 또 내가 너에게 이토록 진실한(=너 아닌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이유는 내가 너를 '사랑'해서란다. 이 무슨 말도 안되는 개소리인가? 사랑에는 책임과 결과가, 그리고 일관성이 있어야한다는 걸 알만한 성인들이 10대 아이들처럼 이런 대화를 하는 장면들을 너무나 자주 볼때면 이것이 영화가 반영해내는 현실이기에 씁쓸한 마음이 든다.



정신적 사랑 & 육체적 사랑

원래는 온전히 하나였을 그것이 두 개로 나뉘어지고 나면 비극이 시작된다. 댄과 안나는 각자의 연인으로부터 외도를 하고 서로 정신적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그 사랑은 육체적 외도로도 이어진다. 앨리스는 그런 댄을 떠나 원래의 직업이었던 스트리퍼로 되돌아간다. 이 모든 이해불가 막장 스토리의 결말은 앨리스는 결국 댄을 떠나고 안나는 래리의 곁에 남는다.


네 인물 모두 육체적 사랑과 정신적 사랑을 분리해 생각하기에 모두 동일하게 비극의 한복판에 서있고 모두 문제적이고 병적이다. 그 전제에서 벗어나는 인물은 결코 없다. 그럼에도 개인적으로 주인공처럼 느껴졌던 인물은 래리이다. 래리는 변태스러울 정도로 자신의 욕구에만 충실하고 사랑에도 가장 솔직하고 공격적이다. 전혀 로맨틱한 구석도 없이 그저 단순하지만 의사로서 가진 지식과 통찰력을 발휘해 주변인물의 욕구를 날카롭게 캐치한다.


그는 안나의 외도에도 불구하고 안나를 사랑하고 안나를 용서하고 안나와 결혼생활을 유지하기 원한다. 그리고 안나의 우울증을 알기에 안나를 붙잡으려한다. 너가 나를 떠나려는 이유는 너 스스로 행복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해서라고, 그렇지만 넌 그럴 자격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니 떠나지 말라고 돌아오라고.


어질어질한 사각관계

배우의 액팅이 좋아서인지 캐릭터를 잘 구축해놔서인지 래리라는 인물이 참 입체적으로 다가온다. 그나마 인간적인 인물이 아닌가싶다. 어쩔 때보면 정말 단순하고 성욕에만 미쳐있는 인물 같다가도 주변인들의 심리를 캐치할 땐 냉철하고 또 본인이 심리적으로 약점을 들킨 것 같은 순간들도 보인다. 그럴 때보면 댄보다도 원래 더 섬세한 인물이 아닐런지 의심이 든다. 어찌됐든 젠틀, 로맨틱 이런 단어하고는 일관되게 거리가 멀다. 그렇지만 왠지 그런 모습이 꼴보기 싫진 않다.


사랑은 선택

댄과 앨리스의 만남도, 래리와 안나의 만남도 장난같은 우연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외도의 순간 역시 우연히 찾아온다. 댄이 앨리스에게 안나와 사랑에 '빠졌다'고 말하자 앨리스는 응수한다.


 "마치 다른 선택은 없었던 것처럼 말하네, 근데 언제나 선택의 순간이 있어. 굴복해버리고 말건지 아니면 끝까지 저항할건지. 그 순간이 너한테 언제였을진 모르겠지만 너에게도 분명 있었을거야."


호감과 끌림은 어쩌지 못한다지만, 그 사람에게 계속 가까이 갈 것인지, 아니면 이대로 스쳐지나갈 것인지는 언제나 선택이다. 마치 담배를 필 건지 말건지, 계속 금연을 유지하고야 말것인지 선택하는 것처럼. 댄은 기어코 담배를 다시 피고 말지만 래리는 끝까지 담배를 피지 않는다. 전에도 맞아봤다는 안나의 말에도 래리는 결코 안나를 때리지 않지만 댄은 앨리스에게 손찌검을 하고 만다. 댄과 래리 두 남자의 사랑 방식에는 많은 대비가 등장한다.


그 대비가 절정에 이르게 된 것은 결말에 이르러서다. 결국 안나를 차지하고만 래리는 댄에게 충고한다. 타협을 모른다면 사랑을 모르는 거라고. 타협을 몰랐던 댄은 결국 앨리스 마저 잃는다. 사실 댄은 한번도 앨리스의 진짜 이름을 안 적도 없다. 영화 내내 댄은 "sweet", "gentle"의 성격으로, 래리는 "simple(다소 거칠고 무딘)“한 성격으로 비추어진다. 외도를 고백하고나서마저 따뜻하게 안아주며 좋은 말로 포장하려 한 건 댄, 구질구질하게 캐내고 욕하고 결국 꺼지라며 욕설을 퍼부으며 이별한 건 래리였다. 그러나 끝내 안나를 다시 차지한 것도, 앨리스의 진짜 이름을 알아낸 사람도 댄이 아니라 래리였다.


결국 이 아이러니한 대비가 말하고 있는 것은 중요한 건 겉으로 보이는 게 젠틀한지 아니면 상스러운지가 아니라, 잠깐 스쳐지나가는 폭풍에 곁에 있는 연인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주지 않기로 선택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완벽하고 결점없는 사랑이란 없다. 그런 관계는 환상이다. 래리는 안나의 외도를 결국 용서/타협하고 다시 돌아오라고 말할 수 있는 침착함과 단순함이 있었지만 댄은 왜 다른 남자와 잤냐고(내로남불)을 하면서 지랄발광을 하고 급기야 앨리스에게 손찌검까지 하게된다. 겉으로 보이는 나이스함에 댄의 이런 불같은 성미/찌찔함/조급함은 잘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아마 이것이 안나도 질리게 만들었을 것이다.



앨리스는 스트리퍼, 댄은 실패한 작가라는 걸 생각해봤을 때 래리와 안나가 결국 서로를 선택하게 된 것에는 사랑이라는 말보다 더 복잡한 (사회 계층, 사람들의 시선) 등 뭐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런 걸 제외하고도 래리의 간단명료함이 계산적으로만 보이지는 않았다. 나름 사랑도 똑똑하게 하는 느낌.



각자만의 사랑방식이라지만 사랑을 한다면서 상대방을 더욱 외롭게하진 않아야하지 않겠는가. 사랑이라는 미명하에 상대방을 외려 고통에 빠트리지는 않아야하지 않겠는가. 사랑할수록 솔직하고 간단하게. 너를 위한답시고 거짓으로 꾸며낸 그 무엇도 아닌 너에게도 나에게도 진실되게. 뭐 그런 것이 응당 사랑의 자격이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앨리스의 질문처럼 사랑한다는 말만으로는 사랑이 보이지 않는다. 사랑은 구체적인 형태로 드러나고 보이게 되고 그리고 결국 진실은 종국에 가야만 알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 공항을 걸어가는 앨리스의 뒷모습은 어딘가 모르게 씁쓸하다. 그러나 사랑의 탈을 쓴 집착에서 벗어나 그녀는 이제야 자유롭다.


킬링타임용으로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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