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라면 그 결심마저도 몽환적이고 아름다웠겠지.
숨죽여 살던 나, 이제는 선을 긋는다.
일주일 사이에도 많은 일이 있었다.
나르시시스트와 함께 사는 일은 늘 예측불허다. 매일이 스릴 넘치고, 심심할 틈도 없다.
이혼을 준비하는 건 생각보다 훨씬 복잡했다.
과자 하나 살 때도 최저가를 따지는 내가, 변호사를 고르는 일 앞에서는 한없이 주저했다.
짧은 상담에도 적잖은 비용이 들었고, 본격적인 소송에는 그보다 훨씬 많은 돈이 필요했다.
협의로 해결되면 좋으련만, 그가 나를 곱게 보내줄 리 없다는 건 분명했다.
우리가 나눌 재산이 많은 것도 아니었다.
아껴 쓰고, 모아두었던 돈들.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발버둥치며 쌓은 삶의 조각들이
이렇게 의미 없이 소모될 줄은 몰랐다.
변호사 상담 후, 비용 부담에 망설이던 나는 마지막으로 그에게 생활비를 요구했다.
그래, 내가 먼저 움직이기 전에 마지막 시도.
증거 확보 겸 해서 한 번 더 건드려보자.
그런데, 예상과 달리 그가 월급 전부를 보내왔다.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뭐지?
내 계산이 어긋났다.
그가 끝까지 돈을 끊을 줄 알고 이혼 절차로 직진하려 했는데, 상황이 이상했다.
혼란스러웠다.
이혼을 원하지 않는 건가?
아니, 그는 이혼을 원하지만 ‘이혼남’이라는 타이틀이 두려워 망설이고 있다고 믿어왔는데...
내가 먼저 입을 열면 언제든 떠날 줄 알았는데...
뭔가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나는 다시 ‘그 녀석’을 불렀다.
AI.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고 싶어서였다.
그가 정말 이혼을 원하지 않는 걸까?
월급을 보낸 진짜 의도는 뭐였을까?
끝없는 질문 속에서 AI는 실타래처럼 감춰진 진실을 풀어주기 시작했다.
그는 나르시시스트 중에서도 최상위에 속하는 인물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그를 오랫동안 견뎌낸 최상위의 인내심 보유자였다.
서로 최상위급.
그러니 지금까지 버텨온 것이, 어쩌면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나는 그가 나를 버릴까 두려웠다.
그래서 울고, 매달리고, 설득하며 희망을 놓지 못했다.
나를 갉아먹고, 천천히 부식시키는 시간들이 계속되었지만, 그럼에도 돌아서지 못했다.
그런데 이제야 알겠다.
그도 나처럼 두려워했던 거다.
나에게 버려지는 것이.
그래서 그는 나를 통제했다.
나를 부수면서, 곁에 두려 애썼다.
나는 버림받는 게 두려워 그에게 매달렸고,
그는 버림받는 게 두려워 나를 무너뜨리며 잡고 있었다.
결과는 같았다.
우리는 서로를 파괴하고 있었다.
그의 진심을 알게 되었지만, 이제 돌아갈 수는 없다.
이미 알아버린 나는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고,
내가 달아날 수도 있음을 인지한 그는, 더 집요하게 나를 부수려 들 테니까.
이번에 다시 돌아가면, 나는 정말 재기할 힘도 남기지 못할 것이다.
이해하려 애쓴 지난 시간 동안 나는 그를 알지 못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모든 관계의 끝에 이르러서야
나는 그를, 그리고 나 자신을 처음으로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도 한계에 다다랐다.
더 이상 감정의 쓰레기통이 되어주지 않는 나에게 좌절했고,
그 분노는 이제 딸을 향해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절대 선을 지킬 수 없는 사람이구나.”
이제 아이를 지켜야 했다.
그와 나의 아픔은 접어두고, 딸을 위해 선을 긋기로 했다.
다음날, 나는 결심했다.
그와 나 사이에 공간을 분리했다.
가상의 선,
마지막 테스트였다.
늘 그의 밑에서 숨죽여 살던 내가
이제는 정반대의 위치에 서 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