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이 진정 남국 제주?
이런 눈은 생전 처음이다.
어젯밤부터 눈이 퍼붓기 시작하더니 새벽녁 호텔 창밖으로 바라본 세상은 설국 그자체다. 수십센티미터는 쌓인듯 하다. 눈발이 잠시 멈춘듯 싶더니 하늘이 어두어 지더니 다시 눈을 퍼붓기 시작한다.
어수선 했던 1월을 뒤로 하고 설국 홋카이도로 떠나 기차를 타고 하루종일 하얀세상을 바라보며 무념무상 멍때리며 머리속을 비우고 싶었는데 그 소망을 제주에서 이룰 수 있을것 같다.
그런데 차는 움직일수나 있을까 ?
갑자기 걱정이 밀려온다.
제주 설국의 아침
아침에 자고 일어나면 눈속에 파묻힌 차의 눈을 치우는것도 쉽지 않다. 밤사이에 20센티는 쌓인듯 하다.
눈도 눈이지만 차가 꽁꽁 얼어붙어 1시간여 시동을 걸어 자동차의 온도를 높혀서 겨우 차가 제 모습을 찾았다.
까지밥으로 남겨둔 귤에 쌓인 눈은 마치 꼬깔 모자를 쓰고 있는듯 귀요미의 모습을 하고 있다.
돌하루방은 모처럼의 눈에 하얀 외투를 입고 좋아라하는 모습으로 보인다.
오늘도 특별한 계획을 잡지 않았다.
가족들과 설국 제주를 만끽하는것 만으로도 충분하므로.
우연히 만난 설국 제주
지난해 12월 집사람과 딸 아이가 일본 여행을 계획하다가 비행기 요금이 만만찮다며 1인 일본 왕복 비행기 요금이면 4인가족이 제주도행 비행기를 탈수 있다며 여행계획을 일본에서 제주도로 변경했었다.
그런데 출발일에 즈음해 갑작스레 급히 처리할 일이 생겨 참으로 난감하였다.
거의 10여년만에 비록 국내이긴 하지만 비행기를 타고 가족 모두가 여행을 떠나는 것이라 여행을 취소 하기가 쉽지 않았다. 교통편도 숙소도 이미 예약을 마친 상태이기도 하고.
가족과의 추억 만들기는 때가 지나면 돌이킬 수 없기에 모든것을 접어두고 예정대로 제주로 떠났다.
혹한의 여파가 제주까지 미처서 남국의 제주에 보기드문 설국의 분위기를 느끼게 됨은 참으로 행운이다.
제주 공항에 도착하니 눈발이 휘날리기는 했지만 차창 밖 청명한 하늘 아래 낮게 깔린 하얀 구름은 순백의 설산처럼 착각이 들만큼 장쾌한 풍광이 펼쳐졌다.
도심 야자수 가로수 길가에 눈이 쌓인 모습은 낯설지만 참으로 이국적인 모습이다.
한동안 홋카이도 설국이 그리워 타인의 글과 사진으로 대리만족을 했건만 설국을 제주에서 만날수 있으리라고 어찌 상상이나 했을까 ?
이런것이 바로 여행의 묘미 일것이다.
제주도 설국의 밤
날이 어두워지자 눈발의 세기가 강해졌다.
흰눈으로 덮힌 도로를 자동차로 운행하기가 위험스러워 마음을 졸였지만 가족들은 아랑곳없이 하얀 세상에 신바람이 났다.
이런 분위기는 설국 홋카이도에서도 느껴보질 못했는데 환상이라는 표현외에는 더 이상의 단어가 생각나지 않는 설국의 밤을 가족들과 함께 할 수 있어 오랜만에 행복감이 느껴졌다.
가성비가 좋았던 제주 난타 호텔
결론을 말하면 가성비 최고의 호텔이다.
신라나 롯데같이 호사스럽지는 않지만 제주시 남쪽 한라산 기슭 해발 400미터에 자리 잡은 호텔이라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예상치 못한 설국의 풍경은 보너스다.
여행에서 숙소가 차지하는 비중이 나이가 들어갈수록 커짐을 느낀다. 집을 떠나 편안하고 깨끗한 숙소는 여행을 즐거움을 더해주기 때문이다.
난타공연으로 유명한 상설 무대가 있는 호텔이라 이색적이기도 하지만 작년에 개관하여 시설이 너무도 깨끗하다.
욕실도 비교적 넓고 룸은 조용하고 쾌적하다.
평소 2인실이 12~15만원인데 운좋게 4인 2실 아침 부페 포함해서 15만여원에 사용했으니 득템 수준이다.
후에 기회가 되면 꼭 다시 와서 난타공연도 보고픈 호텔이다.
제주에서 만난 남국의 바다
스위스 인터라켄 호수에서 만난 에머날드 물빛을 잊지 못해 그리워하다 다시 찾아간 것처럼 지난해 제주 바다의 옥색 물빛을 잊지 못해 다시 찾아 왔는데 다시금 보아도 그 빛깔이 신비롭기만 하다.
아프리카의 희망봉에서는 아닐지라도 서울에서 한시간 남짓의 비행만으로 온 가족이 푸른 제주의 바다를 만끽할 수 있으니 더 이상 좋을 수 없다.
지난 11월 친구와 함께 제주 함덕 비치에서 바다 한가운데 있는 카페를 바라보며 가족들과 함께 다시 와보고 싶었는데 그 소망이 너무도 가까운 시기에 이루어 졌다.
세상의 아름답다는 바다는 비교적 많이 가보았는데 제주의 바다가 이처럼 아름다운지 다시금 깨달아 본다.
구름사이로 드러난 햇볕에 깊고 푸른 바다는 더욱 아름답다.
성산 일출봉 가는길
겨울에도 남국의 정취가 물씬한 제주에서 가로수 야자수 에 눈이 쌓인 모습은 낯설지만 참으로 이채로운 풍광이다.
함덕에서 성산 일출봉에 이르는 해안 도로는 한시도 눈을 떼기 어려운 아름다운 길이다.
자연풍광 뿐만 아니라 세련된 모습의 카페들이 자연과 조화롭게 해변을 따라 줄지어 지어진 모습도 제주가 휴양지로서 돋 보이게 하는것 같다.
제주에서 처음 경험하는 날씨는 변화 무쌍한 날씨로 유명한 영국에서도 보질 못했는데 갑자기 눈이 내리며 바다가 회색 빛으로 변해 앞이 보이지도 않다가 구름사이로 햇살이 나오며 바다는 옥색 빛깔로 순식간에 변하고 그러다 잠시후 눈 보라가 휘몰아치기를 반복 하였다.
설국의 밤은 아름답다.
폭설이 내리던날 밤 제주의 어느 카페 화롯불에 귤을 구어먹는 경험은 이채롭다.
예전 소를 키우던 우사였던 곳을 개량한 카페의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은것은 창밖으로 소담스럽게 내리는 눈 때문이었을까?
인도풍 음악과 분위기가 이국적이라 카페 이름 '타시텔레'의 뜻을 물어보니 티벳의 인사말 우리말로 안녕하세요라고 한다.
제주 시골의 한가운데 이런 개성있는 카페를 만난것도 제주에서 농사짓는 친구덕이니 이 또한 감사한 일이다.
우주여행과 같았던 귀가길
우주여행을 제주에서 할 줄 몰랐다.
쏟아지는 유성우를 뚫고 겨우 지구로 무사히 귀환했다. 카페가 있는 표선에서 숙소가 있는 성산까지 20여킬로의 길이 눈길이라 조심스럽게 오다보니 1시간여가 걸렸다
짜릿한 설국의 밤이다.
이름값만 못했던 피닉스 리조트
이번 제주 여행의 테마는 다양한 숙소의 경험과 먹방투어다. 설국은 예상치 못한 보너스다.
둘째날 숙소인 피닉스 리조트는 예전 이병헌 송혜교의 출세작 올인의 무대인 섭지코지에 자리잡고 있는데 유명세에 비해 방은 일반 콘도와 특별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깨끗하지만 이제는 어느덧 비품들도 노후해보이고 전날 난타 호텔에서의 룸 분위기와 차이가 나는것은 바로 조명불빛 이었다.
간접조명이 아닌 피닉스의 직접조명은 아늑한 느낌을 갖기가 어려워 고급 리조트의 분위기가 퇴색된 감이 있어 보였다.
비회원 할인가가 2인조식 포함 17만원이니 득템수준과는 거리가 있지만 쾌적하게 하루를 보낸것으로 만족했다.
창밖으로 하염없이 소담스럽게 내리는 눈 감상은 최고다.
설국 여행 ? 설국 어드벤처 ?
제주에서 생전 처음 스노우 체인 장착을 해봤다.
매일같이 해야하는 일상이라면 힘들고 지겨울수도 있지만 제주도민들도 40년만의 폭설이라고 귀한 눈을 신비롭게 느끼고 있으니
나같은 외지인이야 차에 쌓인 눈을 치우고 스노우체인을 장착하는일을 즐겁게 받아 들여야 했다.
그러나 스노우 체인 탈부착이 너무도 어렵다.
익숙치 않아서 그런지.
이효리가 살고 있다는 애월 가는길.
성산 섭지코지에서 제주의 마지막 목적지인 애월가는길은 평생 잊지 못할길이 될것 같다.
서귀포 중문을 돌아 남쪽 순환도로로 가는것이 통상적인 루트이지만 눈길에 먼거리를 도는것이 자신이 없어 표선방향 산길로 향했다.
눈길이 위험하기에 눈이 없는 해안도로로 돌아가는것이 정답이겠지만 순수한 설국을 만나기위해 산길을 택했다.
인적하나 보이지 않는 눈속 산길을 자동차로 여행한다는 것이 쉬운 결정이 아니었기에 걱정반 기대반이었지만 스노우 체인만을 믿고 눈길여행을 감행한것은 거의 모험과 같았다. 눈길에 미끄러져 널부러진 차량들을 보니 겁도 나긴했지만 이미 엎드러진 일이다.
좁은 숲길을 1시간여 달리다 보니 폭이큰 도로인 516도로를 만나 제주시로 올라가 다시 남쪽방향으로 향하는 65킬로 미터의 길을 시속 20~30여키로 속도로 기다시피 3시간여를 심장이 쫄깃하면서도 스리넘치는 드라이빙은 생애 처음의 경험이었다.
설국 홋카이도에서도 도로 양쪽으로 전나무 숲에 눈이 가득 쌓인 풍경을 보질 못했는데 이런 장쾌한 광경을 남국 제주에서 만날줄 몰랐다.
이런 여행을 일부러 맞추어 할 기회가 앞으로도 있을까 ?
길가 수북히 눈이 쌓인 나무 가지 사이로 황금빛 귤들이 매달려 있는 모습은 장관이다. 수확이 늦어진 농장주 입장에서야 안타까운 일이겠지만 여행자는 마냥 진기한 구경거리다.
변덕쟁이 제주의 얼굴
하루에도 열두번
아니 하루에도 수백번
제주의 날씨가 이토록 변덕이 심할줄 몰랐다.
눈발이 멈추고 해가 구름사이로 보이면 날이 개이는가 싶더니 십여분도 안되어 하늘이 어두어지더니 눈보라가 몰아친다.
일몰이 다가올 즈음 구름이 드리워진 회색빛 바다가 또 변덕을 부려 잠시 푸른 바다를 보여준다.
외국의 휴양지 같았던 애월의 숙소
이런집을 독채로 하룻밤을 보낼수 있는것은 에어비엔비가 있었기에 가능했을것이다.
제주가 아무리 좋다고 요즘같은 세상에 굳이
제주에 개인별장을 만들 필요가 있을까?
셰어하우스 개념의 별장들을 호텔비용 정도만 지불하면 즐비한데.
애월에 온것은 온전히 이집을 사용하고 싶어서였다. 이효리가 이곳에 산다는 이야기도 와서 알았고 애월 해안도로가 미국 캘리포니아의 태평양을 따라 이어지는 1번국도 못지 않은 풍광을 가지고 있다는것도 와서 알았다.
미국의 태평양에 접한 한마을에 온듯 이국적인 디자인의 타운 하우스가 인상적이다.
거실에서 바라보는 풍경도 이층 테라스에서 바라보는 먼발치의 바다 풍경도 마치 공간이동을 해서 외국의 어느 휴양지에 온듯하다.
유럽이나 미국의 10프로도 안되는 비행기 요금으로 이런 이국적인 분위기를 느낄수 있음이 참으로 가성비 높은 숙소이다.
제주여행을 마무리하며
가족이 좋은 시간을 서로 공유한다는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뿔뿔이 각자도생하던 네식구가 모처럼 독수리 5형제가 합체하듯 3박4일동안 제주라는 한공간 에서 설국을 만끽한것은 아들은 아들대로 딸은 딸대로 나는 나대로 앞으로 어려운 시간을 만나도 그것을 버티고 극복하는데 큰 에너지가 될 듯 하다.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가며 부모와의 교감은 점점 멀어져 갈것이 분명하기에 이번 여행과 같은 가족 여행이 참으로 소중하게 느껴진다.